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가야문화축제와 통합 개최되는 '김해전국민속소싸움대회' 출전 소를 미리 만나다

"챔피언 먹고 나서 춤추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겁니다. 소를 키우면서 내가 젊어지는 느낌이에요. 즐거우니까."

오는 4월 4일부터 8일까지 김해에서 제36회 가야문화축제가 열린다. 여러 축제 프로그램 중에서도 민속행사인 '김해전국민속소싸움대회'가 특히 눈길을 끈다.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행사인데, 가야문화축제와 처음으로 통합 개최된다. 김해시는 두 행사의 동시 개최를 통해 예산을 절감하는 한편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김해시가 주최하고, 한국소싸움연합회김해시지회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외동 시외버스터미널 옆 특설경기장에서 열린다. 참가하는 소들은 태백(병종) 600~660kg, 한강(을종)661~750kg, 백두(갑종) 751kg 이상 등 총 세 체급으로 나뉘어진다. 우승한 소 주인에게는 태백급 500만 원, 한강급 600만 원, 백두급 7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오는 4월 5일 참가 접수와 함께 대진 추첨을 한 뒤 6일부터 본격적으로 예선이 시작된다. 8일에는 준결승전이, 9일에는 최종 결승전이 펼쳐진다.
<김해뉴스>는 이번 대회에 참가할 '김해의 싸움소'를 먼저 만나봤다.

■ 소싸움이란
원형의 경기장 안에서 두 마리의 육중한 소들이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어 뿔을 맞부닥친다. 소들은 콧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뿌연 모래먼지를 일으킨다. 소싸움이다.
 
소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농경문화가 정착하기 시작한 시점에 일부 목동들이 즉흥적인 놀이로서 즐기기 시작한 게 점차 확산된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이후 소싸움은 마을단위나 씨족단위에서 서로의 명예를 걸고 힘을 겨루는 '과시의 장'으로 이용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 곳에 모여 풀을 뜯던 소들이 서로 힘을 겨루게 됐고, 소의 주인들도 자신들의 소가 이기라고 응원을 한 게 지금의 제도화된 소싸움 형태로 발전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소싸움은 추석에 주로 이루어져 오다 일제강점기때 공식적으로 폐지되기도 했으나, 그 맥은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다. 그러다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놀이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싸움소의 뿔모양은 일반 소와 다르다. 비녀처럼 일자로 누워있는 비녀뿔, 정면을 향한 옥뿔, 뒤로 누운 재빼기뿔,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노고지리뿔 등이 있다.
 
소들은 싸움을 할 때 여러 가지 기술을 이용한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와 머리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머리치기, 뿔과 뿔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좌우로 흔들며 상대를 공격하는 뿔치기, 상대 소의 목을 감아 돌리거나 들이받는 목감기와 목치기, 머리를 상대 소의 목 밑에 깊숙이 밀어 넣어 상대소를 들어 올려 밀어붙이는 들치기와 밀치기 등이 있다.
 
소싸움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은 단순명료하다. 한 마리가 꽁무니를 빼면서 도망가면 패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김해의 싸움소를 만나러 가 보자.

■ 싸움소, 훈련하다
김해 삼정동 전산마을의 논 한가운데로, 비닐로 단단히 싸놓은 축사 한 곳이 보인다. 일흔이 넘는 나이에 키가 180㎝로 훤칠한 최성호(75) 씨가 축사 안으로 들어서자 소 아홉 마리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한다.
 
▲ 최성호 씨
최 씨가 키우는 소들은 특별하다. 엄청난 몸집과 부리부리한 눈, 주름지고 널따란 미간, 시퍼렇고 단단한 뿔…. 아홉 마리 중 여섯 마리가 싸움소이다. 가까이서 직접 보니 요즘 말로 '카리스마' 혹은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25년 동안 싸움소를 길러왔다는 최 씨. 그는 지금까지 20번 정도 우승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건축업을 했지만, 농촌에서 농부 아버지를 보고 자란 터라 소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결국 하던 일을 접고 고향인 김해에서 소를 키우게 됐다. 여섯 마리는 싸움소로 정식 등록돼 있다.
 
