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책을 보는 시간보다 TV연속극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운동을 즐기기보다 주전부리를 즐기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 내 말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결정하기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내가 판단하기 보다는 유명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았다. 얼마 전에도 큰 딸아이를 영국 어학연수를 보내도 될지 물으러 점집을 찾아갔다. 간 김에 내 사주부터 넣었다.
 
"착하고 인정 많고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운데 사람이 좀 고지식하네. 아이를 영국에 못 보내는 이유가 딸내미가 어떻게 될까 봐서 그라네. 탈 안 난다. 보내도 된다"는 말에 함께 갔던 작은딸아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딸아이는 엄마 성격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히더라고 신기해했다.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을 읽으면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났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신기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희열을 느끼면서 그렇게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세상을 어떻게 읽고 소통해야 하는가', '자기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지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치열했던 고뇌와 시행착오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책 속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구절은 '파우스트'에서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였지만, 나에게는 별로 전달되지 않았던 메시지였다. 내가 요즘 방황을 많이 한 탓일까. 방황이 노력의 증거이고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라는 말은 위안이자 격려가 되었다. 20대를 치열하게 살지 않았고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30대에는 질주할 힘을 얻지 못했고, 40대에는 수확도 못한 채 50대에 이르러 생각하니 인생이 참 허망했다. "자신을 감동시켜야 진정한 노력이다"라는 말에서 내가 얼마나 나를 감동시키지 않고 나를 방치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20년 전 쯤에 등단했지만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직장에서 바쁘고 아이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이유로 게으르게 살아온 나 자신이 감지되었다. 안주된 삶이란 얼마나 편했나. 나는 그동안 생활에 지쳐 독서도 멀리하고 정신을 단련시키는 것도 등한시하고 살았다. 내 인생은 도발도 혁명도 도전도 없었다.
 
몇 년 전에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사실 나는 황홀한 느낌을 받았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황홀경에 빠져 책을 읽어 내려갔었다. 그런데 조정래 선생 스스로가 10년 동안 '태백산맥'을 쓰시면서 글을 쓰는 과정을 '황홀한 글감옥'에 비유한 표현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하늘이 어떤 이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도록 가로막아, 예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면 나의 이 곤궁함도 어떤 일을 더 잘 하기 위함이 아닐까.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내 발목만 붙잡을 리 없을 테니 내가 만난 이 한권의 책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진혜정 시인은>>
1962년 진주 출신. 199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조로 당선했다. 경남시조·가여여성문학회 동인. 김해여성복지회 이사로 활하고 있다. 현재 김해 계동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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