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 비워둔 자리 돈 벌어 돌아가야죠" 

변명 한 번 못하고 쫓겨난 일자리에 강제출국의 악몽은이 겨울을 더욱 움추리게 하지만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 생각하면 새로 직장 얻어야죠 열심히 하려구요

뭔지 몰라요." 베트남 근로자 뚝 마잉(27)은 꿈을 모른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는 '꿈' 이라는 한국 단어를 몰랐다. 하지만 베트남어로 꿈을 물어도 뚝 마잉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팍팍한 현실을 사는 그에게 꿈은 너무 멀리 떨어진 말이었다.
 
그는 얼마 전 직업을 잃었다. 아직 이유는 모른다. 그냥 나가라고만 했다. 한국어가 서툴러 변명 한 번 못했다. 이전까지 벌어 둔 돈은 동전 한 푼까지 털어 모두 가족에게 송금했다. 그가 보내주는 돈만 기다리고 있을 가족 얼굴이 생각나서 뚝 마잉은 겨울 코트 한 벌 살 돈조차 남겨두지 못했다. 얇은 가을용 재킷은 생애 처음 만난 한국의 추위를 감싸주지 못했다. 그의 고향 베트남은 한 겨울에도 20도가 웃도는 곳이다. 27살 베트남 청년은 꿈을 꾸기엔 마음이 너무 시렸다.
 
지난 한 해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유독 가혹한 시간이었다. 특히 12월은 말 그대로 지옥 같았다. 한 달 새 김해에서만 외국인 근로자 3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생림면 고철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국인 여성 근로자는 고철 압축 기계에 끼여 생떼 같은 목숨을 날렸고, 그 며칠 뒤엔 불법도박 단속을 피하던 베트남 근로자 2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뚝 마잉 씨는 이 사고로 많은 친구를 잃었다. 익사한 두 명은 물론이고 도박에 가담한 수십 명의 베트남 근로자가 자국으로 강제 출국 당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쫓겨나는 동안 뚝 마잉 씨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신년 내내 뚝 마잉 씨와 그의 친구 하오(26) 씨는 새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언제 불법 체류자로 발각돼 강제출국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추위도 잊게 했다.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녔다는 그의 손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돈 많이 벌고 싶어요." 그는 시린 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으면서 말했다. 서툰 한국어지만 힘을 실은 다부진 어조였다. 부자라는 말도 반복했다. 그의 이야기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다. 뚝 마잉 씨에겐 어린 동생 둘과 연로한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 부모님은 그가 보내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동생들을 공부시킨다. 뚝 마잉 씨가 빨리 부자가 돼야 하는 이유다.
 
뚝 마잉 씨의 마른 어깨로 홀로 짊어진 삶의 무게가 무겁다. 가족이 원망스러울 것도 같은데, 동생 둘이 얼마나 개구쟁이인지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오른다. 인터뷰 동안 처음 보여준 밝은 모습이다.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은 지금쯤 신년 축제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베트남에선 새해에도 날씨가 아주 따뜻하다. 사람들은 모두 거리에 나와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불꽃놀이를 즐긴다. 뚝 마잉 씨는 "우리 가족이 제 자리를 비워뒀을 거예요"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그는 문득 새해 소원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나 돈 많이 벌어서 베트남에 부동산 살 거예요. 그럼 우리 가족 다 같이 돈 벌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그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김해 거리를 걷는다. 인파 없는 쓸쓸한 김해의 새해 거리를 배회하는 그는 따뜻한 베트남으로 돌아가 새해 축제를 즐기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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