▲ 이애순 수필가

요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심각하다. 영화 「스틸라이프」는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소재로 한 영화다. 런던 케닝턴 구청에 근무하는 주인공 존 메이는 나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해 장례를 치러주고, 고독사한 사람들의 지인들을 찾아내어 장례식에 초대를 하는 일을 한다. 혼자 사는 주인공 존 메이는 자신의 일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그 역시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반면 그의 상사는 무연고자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을 예산 낭비라고 말한다. 그의 태도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정한 사회로 바뀌었는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로도 이 세상이 나 홀로 죽음이 문제가 될 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리. 매스컴에서는 쪽방에서 나 홀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도된다.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주검이 몇 달씩이나 방치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색해진 고독한 사회가 두렵다.
 
고등학교 때 일이다. 당시는 연탄을 때던 시절이라 연탄불에 밥도 짓고 물도 데우고 했다. 부엌이 제법 넓어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부엌에 커다란 함지박을 놓고 양은솥에 물을 끓여가며 부엌에서 목욕을 하곤 했다. 그 날도 부엌에서 목욕을 했는데 집에 식구들은 아무도 없었고 셋방에 사는 아줌마만 집에 있었다. 연탄에 물을 얹어놓고 물을 끓여가며 목욕을 하다가 연탄가스를 맡았다. 때를 미는데 이상하게 팔이 힘없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일어나려니 어지러워 제대로 설 수도 없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였던지 부엌문까지 어찌해서 갔는지 부엌문 유리창 밖으로 아래채 쪽마루에 앉아있는 아랫방 아줌마의 휘둥그레진 눈을 보고 의식을 잃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몸이 서늘하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정신이 들었다. 나를 뒤란 밖에 꺼내놓고 김치 국물을 마시게 한다느니 하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깨어 난 것이다. 뒷집에 큰 할머니가 사셨는데 큰 할머니께서 오시어 나를 안고 계셨다. 다행히 병원까지 안 가고 그대로 의식을 회복했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당시 셋방에 살던 아줌마 말에 의하면 부엌문 유리창 위로 내 얼굴이 한번 쑥 올라오더니 스르르 내려가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달려와 부엌문을 열어보니 내가 쓰러져 있어 얼른 끄집어내서 공기 맑은 뒤란에 뉘어 놓았다고 한다. 당시 아줌마가 때마침 나를 보지 못했다면 나는 그대로 깨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수직의 공간이 아닌 수평의 공간에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탄가스에 중독된 나를 누가 발견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으리.
 
내가 살던 집은 커다란 기와집이다. 안채가 있고 안마당이 있고 건너편에 아래채가 있었다. 아래채는 방 두 개가 있어 세를 놓아 셋방을 사는 사람들이 살았다. 안마당 가운데는 꽃밭이 있어 여름이면 흰색 분홍색 보라색 과꽃이 어우러져 꽃밭을 가득  메웠다. 도시에서 전원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위로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켠에 수도가 있어 세 든 사람들과 함께 수돗물을 나누어 마시고, 같은 수돗물을 퍼 빨래를 하며 같은 화장실을 사용하며 지냈다. 안채에 달린 뒤란에는 우물이 있고 콘크리트로 만든 너른 장독대에 장독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우물과 장독대 사이에 있는 사철나무는 뒤란이 정원이라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뒤란에는 여러 개의 빨랫줄을 매어 빨래를 널었다. 뒤란에서 아줌마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밀담을 나누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 시절을 회상하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지금의 주택이 수직공간이라면 그때의 집은 수평공간이다. 안채의 안방, 대청마루, 건너 방, 부엌. 우리 집안이 아래채에 다 개방되어 있고, 물론 그들의 살림도 우리가 다 볼 수 있도록 노출되어 있다. 마당에 있는 수돗물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김장을 하고 그들의 하루가 낱낱이 공개되는 구조다. 아침 설거지가 늦었는지 저녁밥이 빠른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부부 싸움을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비밀이 있을 수 없다. 뒤란의 빨래 줄도 함께 썼기에 우리 빨래가 다 말랐을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얼른 거두어들인다. 비가 올 때 사람이 없으면 대신 빨래를 걷어주고 장독 뚜껑을 닫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동체의 삶이 익숙한 사회다. 같은 대문을 사용하고, 공동의 수도를 쓰고, 화장실마저 함께 쓰는 사람들이니 인정도 나누며 살았던 시절이다. 늦은 귀가로 대문에 빗장이 굳게 걸려있을 때, 아래채 아줌마의 방 창문을 살짝 두드리면 조용히 나와서 빗장을 빼주고 비밀을 지켜주기도 했다. 시끄럽고 사생활 보장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지만, 웃으며 얼굴을 맞대고 살았던 시절이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에는 '나 홀로 죽음'이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았을지 싶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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