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에서 열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의 한 장면.

관객 위한 '현대무용 입문서'
모든 장르를 넘나드는 무대
역동적인 춤의 언어 선사해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율



무대 위로 다프트 펑크의 '이모션'이 흐른다. 한 사람이 무대 중앙 초록색 조명 아래 웅크리고 누워 있다. 무용수들은 꼼짝도 않는 그의 주위를 둘러싼 채 일정한 몸짓으로 춤춘다. 발길질을 하는 것 같다가도, 두 팔을 하늘 높이 치켜세운다. 이윽고 주변을 에워싸던 사람들이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미동도 없던 그는 돌연 일어나 무대 앞에서 춤추기 시작한다. 앞서 댄서들이 추던 춤이다. 음악에 맞춰 하늘을 향해 팔을 쭉 뻗었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한다. 무대를 꽉 채우던 음악이 서서히 사라지지만, 그의 춤은 멈추지 않는다. 숨소리가 온 관객석을 울린다. 흐트러지지 않는 동작은 '몸이 부서질 때까지 추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지난 1일 저녁 김해문화의전당에서 펼쳐진 '바디콘서트(BODY CONCERT)' 2번째 장, 시속80㎞ 3번 트랙은 이랬다. 김해문화재단은 2020년 연말을 장식할 첫 공연으로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바디콘서트를 택했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김보람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2007년 창단된 순수예술단체이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에 등장한 열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들은 이날치 밴드와 호흡을 맞추며 목포, 안동 등 관광지를 배경으로 개성 있는 리듬의 춤을 구사했다. 영상 속에선 댄서들의 가벼운 몸동작과 선글라스, 그야말로 '힙'한 옷차림새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무대 위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어떨까.
 
홍보 영상 속 다채롭고 대중적인 모습을 기대했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무대 위 그들은 훨씬 더 대담하고, 예술적이며, 역동적이다. 현대무용과 발레, 스트리트댄스 등 다양한 장르의 춤과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이 뒤섞인다.
 
흰색 셔츠, 검은 정장, 발레 타이즈, 검은색 물안경과 두건, 표정 없는 얼굴. 그들은 오롯이 몸으로만 음악과 춤을 표현한다. 춤을 구현하는 몸만이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작품에서 눈과 머리를 꽁꽁 숨기고 무용수 각자의 개성을 차단한다. 관객들을 오직 춤에 집중시키기 위해서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인 바디콘서트는 인트로·시속 80㎞·시속 120㎞·시속 180㎞·목적지·피날레로 이뤄진 6개의 장과 앵콜곡을 포함한 총 11개의 곡으로 구성돼 있다. 다프트 펑크의 '슈퍼히어로즈'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면 객석에 앉아있던 무용수들의 신나는 춤이 시작된다.
 
이어 다프트 펑크의 '이모션'과 헨델의 '울게하소서(Lascia ch'io piang)', 엠씨 해머의 'It's all good'이 2장을 채운다. 홀로 있던 무용수가 다른 무용수와 잠시 섞여든다.
 


3장은 네이트 독의 'I Got Love',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박지윤의 '바래진 기억에'로 구성된다. 속도도, 몰입감도 가중되기 시작한다. 일순간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그리고 4장, '시속 180㎞'의 절정이다. 비욘세의 '데자뷰(Deja Vu)', 그리고 'Oh Ja'를 배경으로 한 춤이 펼쳐진다. 무용수들은 바지를 벗어던지고 타이즈를 입은 채 발레와 현대무용의 춤사위를 표현한다.
 
드디어 '목적지'다. 막시밀리언 해커의 '다잉(Dying)'이 무대 위로 찬찬히 깔린다. 모든 무대가 열리고 관객들은 잠시 숨을 고른다. 무용수들이 넓어진 무대 위를 원을 그리듯 굴러다닌다. 후반부, 호소력 짙은 해커의 목소리와 음악을 끝으로 무대는 조용해지지만 춤은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한계란 없다.
 
곧 무용수들이 일어나 두건과 물안경을 벗은 채 관객들의 인사를 나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며 아쉬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던 순간, 마지막 앵콜 무대가 열린다. '피날레'다. 진도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에 현대적 감성이 담긴 춤사위가 어우러진다. 익숙한 가사와 박자에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인다. 박수 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무용수들은 관객석으로 내려온다. 음악이 완전히 빠진 이후에도 박수는 멈추지 않는다. 무용수들은 그 박수소리가 원래 정해진 음악인 것처럼 춤을 이어간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바디콘서트는 한 마디로 '애매모호한(ambiguous)' 무대였다. 누가 그들의 무대를 단번에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 같기도, 춤에 음악이 곁들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각기 다른 춤을 추고 있어도 같은 춤을 추는 것 같았고 오히려 그 반대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알 수 없는 리듬과 동작마저 절도 있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 한 점은 '무대 위 고요'에 있다. 11개의 곡 사이마다 음악은 사라지고, 공연장에는 무용수와 춤과 관객만이 남는다. 무용수의 숨소리는 물론 공기를 가르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고요가 이어질 때 관객의 집중력은 전에 없이 치솟았다. 고요 속 역동과 역동 속 고요가 느껴졌다.
 
앵콜곡이 끝나고 맨 얼굴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마주한 기억이 생생하다. 놀랍도록 한 지점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온 얼굴들이었다. 아직 그들의 강렬함에 매료된 채 박수갈채를 보내는 관객들처럼 말이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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