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장르 단편소설 8편 수록
천사·멸종·지구·좀비·애정 등
다채로운 소재, 이야기 다뤄

 

'혜정 씨, 보고 싶을 거예요. 저는 원래 사람을 안 좋아하는데, 열한 명 중의 한 명 정도만 좋아하는데, 혜정 씨는 그 한 명 쪽이에요. 혜정 씨를 좋아해요, 좋아했어요. 함께 점심을 먹을 때가 하루 중 가장 나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해도 됩니다. 천체투영관에서 태양계 파트를 틀어주실 때, 목성과 목성의 위성들을 설명하실 때 말해도 됩니다. 저기에 친구가 산다고. 갈릴레이의 위성 중 하나에 친구가 산다고요./ 우리가 다시 만나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11분의 1 중)'
 
'밀레니엄 세대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불리는 소설가 정세랑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그의 첫 SF(Science Fiction) 소설집이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정 작가가 집필해온 작품들이 담겼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아무래도 스스로를 생각할 때 판타지 작가인 것 같지만, 종종 SF를 썼고 참새와 박새가 수가 모자랄 때 서로서로 무리 지어 지내는 것처럼 SF 작가들과 오랜 우정을 나누어왔으므로 이 책을 꼭 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책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8편의 크고 작은 단편들로 이뤄져 있다. 첫 번째 단편 '미싱 핑거와 점핑 걸의 대모험'은 손가락이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린 '미싱 핑거'와 그를 좋아하는 '점핑 걸'의 모험을 담았다. '11분의 1'은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유일한 여성 회원으로 남게 된 기억에서부터 출발해 사랑하는 사람과 목성의 위성에서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를 편지 형식으로 풀어낸다. '리셋'은 거대한 지렁이들이 지구로 내려와 이곳의 생명체들을 멸종시키며 일어나는 상황들을 마치 일기처럼 써낸 작품이다. '모조 지구 혁명기'는 일종의 테마파크로 불리는 '제2의 지구', 모조 지구의 유일한 지구인이자 홍보 책임자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천사를 위해 계획한 혁명의 이야기다.
 
이외에도 3시간 동안의 기억을 온전히 갖게 하는, 작은 하늘색 알약으로 인한 변화의 과정을 담은 소설 '리틀 베이비블루 필'과 사람들의 폭력성을 이끌어내는 목소리로 인해 수용소에 갇혀 성대제거수술을 권유받은 교사가 주인공인 '목소리를 드릴게요', 좀비를 소재로 한 '메달리스트의 좀비 시대' 등 풍부한 상상력 속 다채로운 이야기가 수록됐다.
 
정 작가는 모든 단편소설에 인류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지만, 날카롭고 예리하게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특히, '에코페미니즘'이라고도 불리는 작가의 소재와 방향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홍수처럼 밀려드는 작품 속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정세랑'이라는 감각을 인지하게 한다.
 
책 속 가장 오래된 작품과 가장 최근의 작품 사이에 약 9년의 시간차가 있음에도 이야기의 간극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것 또한 돋보인다. 작가의 넓고도 깊은 세계관과 굳건한 작품의 중심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김규림 평론가는 책 '목소리를 드릴게요' 속 작품 해설을 통해 "뭔가 거창한 것 없이도 그저 선하고 즐거운 공간, 날카로운 비판조차 결 곱게 다듬은,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이들을 위한 놀이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김해뉴스 김미동 기자 md@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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