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젤 미술관
바젤역이다. 순간 독일의 어느 공업도시에 잘못 내린 착각. 아기자기한 스위스의 여느 도시와는 다르다. 라인강을 향해 북쪽으로 길게 뻗은 길을 따라, 우선 멀지 않은 미술관까지 걸어서 가기로 한다. 중앙 분리대에 심은 나무는 거짓말을 좀 보태면 숲이다. 10여분. 빌딩 사이. 오른쪽으로 미국의 설치미술 작가인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조형물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보인다. 그렇다. 이곳은 바젤이다. 제약산업이 발달해 신종플루의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로슈와 백혈병 치료제로 유명한 글리벡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노바티스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피악(파리 국제미술견본시장)과 쾰른 아트 페어와 함께 유럽의 3대 화랑미술제인 바젤 아트페어가 매년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산업과 예술 모두에서 스위스 최고인 도시다. 이제 곧 미술관이 보일 것이다. 해머링맨이 보이는 곳에서 놓치지 않고 길을 왼쪽으로 꺾어야 한다.
 
▲ 바젤 미술관 중정에 전시된 로댕 작 '칼레의 시민들'
그럴듯한 혹은 화려한 외관의 미술관을 생각하고 바젤미술관을 찾으면 고생한다. 산업도시 바젤답게 기능적이며 현대적인 모습이다.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중정. 기능적이면서도 뜻밖에 아늑하다. 중정에 로댕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이 서 있다. 그렇다. 서 있다. 칼레의 시민들은 어디서나 이렇게 서 있다. '칼레의 시민들'은 현재 모두 12점이 세계 곳곳에 설치 되어 있다. 점토로 형상을 만들고 거푸집을 뜨고 그 거푸집에 청동 주물을 부어 만드는 브론즈 작품은 각각의 작품 모두가 다 오리지날이다. 다만 원작의 남발을 막기 위해 숫자를 제한한다. 프랑스의 브론즈 작품 오리지날 기준은 통상 12점이다. 몇 년 전 서울의 한 미술관에 그 마지막 12번째 작품이 설치돼 있다.
 
바젤미술관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미술관이다. 설립된 때는 1662년. 파리 루브르가 1793년인 것을 감안하면 바젤이란 도시의 문화적 저력을 알 수 있다. 당시 시민 계급이었던 아머바흐 가문이 3대에 걸쳐 모은 작품을 네델란드에 기증하려 했다. 이에 바젤대학 교수들이 시에서 구입하게끔 압력을 넣었고, 당시로도 거금을 주고 일괄 구매해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관을 만들게 되었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면 첫 대면은 인상파 계열의 그림들이다. 대개의 미술관들은 시대 순으로 동선을 배치한다. 따라서 문을 열면 조금 따분한 종교화가 먼저 나온다. 바젤미술관은 눈에 익은 화가들의 작품을 먼저 배치했다. 눈이 편하고 따라서 곧 마음도 편해진다. 바젤인의 순발력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마네, 모네. 피사로, 세잔, 드가, 고갱, 등등. 그리고 고흐를 지나고 나면 2층. 드디어 바젤미술관의 자랑, 한스 홀바인 가족의 방이다.
 
▲ 홀바인이 스무네살 때 그린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흰 아마포 천이 깔린 바닥 위에 한 사내의 주검이 길게 누워 있다. 바싹 마른 몸과 입을 반쯤 벌린 채 힘이 풀려버린 눈동자.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변색되어 가는 피부. 대학시절 해부학 교실에서 보았던 주검. 빈 몸으로 실습대 위에 놓여 카다바로 불리던 시신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참혹하다. 이제 그럴 수는 없겠지만 배를 부풀리면 닿을 듯 바싹 밑으로 내려온 낮고 좁은 관은 보는 사람마저 숨 막히게 만든다. 세로 30cm 가로 2m, 극단적으로 옆으로 긴 프레임이 답답함에 한몫 거든다. 한스 홀바인(1497~1543)이 스물네 살 때 그린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일부러 바젤을 방문했고 보자마자 말을 잃고 발작을 일으켰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 미슈킨 공작의 입을 빌려 '신앙심을 버리게 할 정도의 작품'이라 했다. 물론 예수의 생생하고 참혹한 주검을 보며 무신론적 의심을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지극히 낮은 곳으로 내려와 철저한 자기 희생을 보여준 인간적이고도 거룩한 예수의 모습에서 오히려 종교적 고양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아마도 화가로서 한스 홀바인이 후자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단화로 그려진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 인간이란 같은 것을 보면서도 전혀 다르게 해석할 줄 아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다(때론 이 특별한 능력이 치명적 싸움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 홀바인의 1532년 작 '원형 틀 속의 에라스무스'
한스 홀바인 당시, 스위스는 종교개혁의 진원지였다. 그중에서도 바젤은 인문주의자와 종교개혁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북유럽 화가들에게 엉뚱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신교 교도들은 교회 안에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상을 두는 것을 반대하고 그것을 우상 숭배로 간주했다. 그래서 구교 지역과는 달리 신교 지역의 화가들은 그들의 가장 큰 수입원인 종교화, 그중 특히 제단화를 그리는 일을 잃게 되었다. 이제 북유럽의 신교 지역 화가들에게 돈벌이라곤 겨우 초상화 그리는 일만 남게 되었다. 미
▲ 한스 홀바인의 1523년 작 '글을 쓰는 에라스무스'
술의 위기였다. '미술의 위기' 곰브리치가 그의 저서 <서양 미술사>에서 16세기 후반 유럽의 미술계를 경계짓는 말이다. 바젤미술관에는 한스 홀바인의 초상화 에스키스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일종의 초벌 그림인 에스키스.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술의 위기' 덕분에 탄생한 서양미술 사상 최고의 초상화 화가의 지난한 수고의 여정을 보여주는 에스키스들이다.
 
