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어쩌면 긍정의 과잉이 탈이었다. 무한히 꿈꿀 수 있고 그것을 실현한다는 것은 기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작동의 원리만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한다. 내가 과연 가는 길이 맞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많이 가지면 행복한 것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일까 하는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어쩌면 뚜렷하게 성공하지도 못했고 별다른 성과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존재의 증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인문학 강좌를 찾아 다녔고, 불교에 심취해서 불서 관련 책도 보았다. 물론 나름의 해답이 그 속에 있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들러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바닷물을 마시면 아무리 마셔도 타는 갈증을 어쩔 수 없듯이 내가 가진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목이 타고 갈증이 났다.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추천도서 목록에서 봤지만 무심코 지나쳐버린 책이었다. 김해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던 길에 우연히 이 책의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도 어디선가 본 듯해서 뽑아 들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그래, 맞어 맞어"하면서. 나는 욕망을 꿈꾸는 자유는 무한대로 가졌다. 그러나 그 욕망을 멈추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잊은 채, 오랫동안 그것을 잊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살아왔다.
 
책 속에는 '벽돌 두 장'이라는 일화가 있다. 한 벽돌공이 천개의 벽돌을 쌓아올려 벽을 세웠다. 다른 벽돌들은 모두 일직선으로 똑발랐지만 두 벽돌만은 각도가 어긋나 있었다. 벽돌공의 눈에 여간 눈에 거슬리는 것이 아니었다. 벽을 허물고 다시 쌓고 싶었으나, 주지 스님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쌓을 수밖에 없었다. 벽돌공은 그 벽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방문객이 왔을 때 그 벽을 볼까봐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방문객이 그 벽을 보고야 말았다. 그 방문객은 "매우 아름다운 벽이군요"라고 말했다. "벽 전체를 망친 저 잘못된 벽돌 두 장이 보이지 않나요?"라는 물음에 방문객은 "물론 내 눈에는 잘못 얹힌 두 장의 벽돌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하게 쌓아올려진 998개의 벽돌들도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잘못 쌓아올린 2개의 벽돌에 연연해하면서 불안해한다. 내가 가진 것은 보지 않고 가지지 않은 것, 내가 잘하는 것보다는 내가 못하는 것을 보며 자신을 창피해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잘하는 것보다는 못하는 것에 집중하기 일쑤다. 무조건적인 칭찬보다는 현실을 현명한 관점으로 직시하는 눈이 필요하다.
 
쉭쉭거리는 뱀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어떻게 처신을 해야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무조건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착한 척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어떤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쉭쉭거리며 자신을 보호할 행동은 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살되 지혜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이 책 안에 있다.


>>하영란 시인은
1969년 경남 진주 출신. 2010년 '새시대문학'을 통해 시로 등단했다.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현재 '형상과 사상' 동인, 가야여성문학회 동인, 김해문인협회 회원, 산책독서회 회원, 벨라독서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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