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공원의 연산홍 붉은 꽃잎들이 초록 세상 한 가운데서 마치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하다. 멀리 응봉산이 보인다. 사진/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봄이 한창 무르익어 간다. 산과 들로 온통 연푸른 초록이 자지러진다.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고, 예쁜 꽃을 찾아 나비들 날아들고, 새들은 제 짝 찾느라 '지지배배' 여념이 없다. 바야흐로 봄 마실이 기꺼울 시기다.

이번에는 봄 마실하듯, 잘 꾸며진 공원도 둘러보고 한적한 시골 마을 풍경에 젖어도 보는 산행을 택했다. 연산홍으로 붉게 수놓은 금병공원으로 해서 여래고개, 응봉산을 오른 후 봄 들꽃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내룡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봄볕 좋은 김해의 산과 들을 끄덕끄덕 버스로 유람하듯 돌아들다 보니 어느새 진영시외버스터미널이다. 진영읍내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근처의 금병공원으로 방향을 잡는다. 10여 분 걸었을까, 금병산 자락이 보이고 곧 신록이 싱그러운 금병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 금병공원 김원일 문학비.
금병공원에는 연산홍과 철쭉으로 '알록달록' 불이 붙는다. 봄날의 무료함을 달래듯 오리가 연못 주위를 맴돌고, 왜가리 한 마리, 물고기를 물고 응봉산 자락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공원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이 미동의 움직임도 없다.
 
봄물 든 단감농장에는 연초록 어린잎들이 파도치듯 찰랑찰랑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연못가로 유채꽃도 한창인데, 그 사이로 배추흰나비가 살랑살랑 날아오른다. 공원으로 흘러드는 개울물도 시원스럽다. 돌돌거리며 흐르는 물길이, 꽃창포 잎을 애무하듯 부드럽게 스치며 흐른다. 금병산 쪽에서는 계속 꿩이 울어대고 있다.
 
단감 주요 생산지이자 시배지인 진영답게, 공원에는 단감 조형물도 설치돼 있고, 진영 출신의 소설가 김원일 작가의 문학비도 들어서 있다. 김원일문학비 앞에 선다. 큰 오석에 작가의 서가를 조각해 놓았다. 김원일 작가의 저서 <어둠의 혼>, <노을>, <마당 깊은 집>이 꽂혀 있고, 서가 앞에는 <노을>이 한 권 놓여 있다. 서가를 배경으로 봄날이 자지러진다. 꽃잔디로 불리는 자홍색 지면패랭이꽃이 만발해 있는데, 마치 작가의 <노을>처럼 봄날로 불타고 있는 듯하다.
 
시냇물 따라 응봉산으로 길을 잡는다. 흐르는 물소리가 똘랑똘랑 꼬마들 노랫소리 같이 천진난만하다. 개울가에는 돌미나리와 애기똥풀꽃이 노랗게 피어 있다. 여래고개 쪽으로 오르다 보니 감미로운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온다. 두리번거리다 연보라색 라일락꽃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걸 본다. 마치 튀밥 튀겨놓은 듯 고슬고슬 피어올라서, 여인의 짙은 지분냄새처럼 사람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 응봉산 안부에서 내려다본 태숭산.
진우원을 지나다 보니 아이들 목소리가 쨍쨍하다. 글을 읽고 있는지 낭랑한 목소리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그 목소리 흥겹게 들으며 여래고개를 오른다. 길섶으로는 쇠뜨기 풀도 한창이고 민들레 노란 꽃 몽우리도 예쁘다. 냉이꽃, 개불알풀도 난리가 났다. 콧노래 부르며 여래고개를 넘는다. 고개를 넘자 바로 왼쪽으로 산길 들머리가 나온다.
 
팻말에 '노티재 5.4㎞'라고 적혀 있다. 잘 생긴 소나무 숲으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은 온통 연둣빛 바다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숲의 바다. 초록의 4월이 바야흐로 지나고 있는 것이다. 참나무 잎에도 푸른 바다는 너울거린다. 숲 사이로 비친 햇살에 투명한 속살이 환하다.
 
한적한 숲길을 오르다 보니 무덤이 나오고, 무덤 오른편으로 길을 계속 오른다. 곳곳에 수명 다한 참나무 등걸이 쓰러져 흙으로 돌아가고 있고, 이들 속에서 산초나무 어린잎은 푸른 생명 틔우며 봄의 절정을 맞고 있다. 자연의 순환을 보니 새삼스레 경외감이 든다. 나무 등걸을 넘으며 산행은 계속된다.
 
지난 겨울의 낙엽들이 오솔길의 호젓함을 더욱 잘 반영하여 준다. 마치 대화하듯 소곤소곤, 바스락바스락 대며 오속길을 걸어 오르는 것이다. 길은 계속 기슭을 휘돌아든다. 산허리로만 돌며 '봄 산 구경 좀 해봐라'는 식이다. 이러구러 몇 분을 걷다보니 갑자기 경사가 치받는다. 본격적인 오름세다. 깊은 곡을 사이에 두고 험하게 산을 오른다. 그래도 봄바람은 싱그럽고 새소리는 정겹다.
 
