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지난달 31일 ‘낙태죄 없는 202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상 ‘임신중단수술’ 합법화
 대체 법안·시스템 없어 ‘혼란’
"여성 안전 위한 개정안 촉구"



지난 1일,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임신 주수에 상관없이 임신중단수술을 받거나 시행한 임산부와 의사가 처벌받지 않게 됐다. 이는 낙태죄가 형법으로 규정된 지 67년만의 변화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죄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법안을 만들도록 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24주까지는 조건부로 허용하는 내용의 법률개정안을 예고한 바 있으나 결국 벽을 넘지 못해 국회에 계류됐다. 국회가 대체입법을 이뤄내지 못한 채 기한을 넘기면서 낙태죄 처벌 조항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다. 
 
사실상 '임신중단수술의 합법화'가 이뤄진 셈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시스템이나 개정안이 없어 의료계와 여성계는 혼란에 빠졌다. 특히나 여성의 임신중단수술의 안전과 의료시스템의 안정화를 위한 제도가 전무해 각계의 입법촉구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해·창원 산부인과 5곳 모두 시술 거부 = 김해·창원 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 5곳에 임신중단수술 가능여부를 문의한 결과 5곳 모두 시술을 진행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부분 의사의 도덕관 혹은 신념을 이유로 들었다. 즉, "개인의 양심과 직업윤리가 맞지 않아 임신중단수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달 28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선별적 낙태 거부' 의사를 밝혔다. 호소문에는 '조건 없는 낙태는 10주 미만의 경우에만 시행할 것'과 '여성의 안전을 지키고 무분별한 낙태를 막기 위한 22주 이후 낙태 요구 불응', '의사의 낙태 진료 거부권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현재 산부인과 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신중단수술 진료를 거부할 경우, 환자는 의료법에 따라 고발이 가능하다. 다만 의사는 진료과목 부재 혹은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경험 부족, 의사의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진료행위 등을 사유로 진료 거부권을 내세울 수 있다.


◇"안전한 임신중단 위한 제도 마련돼야" = 한편 여성계는 "처벌의 시대는 끝났다"며 '낙태죄 없는 2021년'을 환영하는 입장이다. 여성계는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시스템과 인공임신중단을 위한 약물 허가, 임신중단수술 건강보험 급여화 등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해여성의전화는 "낙태죄 폐지에 전면 찬성한다. 이제부터는 안전권을 위한 개정안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며 "생명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여성의 선택권과 건강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가 곧 무분별한 낙태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지나친 예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신중단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것은 무의미하며, 낙태죄를 묻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종교계 "태아의 생명권 존중해야" = 다만 입법 시한을 넘겨 낙태죄 효력이 상실됐을 뿐, '폐지'가 아닌 입법공백상태라는 시각 역시 존재한다. 언제든 다시 낙태죄를 규정한 헌법 개정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계 역시 낙태죄 폐지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김해기독교연합회 한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로 생길 수 있는 무분별한 낙태는 곧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 등 심각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수정된 태아는 그 자체로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새로운 낙태죄 법안이 발의될 때까지 이 같은 의견을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시민 견해 제각각… 신속한 입법 촉구 = 시민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김해에 거주 중인 유(남·28) 모 씨는 "낙태죄 자체가 생명 윤리라는 가치관 속에서 정작 그 생명을 잉태하고 감당해야 할 또다른 생명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육아 환경과 복지, 사회 인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의 무조건적 인구 증가는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신중단수술은 생명권을 앗아가는 행위가 아닌 선택의 행위로 인식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시민인 최(여·42) 모 씨는 "여성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태아의 생명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권리"라며 "낙태죄 전면 폐지는 위험하고 섣부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의 안전권과 인권, 그리고 태아의 생명권을 위한 최소한의 낙태법 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해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 입법예고 당시 김해의 한 맘카페에서는 '임신 14주 이전 낙태죄 폐지'에 관한 투표가 게시됐다. 투표 결과 찬성은 131표(91.6%), 반대는 12표(8.4%)로 찬성 의견이 대다수였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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