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민기 문학평론가

2025학년도부터 전국의 고등학교에서 '고교학점선택제'가 시행된다. 고교학점선택제란 대학에서처럼 고등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에 맞는 교과목을 찾아 듣는 방식이다. 이는 지금까지 일부 교과목에 편중된 학습을 탈피하고, 개개인의 진로에 맞는 선행 교육을 통해 획일적인 입시에 대한 학생, 학부모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정작 교육계 안팎에서 바라보는 고교선택학점제에 대한 우려는 적지 않다. 제국주의와 군부독재기의 바탕 위에서 형성된 우리의 자본주의 역사는 짧은 시간 동안 오로지 발전을 위한 경쟁을 정당화해 왔다. 또 쉬운 문자 덕택에 문맹률이 낮다는 것도 우리가 가진 경쟁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맹률이 낮다는 것은 국민 누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을 지닐 수 있고, 그로인한 계층상승의 욕구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쟁'은 사회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고교학점선택제의 취지는 이러한 경쟁을 탈피하고 인간 본연의 꿈과 목표를 지향하자는 데 있다. 그러나 이 목표를 지향해 가는 데 있어 과연 우리 사회는 그만한 의식 성장을 이루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프랑스에서 고교졸업시험으로 치르는 '바칼로레아'에 출제된 문제들이다. 이 물음들은 성장기 과정에서 다양한 체험과 독서를 통해 체득한, 자기 나름의 정체성이 확보된 다음에라야 답변할 수 있는 물음들이다. 반면에 '행복'을 그저 자본의 여유로움 정도로 가르치고, '철학'은 '돈 안 되는 학문, 절대 선택하지 말아야 할 학문' 정도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과연 고교학점선택제는 성공할 수 있을까?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 증가도 문제이다. 수시 전형 제도를 기점으로 일선 교사들의 업무량은 수능 때보다 3~4배 가량 늘어났다. 학생 개개인의 교과목 능력(세부특기사항)을 점검해야 하고, 동아리 활동, 교과 외 활동 등의 창의적 체험 활동을 낱낱이 학생부에 기재해야 한다. 담임교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평균 25명 남짓이고, 거기에 교과목 별로 담당하는 학생 수는 최소 200여 명이 넘는다. 그 많은 학생들의 학생부 빈 칸을 교사들은 다 다르게 작성해 넣어야 한다. 고교학점선택제는 여기에 또 선택교과목마다의 세부 특성이 추가되는 셈이다.
 
문제는 또 있다. 학생들이 지원 학과에 따라 원하는 교과목이 있다 하더라도 지원자가 적을 경우이거나 까다로운 교과목의 경우, 교사들이 해당 교과목 개설을 꺼려 한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업무에 까다로운 교재 연구가 더해지기 때문에 되도록 학교에서는 기존 교과목 외에 새로운 교과목을 아예 개설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교육의 목표는 그리 거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돈 버는 기술'을 가르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면, 새롭게 마련될 교육 제도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 충분한 사회적 논의부터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체질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듯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 제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독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독의 첫 번째 피해자는 미래 주역인 학생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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