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의 '연년세세年年歲歲'
총 4편의 단편 담긴 연작소설
시점 바꾸며 인물 내면 서술



오랜 시간 마음에 남는 기억들이 있다. 마음 속 깊이 저장돼 어느 순간 반짝 켜지는 장면들이. 소설가 황정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는 바로 그런 기억들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총 4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연년세세는 '여러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진다'는 뜻의 제목을 갖고 있다. 각각의 소설은 시점을 바꿔가며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관계와 기억들을 은밀하게 떠낸다. 1946년생 이순일로부터, 장녀 한영진으로부터, 둘째딸 한세진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첫 번째 단편 '파묘'는 이순일과 한세진이 파묘를 위해 보낸 하루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묘의 주인은 이순일의 외조부다. 남편 한중언도, 장녀 한영진도, 막내아들 한만수도 함께 오지 않는 외조부의 묘를 한세진이 동행한다. 효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엄마의 얼굴에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이어지는 단편 '하고 싶은 말'은 한영진의 시점이다. 유능한 판매원이자 장녀인 한영진이 겪는 감정들을 담았다.
 
'무명'은 어릴 적 '순자'로 불렸던 이순일의 이야기다. 작가는 사는 동안 순자, 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순자가 왜 이렇게 많을까?’하는 생각에서 '연년세세'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순일은 자신의 아이들이 잘 살기를,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이자 식모 생활을 하며 전쟁의 지난한 삶을 겪어온 인물이다.
 
마지막 단편 '다가오는 것들'은 한세진과 그의 육촌동생 제이미 카일리의 만남을 담았다. 뉴욕의 거리에서 한세진은 병원에 입원 중인 여자친구 하미영을 생각하고, 제이미의 아버지 노먼이 어릴 적 한인들 사이에서 한국인인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양색시'라는 말을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는 한세진과 독자로 하여금 과거와 역사가 내비치지 않는 어두운 내면을 생각하게 한다.
 
책 '연년세세'는 지난해 교보문고가 주관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로 선정되는 등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작품이다. 황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연년세세'에 대해 "사람들은 가족 서사로 지칭할 것 같은데 나는 희한할 정도로 이것이 가족 이야기로 안 느껴지더라"며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고 언급했다. 책은 등장인물을 '엄마'나 '딸', '이모'로 명명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이름으로 드러내며 전쟁의 아픔을, 현대 사회를 겪어내는 여성들을, 인물들이 서로에게 남긴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숱하고도 징그럽다'고 표현되는 46년생 순자, 이순일의 삶은 지금까지도 많은 순자들에게 남아있음을 암시한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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