"어이!"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멀뚱멀뚱 최 씨를 쳐다보던 싸움소 '아미새'가 최 씨의 외마디 구호에 900㎏이 넘는 육중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얘들은 사람 말을 다 알아듣습니다. 저희들은 나한테 말을 안 하지만 나는 말을 계속 하죠. 그러다 보면 알아듣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싸움소는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말을 안 듣는다고 때리기라도 하면 그 다음에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에서 졌을 때, 오히려 더 사랑을 많이 줘야 잘 따른다고 한다. 소가 우직하고 미련하다고? 이쯤 되면 그런 편견을 그만 버려야 할 듯 싶다. 어떤 소들은 주인의 차 소리를 알아듣고 벌떡 일어서기도 한다니!
 
소들을 위해 최 씨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인다. 소들에게 먹일 아침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커다란 솥에 사료와 짚, 콩, 보리쌀을 넣고 소죽을 쑨다. 때때로 인동초, 율무, 인삼 등 10가지가 넘는 한약재를 사다 고아 먹이기도 한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들도 함께 챙겨준다. 기관지에 좋다는 도라지도 자주 먹인다. 소들이 힘이 세고 건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아침을 먹은 소들은 한 마리씩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한다. 싸움소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데,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니 흡사 비장한 각오를 지닌 '공포의 외인구단' 같다.
 
소들은 힘을 기르기 위해 타이어를 매고 달리거나, 무거운 쇠 목걸이를 목에 걸기도 하고, 나무를 대상으로 뿔치기를 하기도 한다. 풀쩍풀쩍 뜀박질도 하고, 산을 타기도 한다.
 
물론 타고난 기질도 중요하다. 꽁지는 불뚝 올라 가늘고 멋지게 내려와야 하고, 눈은 동그랗고 멋져야 하며, 얼굴이 길어야 한다. 앞다리는 발목이 가늘어야 민첩하고, 귀 속에 털이 많아야 모질고 인내심이 있다. 최 씨는 그렇게 설명한다.
 
운동하는 걸 볼 시간이다. 최 씨는 이번에 '아미새'를 비롯한 몇 마리를 출전시킬 계획인데, 축사를 방문한 날 비가 온 탓에 최 씨는 '일섭이'만 불러냈다.
 
▲ 김해 삼정동 전산마을 논 한가운데에서 싸움소를 기르고 있는 최성호 씨가 가야문화축제 때 개최될 김해전국소싸움대회를 앞두고 '일섭이'와 함께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일섭이는 목을 쭉 빼고 타이어가 달려있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일섭이와 함께 운동 코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허!" 최 씨의 구령에 맞춰 일섭이가 타이어를 끌고 걸어나갔다. 일섭이는 익숙하다는 듯 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투둥…투둥….' 타이어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났다. 타이어는 비어 있는 줄 알았는데,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있었다. 타이어가 60㎏, 돌덩이가 40㎏, 합쳐서 100㎏….
일섭이가 길을 가자 마을의 개들은 꼬랑지를 내리고 잔뜩 웅크린 채 쳐다본다. 주변 풍경이 새삼 신기한 건지, 힘들어서 꾀를 부리는 건지 일섭이가 잠깐 주춤거리자 최 씨는 다시 구령을 붙인다. 구령에 맞춰 일섭이는 발걸음을 옮긴다. "잘가네~." 최 씨가 힘을 복돋워 준다. 2㎞가량의 길을 일섭이와 최 씨는 같은 속도로 걸어 나갔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3바퀴를 더 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힘이 든다.
 
최 씨는 축사 안에 방 한 칸을 마련해 놓았다. 집이 부산에 있어서 소들을 돌보는 일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최 씨가 장롱 안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1995년 진주에서 열린 소싸움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찍은 사진이었다. 최 씨는 사진 안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녀석 이름이 '탱크'였는데 자기보다 큰 소한테도 주눅들지 않고 싸워 이겼죠." 사자, 왕뿔, 돌식이…. 최 씨가 배출한 챔피언 소들의 이름이 주욱 나왔다.
 
싸움소의 기질을 타고난 소들을 한 눈에 척 보면 안다고 자랑하는 최 씨는 앞으로도 계속 싸움소를 기를 작정이라고 말했다.
 
"챔피언 소가 되려면 소가 타고나기를 잘 타고 나야 하고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주인이 소가 아픈지 안 아픈지, 코뚜레는 괜찮은지, 소소한 것들을 포함해서 소에게 항상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죠. 저요? 전 이 녀석들을 키우면서 사는 게 정말 즐겁고 좋습니다.
 
한편, 예전에는 싸움소들이 나이를 먹거나 싸우는 걸 힘들어 하면 대부분 도축장으로 보냈지만 지금은 다른 이에게 넘겨 가능하면 소싸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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