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하 시인

오늘도 나는 연기를 했다. 거짓웃음, 거짓의 말, 거짓 행동을 스스럼없이 꾸며내며 다른 사람의 대본을 마치 내 대본인양 외우고 다녔다.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순간만 모면하려 적당히 둘러대는 데만 급급했다. 거울을 본다. 예전에 비해 참 많이 변했다는 건 단번에 느껴지지만 어떻게 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보이는 곳 말고 가슴 안쪽은 더더군다나. 분칠을 벗겨내고, 여기저기 남아있는 자국을 지워낸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내 얼굴 어딘가에는 깜박 잊고 지우지 못한 분장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자국 그대로 나는 잠이 들것이고, 눈을 뜨자마자 또 정신없이 집을 나설 것이다. 따지고 보면 관객도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무엇을 잡자고 이리도 허우적거리는지.
 
무덥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계절은 한 치의 착오나 오차가 없다. 할 일이 다 끝났다 싶으면 다음 계절에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미련 없이 물러앉는 것이다. 낙엽을 떨어뜨리는 바람은 길거리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공허한 마음에도 불어 닥친다. 내 마음속에 부는 바람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향한 갈망이 아닐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기에 내 안에 이는 흔들림. 결국 나는 길을 나선다. 가을 햇빛이 참 투명하다. 키 큰 측백나무 틈새로 맑게 내리쬐는 결 고운 햇살. 그런데 왜 까닭 없이 눈물이 나는 것인지. 오래 하늘을 올려 보아서가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슬퍼서도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도 아닌 그 어떤 가슴 뭉클함. 맑고 푸른 하늘을 차마 올려다 볼 수가 없는 것은 그동안 퇴색되고 더렵혀진 내 마음이 비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바쁘게 살고 있다는 핑계로 하늘을, 주변의 풍경을 내 눈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하늘은 변함없이 맑고 푸르지만 변한 것은 탐욕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이었다. 남보다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없다 보니 초조했다. 갈수록 혼탁해져 가는 마음이 스스로 느껴져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뿐이었고, 남보다 더 빨리 가기위해 기를 쓰고 말릴 뿐이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현실적으로 된다는 뜻일까? 현실적이라는 이야기는 또 무엇일까? 그 만큼 세상의 숫자들을 잘 헤아린다는 뜻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그런 꿈의 세계에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 나와 현실이라는 울타리 속에 갇힌다는 뜻에 다름 아닐 것이다. 어디를 쳐다봐도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 싸늘한 콘크리트 벽, 연신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 가끔 내가 하는 일이 힘겨울 때가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짐스러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다. 왜 여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일까?
 
이 가을날, 그 답을 찾아보길 권해 본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그래서 꼼꼼히 한 번 따져 보기를. 내가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할 이유, 과연 그 대답이 얼마나 많으며 얼마나 정당한지.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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