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키우는 나는 자율적이지 못한 아들과 뭐든 대충하는 딸에 대한 불만이 늘 있었다.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지만 불쑥 튀어나온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들켜버렸을 때는 자책감으로 힘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하지 못해 괴롭기도 했다.
 
'어린이책 시민연대' 전국 임원연수에서 '어린이의 말초신경은 우주와 맞닿아 있다'는 방정환 선생님의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어린이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우주로 확장시킨 이 말에는 어린이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애정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내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혜리 작가의 <달려>라는 그림책을 보면서 고민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 책은 따분해 하는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표범, 치타, 타조 등은 너무 심심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천장에 매달리기, 방바닥에서 뒹굴기 등. 뭘 할까 자못 진지하게 고민도 한다. 그때 느닷없이 나타나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달려!'라고 외치는 티라노사우루스. 동물들은 누구도 '왜?'라고 묻지 않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속에 잠재된 놀이 본능이 '달려'라는 한 마디로 표출돼 나온 것이다.
 
동물들이 달려가는 모습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 선명하던 형체가 속도에 묻혀 사라지고 선만이 남는다. 헉헉대는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거친 질감의 선이 두 페이지 쯤 이어진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루루 뛰어가다 마지막에 던지는 한 마디는 '잘 놀았다!'. 그들의 만족스러운 얼굴에서는 불그스레한 열기마저 느껴진다. 그림은 흑백인데도 말이다.
 
그림책 속 동물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린 일상의 한 장면을 보았다. 놀이와 교육이 이분법으로 나눠진 사회에서 심심할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아이의 마음속에는 억눌린 놀이 욕구가 웅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해방을 꿈꾸며 호시탐탐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한테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강탈하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안전을 이유로 설치된 CCTV를 일부 학교에서는 복도에서 뛰는 아이들을 감시하고 훈계하기 위한 용도로 쓴다. 수업을 위해 쉬는 시간을 5분으로 줄이는 학교, 아이들 땀 냄새가 역겨워 운동장에서 축구를 금지하는 학교도 있다. 심지어 학교에 있던 놀이터를 없애고 나무를 심는다는 말도 들려온다. 이런 사회 속에는 교육의 객체로 전락한 아이들과 그런 현실을 질타하면서도 따라가고 있는 내가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일찍이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죽었다. 아이들은 모조리 죽어 비참한 짐승이 되어버렸다. 우리 속에 갇혀 주는대로 받아먹는 끔찍한 짐승들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내가 괴로웠던 것은 사육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서 온 자책감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존재를 우주의 자리에 놓든 아니든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호모 루덴스'의 저자 하위징아는 '놀이가 문명을 낳는 토양'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사회를 허하라. 함께 놀아야 함께 잘 큰다. 그래야 나도, 우리도 덜 불안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놀이의 생산성이 제대로 평가되어 '잘 놀았다'며 홍조 띤 얼굴로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로 건너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어 본다.


>>박태남 씨는
어린이책 시민연대 김해지회장, 김해교육연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책을 통해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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