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산 들머리에서 본 까치산과 백두산.
대동벌 일대에는 동그마한 작은 구릉 산이 몇 개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마산(馬山), 지라안산(池羅安山), 각성산(閣城山) 등이 그 것이다. 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각각의 산마다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시간이 허락되면 슬며시 다녀볼 생각을 내심 하고 있던 산들이었다. 몸집도 작고 높이도 100여m 내외이지만 낙동강과 서낙동강을 지척에 두고 대동벌을 품고 있는 모습이, 동네 산의 포용력을 이미 넘어서고 있음이다. 오랫동안 낙동강의 도도한 물결로 제 속살을 강물에 적셔온 산들이라, 능선이 부드럽고도 온화하다.

예안리 마산부락의 동네 산인 마산(馬山·71m)도 대동벌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동네 사람들 말로는 산의 형상이 말처럼 생겼다 하여 '마산'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독을 엎어놓은 모습의 산'이라 하여 '독메산'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산이 낮고 부드러워 동네 사람들이 어릴적 뛰어놀던 놀이터 같은 곳이라 했다.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낙동강으로 내달리는 형상의 마산은, 동쪽에 말머리 모양의 언덕이 있고 서쪽으로는 달리는 말 잔등을 닮은 두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다. 산의 목덜미 부분에 마산부락이 자리하고 있어, 마치 달리는 말을 타고 있는 지세의 마을이기도 하다.
 
가야시대의 무덤 터인 '예안리 고분군' 앞이 들머리로, 신안마을 표지석이 크게 서 있어 찾기도 쉽다. 들머리 앞 석축을 시작으로 돌무더기, 물탱크 폐허지, 김해김씨 묘, 다시 들머리로 내려와 마산부락 공영버스 정류소, 마산부락, 예안천변, 예안리 고분군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산이 높지 않아 마산을 둘러보고 난 후, 산을 두르고 있는 길을 따라 에돌아 걸어볼 참이다.
 

▲ 폐허로 남겨진 물탱크.
버스는 대동 쪽으로 잘도 달린다. 선암다리가 보이고 서낙동강의 물길이 꿈틀대며 흐르고 있다. 강바람이 시원스레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강 따라 멀리 부산의 금정산, 백양산 능선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주중리를 지나고 성안을 지나며 서서히 대동벌이 펼쳐지고, 돛대산과 까치산이 가까이 버티고 섰다. 곧이어 장시마을에 내린다. 아스팔트 옆으로 송화 가루가 노랗다. 인근 산에서 날아온 송화 가루가 찻길이라고 예외는 없다.
 
길가 밭에는 양파가 굵을 대로 굵어 그 알들이 주먹만 하다. 몇몇 양파 잎들이 쓰러졌다. 양파 알이 다 영글면 시퍼렇게 서 있던 잎들이 땅으로 눕는다. 소명을 다한 이들의 편안한 잠! 한갓 1년생 식물조차도 그들 삶의 질서에 충실함을 눈여겨본다.
 
어느 집 담에는 앵두나무에 앵두가 빨갛게 익고 있다. 조랑조랑 열린 것이 여간 탐스러운 게 아니다. 밭을 매고 있는 어르신에게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자,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집에 가져가란다. 참 감사하게도 앵두나무 가지 하나 들고 길을 향한다.
 
곧이어 예안리 고분군이 보이고, 그 뒤로 야트막한 산, 마산이 보인다. 고분군 빈터에는 쇠뜨기풀과 토끼풀들만 주인 행세를 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마산에는 어느새 순백의 아카시아 꽃으로 하얗게 뒤덮였다. 짙어가는 녹음과 함께 눈부시게 잘 어울린다.
 
▲ 탐스럽게 열린 장시마을의 앵두.
마산 들머리에 선다. 입구부터 성곽처럼 쌓아올린 석축이 제법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작은 산에 큰 규모의 석축이라니, 조금 의아스럽다. 어쨌거나 석축 돌 틈사이로 민들레꽃이 세상의 굴곡 다 이겨내고 노란 꽃을 피워냈다.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아카시 꽃향기가 일시에 터져 오른다. 예사 향기로운 것이 아니다. 그 속으로 산비둘기 한 쌍이 여유롭게 '구구'대며 사랑을 속삭인다. 조금 더 오르다 보니 발밑으로 온통 노란색이다. 마치 노란색 물결이 출렁이는 것 같다. 길섶으로 수만 수천의 괴불주머니 꽃들이 노란 등불을 켜고 출렁이고 있는 것이다. 가히 장관이다. 풀내음마저 상큼하고 싱그러운 호젓한 산길에서 이 무슨 호사란 말인가! 산을 오르는 이가 드문지 아예 산길조차 막고 마구잡이로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괴불주머니 꽃 군락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길을 오른다. 오른쪽으로 돌무더기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자연석으로 성을 쌓듯이 차곡차곡 쟁여놓은 시설물이다. 성곽 같기도 하고 돌무더기 같기도 한 이 구조물은 왜 쌓아놓은 것일까? 궁금증은 더욱 깊어만 간다. 지난 세월의 기억을 덮듯이 돌 더미 위로는 돌나물 군락이 오밀조밀 밀생하고 있고.
 
모롱이를 하나 돌 때쯤 갑자기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풀 사이로 언뜻언뜻 비친다. 마치 군사목적의 시설인 듯 견고하게 생긴 벽채가 폐허로 우두커니 남아있는 것이다. 잡풀들과 딸기덩굴만 무성하여 그 구조물의 존재를 애써 가려주고 있는 듯하다.
 
