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토박이 극단 '번작이'가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두 여자'를 들고 1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이 작품은 가치관의 차이로 늘 투닥거리던 모녀가 엄마의 암 판정 이후 서로의 진심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세번째인 이번 공연에는 정우진(32) 씨가 엄마 역을, 배아원(17) 씨가 딸 역을 맡았다.

'두 여자'는 이들에게 첫 무대다. 원래 동화구연가로 활동하던 정 씨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이라 많이 긴장했을 법도 한데, 그는 '무대에 오르는 것은 긴장되기보다 설레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월 24일에 첫 공연을 했어요. 그때, 막상 무대에 서니까 떨리지도 않고 연기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반면 배 씨는 중학생 때부터 극단 번작이의 모든 공연을 관람해온 '골수팬'이었다. '두 여자'는 그런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첫공연을 마친 후 그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고 고백했다. "무대에서는 진짜 담담했거든요. 그런데 공연을 끝내고 나니 갑자기 눈물이 막 나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한참동안 울었어요."
 
이 '초짜 배우'들은 첫무대에서부터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놨다. 성공적인 데뷔였던 셈이다.
 
이렇게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은 연습기간 동안 그들이 '진짜' 엄마와 딸처럼 살았기 때문이었다.

▲ 배아원·정우진 씨

초기에는 정우진 씨의 집에서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무대 밖에서도 서로를 '엄마' 혹은 '딸'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배 씨는 '엄마(정우진 씨)의 진짜 아이들이 엄마를 뺏겼다고 생각할까봐 미안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고 뒤늦게 털어놨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직은 딸의 입장에 감정이입이 돼 힘들었다는 정 씨는, 진짜 엄마들의 행동과 말투를 배우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 중 한 가지가 '친정엄마'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엄마한테 일부러 투정도 부려보고 시비도 걸어봤죠. 그때마다 엄마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했어요. '이용'이라고 하면 좀 그렇지만, 어쨌든 엄마 덕분에 제가 맡은 역할을 더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약 두달 간 작품 속에 푹 빠져 살았던 그들이기에, 그 속에서 빨리 빠져나오기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이 작품 속 대사일 정도다. 정 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으면, 배 씨는 '엄마는 구질구질하게'라고 말하며 살짝 눈을 흘긴다. 그러다 또 금세 마주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앞뒤 상황을 모르는 이가 두 사람을 본다면 십중팔구 진짜 모녀로 착각할 정도다.
 
그래도 연극 '두 여자'는 끝났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들을 무대 위에서 볼 날이 다시 올까? 대답은 정우진 씨의 말로 대신한다.
 
"연기를 하게 된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느껴요. 그래서 저는, 다른 역할로 무대에 꼭 다시 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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