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미경 김해뉴스 독자위원·우리동네사람들 간사

장면1. 밤늦은 시간, 양동행 버스에 '이주노동자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간만에 동료들과의 외출이었을 테니, 떠들썩한 건 당연지사. 천둥치듯 떨어지는 운전석의 불호령. 야~, 조용히 안 해~? 순간 감돈 정적 속에 벙찐 건 나다. 늘 기분 좋게 인사 건네던 바로 그 기사 분 맞아?
 
장면2. 대형마트 출구로 한 젊은 커플이 나오는데, 갑자기 장난치듯 한 다리를 절룩거리며 '장애인' 흉내를 내는 남자. 여) 그러다 천벌 받아서 진짜 장애인 된다. 남) 네가 책임지겠지. 여)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장애인 되는 건 용서 못 한다. 바로 버린다. 얄짤없다! 참 거리낌없다….
 
장면3. '모두'의 지혜를 이끌어내기 위한 '참여'와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꽤 이름난 회의촉진자 교육. 정확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모호한 원어 용어들'의 홍수다. 영어가 익숙한 이들은 느낌이 더 산다지만, 직관적 해독이 어려운 누군가에겐 주눅이라는 심리적 장벽이 벌써 가로막는다. '불통'의 벽이다. 이 무슨 이율배반이란 말인가!
 
시기는 달라도 김해에서 직접 겪었던 상황들이다. 공통점? '문화다양성 감수성' 부족!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감히 성인 고객들을 아이 취급하며 반말로 나무라고, 공공장소에서 장애가 장난거리가 되거나 용서조차 못 받는 대상으로 함부로 재단되며, 외래어 남발로 한국인이 한국땅에서 말과 글을 제대로 이해할 알권리를 침해받기도 하는 것이다. 거기에 무의식중 쏟아내는 각종 차별 발언이나 언행불일치로 곤혹을 치르는 정치인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랐다'고 비난받아 마땅한 개념 없는 사법부, 차별금지법을 인권보다 당리당략이나 표밭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입법부 역시 별 다를 바 없는 맥락 속에 놓여 있다. 
 
그만큼 문화다양성에 대한 감수성 부족은 사회 각계각층과 우리 일상 속 깊숙이 퍼져 있어 누구나 빠지기 쉬운 함정인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의 존재론적·인식론적 한계로 인해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운명을 타고났는지 모른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화다양성 감수성'이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숨겨진 차별을 매순간 알아채기 위해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즉 우리는 나빠서라기보다 모르거나 생각할 기회가 없어서 차별주의자가 되기에, 문화다양성 감수성을 기르는 일상적 교육과 훈련은 필수적이다. 
 
지난 10/31, '교실 속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김해문화재단의 문화다양성 프로그램이 일부 보수기독교단체들에 의해 '급진적 성교육'으로 곡해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었다. 관계자들의 적절한 대처로 진행은 되었지만, 한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게 우려되는 지점이다. 
 
'문화다양성' 측면의 가치가 풍부한 고대 '가야'와 현대 '민주주의'의 성지라 불리는 '봉하마을'을 역사적 자산으로 지닌 김해시는, 연관성 깊은 문화다양성 조례와 민주시민교육 조례를 영남권 기초지자체 중 유일하게 동시에 갖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도시들을 '따라' ~도시 인증을 수집하는 것보다 장점에 집중해 우리가 '선도'해 나갈 수 있는 '특화된 도시 상표'를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 문화다양성은 도시의 과거로부터 현대적 의미를 추출해 '포용적 미래'로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줄 '도시의 미래상'으로 손색없는 개념으로, 갈등 조정의 좋은 방안도 될 것이다. 관건은 이미 조례로도 근거를 마련한 이 좋은 '가치'를 어떻게 잘 성장시켜 나가느냐로, 이때 요구되는 것이 그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결단력 있는 지도력'이다. 즉 내부적으로는 일관성 있는 규칙에 따라 선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외부적으로는 폭풍우라는 위험에 맞서면서 목적지까지 모든 책임을 지고 항해를 지휘하는 선장처럼, 한 도시 역시 가치로운 목표를 정했다면 온갖 부당한 내외부적 압력에 뇌화부동하지 않고 그 '정체성'에 맞게 성장해 나가도록 명확한 철학과 원칙에 근거해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뚝심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김해의 미래를 그려보며, 이 포용적 가치의 씨앗을 심는 데 애써온 김해시와 김해문화재단의 두 결정권자께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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