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민기 문학평론가

194X년 4월 16일 아침, 평온하기 그지없는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나서다가 피를 토하고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병원을 관리하는 수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리외는 퇴근길 자신의 집 복도에서도 피를 토하고 쓰러진 쥐를 발견하고선 사태의 심각성을 감지한다. 그리고 며칠 뒤, 도시는 온통 피를 토하는 쥐들의 사체로 덮이기 시작했다. 페스트의 시작이었다. 평온하기 그지없던 이 조용한 해안 도시는, 사람들의 곁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쥐들로 인해 순식간에 공포의 도시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도시는 봉쇄되었고, 봉쇄된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절망과 죽음이 혼돈하는 재앙의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페스트』(1947년)는 이렇게 시작한다. 이 처참한 비극을 다룬 소설 『페스트』는, 뜻하지 않은 재앙 앞에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를 여러 군상의 인물들로 드러내 보인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파리에 두고 온 애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봉쇄된 도시를 빠져나가려 하고, 밀매업자 코타르는 이를 기회로 돈 벌 궁리에 몰두한다. 파늘루 신부는 이 재앙이 하나님이 내린 심판이라며 모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를 설파한다. 한편, 이 부조리함에 맞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아 일상에 충실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다. 의사 리외, 여행자 쟝 타루, 시청 직원 그랑 들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이 참담한 비극을 극복하는 근원적 힘이 결국엔,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스스로에게 있음을 까뮈는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는 '백색실명'이라는 상상력으로 인간사회에 닥친 재앙을 그려냈다. 오직 한 사람만(안과의사 부인)을 제외하고 모두가 백색실명에 감염되어 버린 공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존엄한 존재가 아니었다. 눈 먼 인간들의 온갖 타락과 방종을 오로지 혼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의사 아내는, 그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차라리 자신도 눈이 멀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목숨을 의지하는 사람들과 또 혼자서라도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존엄, 그리고 이 모든 참상을 언젠가는 증언해야 할 유일한 목격자로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희생을 감수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처럼 『페스트』와 『눈 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공동체에 닥친 재앙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각자의 일상에 묵묵히 충실할 것과,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의 존엄을 잃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며칠,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수년 간 밤잠 없이 공부에 매달린 학생들이 며칠 뒤엔 '수능'을 치러야 한다. 그 새벽, 전국의 많은 학부모들은 새벽기도로 또 잠을 설칠 것이다. 백신 개발 소식에 자칫 긴장의 끈을 풀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두가 돌아볼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K-방역'의 명성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만든 결과이다. 그들 앞에 적어도 부끄러운 '나'는 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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