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희 수필가

아래채에 묶어 두었던 꾸러미를 풀었다. 세상에, 삼십 년이 지난 사진들이 그 속에서 나왔다. 시민회관에서 한 들꽃 전시회 사진들이다. 정성껏 키워서 분에 올려 전시장으로 갔었지만 들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진열대에 올려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포자를 단 아름다운 이끼 사진, 전시는 못할지언정 사진으로만 남기겠다고 세 컷을 찍어서 넣어둔 것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보물 같은 기록 사진들이다. 어쩜 이리도 예쁘게 키웠을까, 그 옛날 젊은 감각과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 당시엔 잊힌 우리의 들꽃만을 전시해도 부족한 공간이었다. 들꽃만이 진정한 야생화라며 자생지부터 따지면서 키우고 보급하자는 취지 아래 단체를 만들어 전시할 때였다. 
 
그 당시엔 제일 젊은 나이였다. 뭔가 좀 색다른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끼는 하등식물이라 하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찮게 보이는 이끼도 이 땅의 생명이라고 알리고 싶었는데 인식부족으로 전시회에서 밀려났다. 지금도 이끼라면 꽃도 아닌 것이 지저분하다며 밟아 뭉개 버리는데 그 때는 오죽했을까. 
 
고사리와 이끼, 이 두 가지야말로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대표하는 식물이 아닐 수 없다. 이끼의 종류도 다양하다. 산림물이끼, 아가물가이끼, 금실이끼, 솔이끼, 우산이끼 등 이름 모를 이끼도 많다. 수많은 세월을 지루하게 살아오면서 매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묵묵히 살아온 이끼들, 그렇지만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바위나 고목들을 아주 천천히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 왔다. 그렇게 이끼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살아오는 이 땅의 첫 초록 생명이다. 
 
체제가 간단하고 진화의 정도가 낮은 식물들을 사람들은 하등식물이라 한다. 하지만 이들이 펼치는 세계는 고등식물이 갖지 못하는 신비롭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긴긴 겨울의 침묵을 깨뜨리고 부드러운 삭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가는 실이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솟아오르는 생명력의 비약, 포자를 닮은 주머니를 삭이라 한다. 열매 같은 삭을 올려 새봄을 경배하는 아가물가이끼는 단순함 속에 펼쳐지는 찬란함을 넘어 숨조차 멈추게 하는 절대미감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하는데 풀도 알면 알수록 새롭게 보인다. 
 
요즘은 옛날처럼 아름다운 이끼가 보기 힘들어졌다. 넉줄고사리만 키운다. 가을이 되면 황갈색의 단풍을 보는 듯하다. 생김새와 색감이 눈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는 화려한 자태, 양치식물 넉줄 고사리를 보라. 하록성 여러해살이풀로 바위, 또는 나무에 붙어 착생한다. 잎자루와 관절로 연결된다. 비늘조각은 갈색으로 광택이 있고 선상 피침형으로 방패 모양이다. 관상용으로 그만인 매혹적인 고사리이다. 이 식물은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넉줄고사리는 몸을 내어준 나무를 옥죄게 해서 말려 죽이는 등나무처럼 배은망덕한 짓은 안 한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면서 몸을 내어준 고목과 바위에 멋진 풍경도 만들 줄 안다. 공생의 참뜻을 새길 줄 아는 식물이니 아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모처럼 시간을 내어 자생지를 찾았다. 세월이 흘러 길도 산도 희미하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쳐다보면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 유연한 움직임의 넉줄고사리는 없다. 돌아 나오면서 아쉬움에 장소를 옮겼다.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넉줄고사리와 재회했다. 옛날 그 장소가 아니라 좀 떨어진 장소에서 만나긴 했는데 듬성듬성 있는 것이 나쁜 이의 손을 탄 것 같아 씁쓸한 마음 지울 수 없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지났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나마 고마웠다. 포자가 떨어져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자연이 고마울 뿐이다. 
 
주물럭 분에 올려 진 돌 솔이끼 사진에는 가을이 내려와 있다. 꽃망울 같은 작은 삭을 올린 모습은 신비롭다. 환상적인 꽃들의 군무를 보는 듯 황홀하다. 또한 사진 속에는 돌 위에 이끼를 올려 작은 동산을 만든 작품이다. 포자의 꽃대를 높여 씨앗을 맺는 자연의 원리에 한 번 더 감동한다. 석양에 비춰지는 붉은 들녘을 연상하게 하는 이 사진을 보니 하찮은 이끼라도 키우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작품이 되어 귀하게 보인다. 이끼에도 자연의 오묘한 세계가 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작은 것에 애정이 간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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