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진 김해뉴스 독자

전염성이 강한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코로나19'. 코로나는 국가 대위기를 극복할 정신적인 원동력이었던 '문화 예술'의 근간을 뒤흔들고, 시민들의 여린 삶을 헤집어 놓았다. 항상 해결책보다 원인 혹은 주범을 찾던 현대 인간사에 갑작스럽게 퍼져 전 세계가 해결책을 모색하게끔 만든 이 전염병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연하게 여기며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일상 속 공연 예술의 가치를 일깨워줬다. 필자 역시 그런 사람 중 한 명으로 2020년 코로나 발병으로 인해 운영하던 연극 단체를 무기한 연기, 폐단하게 된 이 시대의 불우한 젊은이다.
 
서두를 무겁게 적어서 그렇지, 실제로는 공연 예술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는 등 아주 유익하게 코로나를 활용 중이다. 얼마 전에도 시흥을 방문해 '포스트 코로나 : 문화, 예술 그리고 도시'라는 주제로 진행한 포럼에 참석해 말 한 마디, 입 뻥긋할 틈도 없이 발제자와 토론자의 말을 받아 적고 나눠준 책자를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눈이 빠져라 보던 필자다. 3시간 남짓한 포럼보다 왕복 이동 시간이 더 걸리는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그때 방문하지 않았으면 정신적으로 더 고단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폐단 이후 코로나에 대한 막연한 복수심과 더 막연한 해결법에 피폐해져 있었다. '비대면', 공연 예술과는 전혀 관계없을 것만 같은 단어가 마치 구세주의 메시지인 것 마냥 어디서든 들려왔다. 어느 재료든 튀기면 맛있다는 말처럼, "어느 분야든 비대면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아 기름 쩐 내를 맡은 것처럼 입맛이 뚝 떨어졌다.
 
입맛을 되찾은 건 포럼에 참여한 어느 공연예술기획가의 말 때문이었다. "코로나가 발병하니까 안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가능해지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빨간색, 검은색으로 칠해진 머릿속에 파스텔 색채가 한 줄 그어진 느낌이었다. 현실성 없는 희망 고문이 아니라 진짜 그렇다고 누군가 증거를 눈앞에 떡하니 들이대는 기분. 사실 증거는 사방에 널려 있었다. 코로나에 의해 잃은 게 많았지만, 동시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던 모든 것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비대면'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코로나가 발병하기 전이라면 어느 누가 공연 예술을 무관중으로 실시간 중계를 통해 보여줄 생각을 했을까? 아마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사람의 질타를 받고 생각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쩌면 더욱 기상천외한 해결책이 등장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비대면처럼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공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맞이한 게 아닐까?
 
"코로나19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으로 나뉠 것"이라고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예정된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우연한 재난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원인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을 바에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그건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의 몸짓이다. 그렇기에 나의, 공연예술의, 이 세계의 '지금'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이며 적응이 아니라 극복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껏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많은 일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곧 손을 뻗어 그것을 잡을 것이다. 공연 예술 코로나 위기가 아니라 '공연 예술 코로나 특수'일지도 모를 지금, 우리는 아주 조금 머릿속 긍정 회로를 돌릴 필요가 있다. 부정 회로는 더는 돌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돌렸으니까 말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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