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이후 간첩사건 소개
공안통치·선거 악용 배경 다뤄



<간첩 시대>는 한국 현대사 속의 조작 간첩 사건의 비극과 역사를 다룬 책이다. 분단 이후 1950~60년대 남과 북은 정신없이 공작원을 침투시켰다. 하지만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이 분수령이었다. 간첩 수가 줄어든 대신 한국의 공안기관들은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조작간첩 사건은 100건이 훨씬 넘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기실 1960년대부터 공안통치 구조를 만들고 강화하기 위해 공안 사건과 간첩 사건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인혁당·동백림·통혁당 사건은 1960년대 공안통치의 얼개를 만들면서 삼선개헌과 유신체제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윤이상 이응로 등 예술인이 연루된 1967년 동백림 사건의 경우, 국제적으로 나라 망신을 시킨 사건이었다. 서독과 프랑스 정부의 이유 있는 항의에 굴복해 결국 윤이상 이응로를 풀어줬다. 나중에 검찰이 간첩죄를 적용한 이는 23명에 불과했고,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었던가. 공안기구들은 그야말로 '그림'을 그렸다. 한국민이 일본 가서 재일교포를 만나고 왔다가 간첩으로 둔갑했고, 북한에 끌려갔다 돌아온 납북 어부들도 누명을 썼고, 해외 유학생들도 간첩으로 조작됐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제3세계 민중운동의 상징이 된 서승도 1971년 재일교포 학원침투 간첩단 사건으로 끌려갔다. 공안기구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당선을 위해 '충성스럽게' 꾸민 사건이었다.
 
공식은 이랬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간첩 사건이 줄줄이 터졌으며, 독재정권이 위기에 처하고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때 간첩 사건이 발표됐다. 전두환 정부 때 간첩 조작은 보안사 안기부 경찰이 승진과 막대한 포상금, 해외 연수 기회를 얻기 위해 득달하듯이 달려든 일종의 '먹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공안 통치가 한국민에게 상당하게 내면화됐다는 거다. 민주화 이후 시대였던 2003년 재독학자 송두율이 36년 만에 귀국하자마자 해방 이후 최대의 간첩으로 불리며 공안기구의 희생물이 됐다. 1990년대 엮을 거리가 줄어들자 안기부 수사국장 출신 정형근은 이제 간첩에 대한 시각을 바꿔 북한 전략에 동조하는 우리 내부의 자발적 간첩을 도려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과연 2013년 통합진보당 해체 등에서 보듯 종북 광란극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의 무거운 쇠사슬을 아직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일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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