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초원·빙하 모두 만날 수 있는 곳
 이민족에 대한 공감·포용력 커 매력적
 자연·문화 조화 이룬 건축·예술 주목
"과거에 머문 화석화된 곳 아니야" 강조



험준한 안데스산맥이 세로로 내달리고,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아마존강이 가로지르는 라틴아메리카 대륙. 사막, 초원, 빙하를 모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위대한 유산인 마추픽추를 남긴 잉카 문명, 거대한 피라미드를 남긴 아즈텍 문명, 수학과 천문학에 뛰어났던 마야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처음 만나는 라틴아메리카 이야기 41>은 경이로운 자연과 다채로운 문화가 숨 쉬는 라틴아메리카의 진정한 속살을 지리, 역사, 사회, 문화 등 41개의 키워드를 풀어낸 책이다.
 
대전외고 스페인어 교사인 저자는 편견 없이 라틴아메리카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일례로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신대륙에 '도착'했다고 표현한다. 그곳에는 벌거벗은 미개인이 아닌 아즈텍, 마야, 잉카와 같은 뛰어난 문명을 지닌 이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대륙 정복을 꿈꾼 유럽인들의 야욕은 1492년 이전과 이후의 라틴아메리카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콜럼버스와 코르테스, 피사로 등 정복자들은 금·은을 비롯한 자원을 약탈하고, 문명을 파괴하고, 언어를 위시한 문화를 강탈했다. 그들은 종교와 함께 전염병을 전했고,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죽음과 가난에 직면해야 했다.
 
라틴아메리카가 오랜 기간 스페인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끈질긴 독립운동과 혁명 때문이다. 1810년부터 1825년까지 시몬 볼리바르와 산 마르틴, 미겔 이달고 신부 등이 라틴아메리카 독립을 이끌었다. '라쿠카라차의 봉기'라고 불리는 '멕시코 혁명'과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도 일어났다. 라틴아메리카는 이젠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아래 정치적 긴장과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약과 살인이 난무하는 위험한 곳이란 부정적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하지만 저자는 찬란한 문명을 지닌 라틴아메리카의 저력이 무너지는 경제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치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나치게 저평가되고 있다고 본다. 엄청난 양의 천연자원과 수려한 자연이 만든 관광자원은 물론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혼혈인 '메스티소'는 라틴아메리카를 '가능성의 대륙'으로 보게 한다. 다양한 피가 섞인 만큼 이민족에 대한 공감력과 포용력이 크고, 주된 공통언어인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장점이 있다.
 
책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지리와 도시, 사회와 문화, 건축과 예술, 역사와 정치 등 크게 네 개의 파트로 구성돼 있다. 다양하고 풍부한 사례가 가득해 어느 부분을 읽어도 흥미롭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이 에베레스트(8848m)가 아닌 에콰도르의 침보라소산(6268m)'이란 도발적인 주장에 시선이 멈췄다. 물론 해발 고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에베레스트가 가장 높지만, '지구중심부로부터의 거리' 관점에서 보면 침보라소산이 가장 높다고 한다. 지구 중심에서 침보라소산이 있는 남위 1도까지의 거리는 약 21km지만, 지구 중심에서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북위 28도까지의 거리는 21km에 못 미친다. 이는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라 타원형이기 때문이다.
 
이스터섬과 갈라파고스 제도, 파타고니아, 우유니 소금 평원, 이구아수 폭포 등 경이로운 자연의 매력에 푹 빠지다가 자연과 문명, 문화가 만든 걸작인 라틴아메리카의 건축과 예술을 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부분에서 저자의 만만치 않은 식견과 내공을 가늠할 수 있다.
 
아즈텍 문명과 마야 문명이 꽃피웠던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에 있는 피라미드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대륙 고대 문명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다. 잉카 문명의 상징이자 하늘과 맞닿은 공중도시 '마추픽추'의 위용은 왜 이곳에 '남미 유적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란 수식어가 붙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론 극장이 세계 3대 또는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20세기 초 아르헨티나는 냉동 설비 등장으로 신선한 소고기가 유럽으로 수출되면서 세계 5위의 부자 나라가 됐다. 당시 상류층은 유럽을 동경했고 자식들을 파리로 유학을 보냈다. 이들의 문화적인 욕구도 높았고 1850년대에 많은 유럽의 오페라단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공연했다. 4000명을 수용하는 콜론 극장은 1908년 아르헨티나가 한창 잘 나갈 때 탄생했다.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우쭐함과 편협함이 얼마나 알량한지 깨닫게 하고 싶었다. 이곳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외국인들의 이국적 취향만을 만족시키는 화석화된 곳이 아님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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