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년간 동광탕을 운영한 조영기 씨가 탈의실에 앉아 있다.
1975년부터 영업 37년 흘러
당시 김해 최고의 목욕시설
세월흘러 쇠퇴했지만 시민과 함께

"40년이나 할 줄 난들 알았겠어. 자식들과 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흐른 거지."
 
조영기(81·동상동) 씨는 김해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인 동광탕을 4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해방 전부터 운영되던 기와지붕의 목욕탕을 1973년 인수해 개축, 1975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꼭 3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때만 하더라도 김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이었고, 목욕시설도 최고였지. 인근의 동광국민학교 학생들이 지나가다 '와 좋다'라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장사도 참 잘 됐어. 하루 700~800명이 다녀갈 정도였으니까. 그럴만도 한게 그땐 씻을 데가 마땅치 않았어. 셋방 사는데 씻을 공간이 있어야지. 목욕탕이 위치한 곳이 가장 번화한 김해 1번지인데다 재래시장 상인, 셋방주민들이 많이 찾아 전성기를 누렸지."
 
조 씨가 들려주는 옛 동광탕 얘기는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세월이 흐른 결과는 동광탕의 쇠퇴였고, 지금은 하루 5~6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목욕탕 말고도 더 오래된 금성탕이란 곳이 있었어. 그 다음 오래된 곳이 김해탕이었고, 다음이 우리였지. 두 곳이 오래전 문을 닫았으니까. 우리가 가장 오래됐네 그려."
 
오래된 목욕탕 안 이곳저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외벽타일과 수도꼭지 등은 교체했지만 닳고 닳은 출입문과 안내실, 기본 구조 등은 개축 당시와 큰 차이가 없다고.
 
"요즘 목욕탕은 남탕과 여탕이 1·2층으로 나뉘어 있지만 옛날엔 한 개 층에 남탕과 여탕이 모두 있었어. 여탕이 조금 넓은 것이 특징이지."
 
평일 오후 손님이 없는 탓에 여탕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목욕탕 운영이 힘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부터였다. 주택의 발전과 생활의 변화, 목욕업계 간의 경쟁 등으로 운영이 점차 힘들어졌다. 동광탕 때밀이가 자취를 감춘 것도 이 무렵부터라고 한다.
 
"이발소가 한 20년 됐지. 거기도 오래 했네 그려. 오는 손님들은 거의 나이 많은 사람들이야. 젊은 사람들은 별로 안 와. 계속 3천 원 받다가 올해 설 쇠고 500원 올렸어. 다른 목욕탕보다 1천~2천 원이 싸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 메리트가 없나봐."
 
조 씨는 매일 새벽 4시께 눈을 뜬다. 물을 데우고 목욕탕 청소를 한 뒤, 있을지 없을지 모를 새벽 손님을 기다린다.
 
"담배, 술을 안 하니까 하루 용돈 1천 원이면 충분해. 1천 원으로 자판기 커피를 하루 두 잔 먹지. 목욕탕을 이어받으려는 자식도 없고 내 건강을 위한 소일로 생각하고 그렇게 일하고 있네 그려. 뭐 또 궁금한가?"
 
'유복동광.'
 
목욕탕 안내실 뒤편에 걸려있는 액자에 쓰여 있는 글귀다. 동광탕에 복이 있으라는 의미로, 개축 당시 한 서예가가 써준 글이란다. 글귀처럼 됐냐고 묻는 질문에 조 씨는 "이 일해서 자식들 다 키웠으니까 그런 셈이지. 대신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어. 안내 창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많이 아파. 다 낡아가는 목욕탕이지만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소일이 있고, 북적대지 않는 곳에서 좋은 물로 목욕할 수도 있으니 좋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앓아 눕기 전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