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조선시대의 석곽묘·목곽묘의 잔존형태가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 진영읍 여래리 발굴현장.  사진/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진영 택지조성 본산·여래리 일대
총 1만8973㎡ 면적서 발굴 조사
유구 250여기·유물 1500여점 달해
도굴피해 없는 대규모 고분군 주목

김해 진영 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형식의 분묘유구(무덤과 유물)가 집중적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대규모 고분군이 발굴된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경남지역본부는 현재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여래리 일대에 진영 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단장 박종섭)은 지난 19일 오후 2시 진영읍 여래리 유적 발굴 현장에서 조사 결과에 대한 현장발표회를 가졌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8월 1일부터 사업지구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작업을 진행중인데, 오는 7월 19일까지 작업을 이어간다. 개발지구 내 유적 조사 면적은 총 1만8천973㎡(본산리 6천350㎡, 여래리 1만2천623㎡)이다.
 
조사연구단은 현재까지 본산리 구역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2동과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분묘유구 42기, 여래리 구역에서 청동기 시대 주거지 4동과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분묘유구 212기 등 총 250여 기의 유구를 확인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물도 고배(굽다리 접시. 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 찰갑(비늘 갑옷. 작은 쇳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갑옷), 투구(적의 화살이나 칼날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쓰던 쇠로 만든 모자) 등  1천500여 점이 출토됐다. 조사연구단은 "우리나라에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대규모의 고분군이 발굴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며 "출토된 유물들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여서 가야 당시의 문화와 생활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원형 그대로 발견된 유물이 많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래리 현장에서는 삼국 시대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관을 넣어 두는 널방을 나무로 만든 무덤)와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 로 덧널을 만든 무덤) 등이 부장품이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발굴됐다. 여래리에서 발굴된 목곽묘는 총 37기인데, 무덤 구덩이의 길이가 500㎝ 이상인 대형 목곽묘 7기가 확인됐다. 목곽묘에서는 토기류와 철기류가 출토됐으며, 특히 목곽묘 20호에서는 곡옥(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 끈에 꿰어서 장식으로 쓰던 구슬)과 경식(목에 거는 장식)도 발견됐다.
 
여래리 현장에서는 또 장축(긴 지름)의 길이가 150㎝ 이하인 소형 석곽묘에서부터 300㎝ 이상인 중형급 석곽묘 등 총 76기도 확인됐다. 출토된 토기류와 철기류의 상태를 감안했을 때, 석곽묘의 조성 시기는 목곽묘보다 조금 늦은 5세기 초에서 중후반 쯤으로 추정됐다.
 
특히 수혈식석곽묘 36호에서는 목관이 출토되었는데, 목관으로 쓴 나무가 썩지 않은 상태로 발굴됐다. 조사연구단은 "1천600년 전의 목관이 햇빛을 보았다. 석곽묘 안에서 목관이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확인된 적이 없다"며 "그동안 학계에서 논의돼 온 석곽묘 내 목관의 존재와 그 형태에 대한 논란이 단숨에 해결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한편, 진영 2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 발굴 현장에서는 탄요와 조선시대 토광묘도 확인이 돼, 이 일대가 오랜 시간 동안 주요 생활무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계에서는 발굴조사가 마무리되면 4~5세기 부산·김해지역의 지역사적 의미를 한층 깊이 있게 분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