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고 싶은 책을 정할 때 나만의 편견(?)을 가지고 고른다. 나무색이면 좋고, 나무의 질감이면 더 좋다. 그리고 아버지를 떠올려주는 몇몇 단어들. 박하사탕, 도포자락, 이런 기준들이 책을 고르는 내 마음의 잣대이다.
 
존 휴즈를 만난 건, 대폭 인상된 수업료로 머리가 아팠던 아들의 네 번째 등록금을 내던 날이었다. 통장 잔고가 바닥난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갈색 톤과 거친 질감에 싸인 존 휴즈의 책 '아버지와 나'가 눈에 띄었다.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유년이 또르르 튀어나와 허허로웠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 되어 "아버지"를 되뇌며 그날 하루의 첫 번째 행복으로 존 휴즈를 안고 나왔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담긴 실화를 그림과 함께 엮은 책이다. 예술가인 아들과 보수적인 목사 아버지는 사사건건 부딪치며 살아간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긴다. 애니메이션 제작자이기도 한 존 휴즈는 아버지를 연필로 그려 놓았다. 책 속에는 거친 터치로 아버지의 치매가 그려졌다.
 
아버지는 소파의 낯선 물건처럼 늙어갔다. 강인하고 고집스러웠던 아버지는 점점 아이로 변해갔다. 일곱 살 어린 고집들이 되살아나는 아버지는 거꾸로 자라는 나무같았다.
 
누가 아버지를 맡을 것인가. 아버지는 마치 세일중임에도 팔리지 않는 물건처럼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서성이셨다. 아무도 아버지를 떠맡지 않으려 하는 사이, 아버지는 자신의 밖에서 인간의 조건들을 상실해 가며 점차 변해갔다. 가끔 속이 빈 나무처럼 웅웅 소리를 내고 있을 뿐,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는 시선은 현실이 아닌 곳에 닿아있었다. 기저귀를 차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아버지가 자신의 밖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다.
 
교회를 다녀온 어느 날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버렸다. 아들은 아버지의 묘비명에 새겨진 아버지의 이름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왜 아버지와의 거리를 좀 더 좁히려 노력하지 않았는지 후회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지를 깨닫는다. 하지만 아들은 이미 그때의 아버지처럼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존 휴즈의 삽화 속에서 나는 소설보다 긴 여운을 느꼈다. 도저히 철들 것 같지 않던 아들의 번민도 차라리 아름다운 사랑처럼 다가왔다.
 
나의 아버지는 내게 스승이셨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날이면 고향의 강이 먼저 내게 도달한다.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는 길은 산을 구비 돌아 아주 먼 옛길을 가는 듯 하지만, 내겐 늘 추억의 한편처럼 눈을 감고도 그 길이 가깝다.
 
지금도 존 휴즈의 '아버지와 나'를 읽으면, 어린 여식을 데리고 고향의 강가에서 말없이 서 계시던 내 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손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끔은 내 안의 아버지가 나와 함께 산을 오르고, 함께 길을 걷고, 함께 창가에 앉아 있어준다. 그 순간의 힘들이 지금의 나를 이끌어왔고, 나를 살게 하는 지혜가 되어주었다. 오늘, 존 휴즈를 통해 만나는 내 아버지는 어쩌면 우리들 모두의 그리운 상처일 것이다. 마치 일곱 살 골목 어귀에서 그 하염없던 기다림처럼.


>>최은옥 김해야학 교사
1961년 밀양 출신. 연세대 수학심산교육 자격 및 수학 관련 지도 자격을 취득했다. 2000년부터 김해야학 수학교사로 봉사를 시작해, 현재까지 야학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며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 중등 수학교사로도 봉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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