점점 키 작은 관목의 가지가 사람 팔을 잡는다. 자연스레 허리 숙여 산을 오른다. 산이 '매사에 겸허하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곳곳에 죽은 나무들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삶과 죽음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한참을 경사와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201m봉 능선 길과 만난다. 길가로 취나물도 보이고, 그 옆에는 매운 향의 방아가 잎을 틔웠다. 방아는 밭작물로 알고 있었는데, 산에서 만나니 반가우면서도 왠지 어색하다. 능선 따라 탱자 울타리가 서 있는데, 탱자나무에 여린 잎이 몸을 풀고 있다. 가시 속에 여린 잎이라니! 자연의 역설이 또 한 번 나그네를 미소 짓게 한다.
 
굴참나무도 따라 걷고 싸리나무도 발길 붙들며 같이 가자고 한다. 슬슬 능선을 내린다. 내리는 길에 부엽토가 깔려 있어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능선을 내려오자 내룡마을로 가는 임도와 만난다. 멀리 내룡마을과 내룡저수지가 보이고, 태숭산도 잡힐 듯 가까이 있다.
 
응봉산 안부에서 이정표를 만난다. 팻말에는 '노티재 4.5㎞'라고 적혀 있다. 산으로 오르자 많은 나무들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큰 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그 몸살 속에서도 나무들은 새순을 틔우고, 푸른 이파리를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10여 분을 계속 급경사로 오른다. 숨이 턱에 찰 때쯤 늙은 오리나무가 보인다. 오리나무에 잠시 기대어 쉬며 조망을 한다. 급하게 오른 만큼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경들도 급하게 발아래로 내려앉는다. 왔던 길 쪽으로 201m봉 정상이 보인다.
 
계속 오른다. 다시 잠시 땀을 닦으며 뒤돌아보니 멀리 진영읍내가 숲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마지막 급경사.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늘 그렇듯이 정상에 닿기 전에는 '깔딱고개'가 있는 법, 인생의 고개와 다름 아니다.
 
응봉산(應烽山·284m) 정상에 선다. 정상이라고는 하지만 잠시 쉬어가는 공터 크기 정도이다. 나무에 정상팻말을 달아놓았는데, '김해 응봉산 285m'라고 적혀 있다. 정상팻말 맞은편에는 나뭇가지로 만든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나뭇가지 벤치에 앉아 모자를 벗고 땀을 닦는다.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큰 산이 아니다 보니 나비가 이곳까지 따라와 정상 주위를 날아다닌다.
 
물 한 모금 마신다. 갈증이 일시에 사라진다. 다시 길을 재촉한다. 태숭산 방향으로 계속 능선길을 이어간다. 온갖 나비들도 따라붙는다. 잠시 오른쪽으로 조망이 열리는 곳에 서니, 낙남정맥의 능선이 웅장하다. 정병산~비음산 능선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흐르는 능선은 참으로 편하다. 발 아래로 철쭉꽃과 제비꽃, 양지꽃이 앞다투어 피어있다. 바람은 이 골에서 저 골로 스쳐지나며 시원하다. 설렁설렁 봉우리 하나를 지난다. 갑자기 측백나무들이 사람을 반기고 그 뒤로 조망이 열리며 진례의 산들이 줄지어 섰다.
 
봄볕과 봄바람을 등에 업고 함께 걷는 능선 길은, 새소리와 나비들도 따라오고 꽃다지들이 길을 안내하는 곳. 이 여유로움 속의 산행, 자연과 합일하는 순간에 산을 희롱하는 유산(遊山)은 더없는 행운이자 즐거움이다.
 
혼자 걷는 길. 발자국 소리만 따라붙는다. 산모롱이 크게 휘돌아들자 시원한 전망이 탁 트인다. 우선 태숭산이 앞을 가로막고 섰는데, 삿갓 모양의 온 몸에 점묘기법으로 녹색의 칠 단장을 했다. 그 뒤로 죽곡농공단지가 동그마니 앉아있다. 조금 내리막을 내린다. 곧 278m봉 안부에 닿는다.
 
278m봉을 오르기 전 내룡마을로 퇴로를 정한다. 여기서부터는 사람 다닌 흔적이 없어 희미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측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향이 청량감을 더해주고 있다. 앞쪽 들판 너머에 비로소 봉하마을과 봉화산이 뚜렷이 드러난다.
 
내리는 길은 온통 부엽토로 푹신푹신 부드럽다. 낙엽에 묻힌 길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한다. 조심조심 산세를 가늠하며 길을 잡는다. 길은 계속 278m봉 산허리를 돌며, 좀처럼 하산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한다. 너덜도 지나고 덤불 밑으로 길도 헤치며 지난다.
 
그러다 하늘을 본다. 맑고 푸르기만 하다. 나뭇잎들은 연초록 물감을 뒤집어썼다. 옥녀꽃대의 하얀 꽃무리도 반갑다. 너덜을 지나 겨우 내룡마을 단감농장 쪽으로 하산을 한다. 내룡저수지의 푸른 물길에 눈이 시리다.
 
내룡마을은 한창 밭갈이에 바쁘다. 도랑으로는 미나리냉이, 자운영, 엉겅퀴꽃 등이 정신없이 꽃을 피우고, 새소리 또한 갖은 음색으로 청아하다. 뒤돌아보니 응봉산 줄기가 동그마니 앉았다. 편한 몸태다. 그렇게 나그네도 봄볕에 편해지고 있는 것이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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