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마세요 외할머니, 장학금 꼭 탈게요"

부모님 없이 컸어도 언제나 큰 버팀목인 외할머니 덕분에 영재중학교에 가게 됐고 누나도 대학 합격, 형편은 어려워도 희망 안 버려..우린 사랑하니까

민준이(14·김해시 내외동)의 가족은 외할머니와 누나뿐이다. 부모님은 민준이가 2살, 누나가 8살일 때 가족을 버렸다. 외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을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세상은 모질기만 했다.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일자리는 구하기 힘들었고, 그나마 힘들게 모은 돈도 사기당하기 일쑤였다. 외할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다. 점집에서 잡일을 하기도 했고, 남의 집 가정부가 돼 궂은일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들에게 번듯한 옷 한 벌 못 사주는 생활이 이어졌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가족은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김해로 내려왔다. 김해엔 외할머니의 오빠가 살고 있었다. 오빠의 도움으로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받을 수 있었다. 적은 돈이나마 생활비와 보육료도 후원받게 됐다. 도움을 주는 이웃도 생겼다.
 
김해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12년이 지났다. 민준이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14살이면 총각 될 나이잖아요." 민준이가 장난스럽게 말한다. 어두운 구석은 찾아볼 수 없다. 말 만큼 행동도 어른스럽다. 한창 가지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지만 민준이는 외할머니에게 무엇을 졸라본 적이 없다. 수학여행비도 학원비도 일찍 포기하고 혼자 삭혔다. 민준이는 외할머니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아무렇지 않다고 씩씩하게 말을 잇는 민준이의 차림이 독특했다. 아이는 한 눈에 보기에도 품이 큰 어른용 바지를 입고 있었다. 옷 투정을 할 나이에 씩 웃고 마는 민준이는 너무 일찍 어른이 됐다.
 
국가의 지원으로 먹을거리 걱정은 겨우 덜었지만 가족의 생활은 가난했다. 늘 생활비를 걱정해야 했다. 떠돌이 생활이 지속됐지만 아이들은 불행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뒤엔 항상 외할머니가 버티고 서 있었다. 꼿꼿한 성품의 외할머니는 수많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아이들을 지켜냈다. 가난해도 자존심은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아이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없는 살림이지만 교육에 쓰는 돈은 아낌 없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의 뜻처럼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민준이는 그 흔한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영재 판명을 받았다. 밝은 성격에 따르는 친구도 많다. 누나인 민강이도 지지 않는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레슨 받은 것이 전부인데도 각종 피아노 경연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상장을 휩쓸어 온다. 외할머니는 이런 아이들이 기특하고 고맙기만 하다.
 
올해 민준이네 가족에게 많은 변화가 생긴다. 누나인 민강이가 피아노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됐고, 민준이는 영재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외할머니는 기쁘면서 또 한편으론 걱정이 앞선다. 당장 민강이의 등록금과 민준이의 교복을 마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의 한숨소리에 따라서 눈시울을 붉히던 민준이가 조심스럽게 새해 소망을 말했다.
 
"장학금을 받고 싶어요. 외할머니에게 돈을 보태드리고 싶어요." 가족 중 누구도 자신을 위한 소망을 말하지 않았다. 민준이네 가족은 서로를 보듬고 지키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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