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성자 시의원

길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서면 바로 길 아니던가.
 
깊어진 가을, 옷이 두꺼워지기 시작한 지금도 코로나 19 위세가 만만치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편하지만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자 실천하는 시민정신들이 가을과 더불어 보다 성숙해진 분위기다. 근 한해 가까이 만남 자리를 자제하는 동안 갑갑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TV 시청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실내를 벗어나 둘레길 산책이든 등산이든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부쩍 늘어났다. 
 
김해 둘레길은 대부분 아름답다. 김해분성산 생태숲 둘레길, 분성산 편백숲을 포함하는 김해소도마을 둘레길, 진례 평지못 경관이 바라보이는 김해평지마을 둘레길, 김해봉화산 둘레길, 김해장유둘레길, 봉하마을과 이어진 화포천 습지생태공원 둘레길 들이 있다. 신어천, 해반천, 율하천, 조만강, 주천강, 낙동강 주변 강변 산책로가 있고, 도시 전체에 크고 작은 공원도 잘 갖추어진 편이다. 김해시 관내 29개 산, 502km에 달하는 302개 등산로와 사람들이 디뎌서 생겨난 샛길도 있어 비대면 비접촉 일상에서 나서서 걸을만한 길이 어디든지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문득 고맙다.   
 
지난주에 몇 명 시의원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삼계 감분마을과 한림 안곡마을을 잇는 고갯길을 탐방했다. 이 고갯길은 옛날부터 학생들이나 장꾼들이 오고갔던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삼계사거리에서 생림 방향으로 접어들어 곧바로 왼쪽으로 꺾어든 곳에 감분마을이 있다. 감분마을 회관 앞길은 고갯길로 쭉 이어지는데 지금은 차선이 구분되지 않은 포장도로로 변모했다. 과거 고갯길보다 일취월장 발전된 모습이겠지만 차 두 대가 교행 하는데 조심스러움이 동반돼야 하는 길이다. 감분마을에도 공장이 있고 고개 너머 안곡마을에도 공장이 많아 대형 트럭 한 대가 길을 꽉 채우고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니니 걷기에 꽤 위험해 보이는 길이다. 비록 협소한 길이지만 삼계고갯길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길로써 제 할 몫을 잃지 않았다. 쓸모 있는 길로 여전히 이용되고 있으니 길다움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삼계고개를 넘어 안곡리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안명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끝머리쯤이 바로 화포천이다. 화포천에 서면 멀리 봉하마을이 보인다. 삼계고갯길은 수로왕릉에서 해반천 산책로를 상류로 거슬러 감분을 거쳐 안곡 지나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로 연결되는 최단거리라고 한다. 투박함과 불편함, 김해의 민낯을 고스란히 지닌 삼계고갯길은 어쩌면 김해의 길 중에서 가장 못생긴 길일 수도 있겠다. 그게 매력일지도 모른다. 공원묘원이 내려다보이는 감분마을 쪽 고갯마루 풍광 속에는 공장 건물과 자연마을과 잡목 숲이 불균형 그 자체다. 안곡마을 쪽으로 보면 공장과 단감나무 밭과 몇몇 집들이 띄엄띄엄 공장과 이웃해 있다. 근래 김해 도시화의 아름답지 못한 단면을 고스란히 지닌 길,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길, 이 길을 일부러 찾아 걷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걷기'란 것은 분명 발 딛기를 초월하는 무엇인 게다. 예나 지금이나 발을 혹사시켜 위험을 감수하며 걸어갈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부조화와 부자연스러움조차 합일하듯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즐기며 걷는 도보여행자들의 촉수와 닮아지는 것이 그리 쉬울 것 같지는 않지만 왠지 그런 걷기의 내밀한 구석을 엿보고 싶어진 삼계고갯길 탐방이었다. 
 
매력적인 길, 걷고 싶은 길은 꼭 아름다운 길이어야만 할까?
 
"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 큰 일이 못 된다. 그러나 숲속에서 길을 잃듯이 도시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제대로 된 학습이 필요해진다. 이 경우, 길 잃은 사람에게 가로의 이름들은 삐걱대는 마른 나뭇가지의 목소리처럼 말을 걸어와야 하고 도시의 작은 골목들은 산 밑의 골짜기 못지않게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암시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  
 
길 잃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발 딛는 어디든 길이 될 테니까.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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