▲ 마산 들머리 축대.
일제강점기 시대의 참호였는지, 군인들의 병영이었는지, 벽채 위에는 초소 건물도 보인다. 자세히 보니 아까 성채처럼 쌓아놓았던 돌무더기 위에 이 구조물을 올린 것 같다. 그 돌무더기는 이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기단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동네 사람들에게 확인한 바 이 구조물은, 옛 김해 땅이던 대저에 물을 대기 위해, 시례 쪽 물을 저장하는 물탱크 시설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해 국회의원이었던 김택수 씨가 대저지역 관계수로 사업의 일환으로 건설을 추진했다고 한다. 이 공사를 마을 사람들이 맡아서 하며 공사 중의 돌들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물탱크를 올렸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준공을 하지 못하고 방치해 둔 것이라 한다.
 
한참을 구조물에 정신을 팔다가 다시 길을 잡는다. 산에는 아카시 흰 꽃들과 괴불주머니 노란 꽃들로 지천이다. 오른쪽으로 잠시 시야가 트이는데 대동벌이 펼쳐진다. 비닐하우스에 햇살이 비추어 눈이 부시다. 마삭덩굴이 길옆으로 윤기 도는 잎들을 펼쳐 보이고, 어느 샌가 봉우리 정상까지 다다른 곳에는 유택 하나 반듯하게 누워 있다.
 
▲ 사진/ 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김해김씨 유택이 있는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해 능선을 찾는다. 아무리 찾아도 마산부락으로 내려가는 길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산이라도 단독산행이라 어쩔 수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와, 마산을 끼고 그 둘레의 길을 걷기로 한다.
 
산을 내리다 오른쪽 조망 좋은 곳에서 고개를 들어본다. 마산 뒤로 백두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 옆으로는 까치산 자락도 보인다. 모두들 푸른 물이 들어 참 싱그러워 보인다. 산 입구 밭에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감자도 있고, 고추, 상추 등속이 푸짐하다.
 
산을 내려와 왼쪽 마산부락으로 길을 잡는다. 초입부터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작년에 방아를 재배하던 하우스에는 다른 작물로 대체하려는지 빈 땅이다. 하우스 안을 살펴보며 길을 걷는다. 하우스마다 토마토, 방울토마토, 파프리카 등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신안마을과 마산부락 갈림길에서 마산부락으로 길을 잡는다. 마산을 쳐다본다.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처럼 함박하다. 길 양쪽으로는 수량이 풍부한 수로가 흐르고 있다. 탐스럽고 온화한 지세가 마을 사람들을 편하고 넉넉하게 키웠을 것 같다.
 
어느 하우스 앞에는 여러 색깔의 장미꽃들이 버려져 있다. 아마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인가 보다. 버려진 꽃들인데도 어찌 그리도 선연한지, 쓰레기 더미에서도 장미의 기품은 꺾이지가 않는 것 같다. 더욱 더 화려한 색감이 불타오르는 듯하다.
 
▲ 산길을 뒤덮은 괴불주머니꽃 군락.
원래 대동면은 1970년 초부터 하우스 화훼를 시작했다. 200ha의 하우스에서 장미, 거베라, 국화, 카네이션, 백합 등을 재배하면서 전국 최대 규모의 꽃 생산지로 발전한 곳이기도 하다. 마산부락 쪽에는 장미, 카네이션 하우스가 눈에 보인다.
 
마산부락 회관을 지나니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잔뜩 모여 계신다. 낯선 객을 보자 모두들 관심을 가진다. 인사 한 번 꾸벅하고 다시 길을 걷는다. 말 목덜미에 해당되는 마산부락에 도착했다. 많은 집들이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여 깔끔하다. 길도 새로 정비해서 봄맞이 단장을 끝내놓았다.
 
말 머리 부분의 작은 구릉에는 왜가리 한 쌍이 둥지를 틀었는지 주위를 선회하며 아름다운 나래짓이 한창이다. 마을 뒤쪽에는 말 어깨 부분의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아 있다. 사부작사부작 마을길을 벗어나 예안천변을 걷는다. 한 때 대저의 농업용수로도 고려됐던 예안천이다. 바람이 산들 불며 풀잎을 살짝 흔들고 지나가고, 물살은 제법 빠르게 서낙동강 쪽으로 흘러든다. 엉겅퀴꽃과 산딸기꽃이 그 물길을 보며 해맑은 표정을 짓는다.
 
마산 둘레 대나무 수풀 사이로는 참새들 날개짓 소리가 부산스럽다. 간간히 차들만 지날 뿐 참새소리 말고는 조용한 오후시간이다. 까치산의 잘 생긴 능선을 쳐다보는 사이, 이윽고 대동로 큰길과 합류한다.
 
다시 들머리인 예안리 고분군에 도착한다. 마산 둘레의 길을 한 바퀴 다 돌았다. 봄 햇빛에 봄바람 맞으며, 대동벌 산과 그 언저리를 가볍게 돌아본 하루였다. 장시마을 버스정류소에서 마산을 바라본다. 아카시 꽃들로 산 전체가 하얗다. 이울던 햇빛 속에서 마산이 온통 환해진다. 보는 사람마저 푸근하고 환해지는 시간이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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