바젤미술관에서 놓칠 수 없는 2점의 초상화가 있다. 1523년 작 '글을 쓰는 에라스무스'와 1532년 작 '원형 틀 속의 에라스무스'가 그것이다. 두 그림 사이에는 9년이란 시간의 간극이 있다. 1523년 작에서는 바젤에 거주하며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시기, 시대정신의 화신으로서 에너지 넘치는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지름 10cm의 손바닥만 한 원형 틀 속의 에라스무스는 늙고 지친 모습이다. 종교개혁에는 찬성했지만 폭력적 운동에는 반대했던 그가 프라이부르크로 몸을 피해야 했던 시기의 모습이다. 신교와 구교 양측으로부터 구애와 배척을 동시에 받으며 세상에 지친 당대 최고 지식인의 스산한 내면의 모습을 포착해낸 한스 홀바인의 능숙한 솜씨가 압권이라는 평의 초상화이다. 한자리에서 두 시기의 에라스무스를 나란히 비교하며 감상하는 즐거움은 바젤미술관만이 주는 특별 보너스다.
 
▲ 홀바인의 가족 '화가의 가족'
한편, 홀바인 가족의 방에는 '화가의 가족'을 그린 흥미로운 그림이 또 한 점 있다. '여기서는 예술이 얼어 죽어가고 있소'라고 쓴 에라스무스의 추천서를 들고 1526년 영국으로 간 한스 홀바인이 2년 만에 가족이 있는 바젤로 돌아온 직후 그린 그림이다. 성가족의 도상을 이용한 그림 속 화가 자신의 가족. 하지만 심지어 어린 딸 카타리나마저 아빠를 반기지 않는 모습이다. 심기의 불편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가족. 꾸며서라도 행복한 모습을 구태여 남기지 않은 화가. 1532년 두 번째 영국으로 떠난 그가 헨리 8세로부터 궁정화가라는 공식직함을 받는 등 성공을 하지만 마침내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할 운명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찬찬히 '화가의 가족'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화가로서뿐 아니라 인문주의자로서의 한스 홀바인의 냉철함과 냉혹한 자기 비판적 관찰력에 경외감이 든다.

 
 

한스 홀바인 (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 ──────
독일 출신의 화가. 아우구스부르크 출신으로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 뒤러, 크라나흐와 더불어 독일의 3대 르네상스 화가. 영국으로 건너가 헨리8세의 궁정화가로 활약. 아버지와 형도 유명 화가다. 단순한 사실적 묘사의 초상화에 그치지 않고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초상화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연 화가로 평가 받는다. 대표작으로 '대사들' '헨리8세의 초상' '에라스무스의 초상' 등.



▲ 스위스 바젤
바젤미술관 (Basel Kunstmuseum) ──────
· 주소=St.Alban-Graben 16 4010 Basel
· 전화번호=0041 (0)61 206 62 62
· 개관시간=화요일~일요일 10:00~18:00, 월요일 휴관.
· 가는 길=역에서 2번 트램을 타고 Kunstmuseum 정류장에서 하차.
· 부대시설=서점 및 상점, 간단한 음식과 음료수 파는 비스트로.
http://www.kunstmuseumbasel.ch/en/home/


여행팁 - 프랑스·독일·스위스 3개국 기차역 함께 있는 바젤 ──────
프랑스, 독일, 스위스의 3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바젤에는 3개국의 역이 함께 있다. 1501년 스위스 연방에 가입했으며 스위스 최초로 대학이 세워졌다. 네덜란드 출신의 에라스무스가 이곳 바젤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인문주의와 스위스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가지는 라인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은 공업지역, 왼쪽은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나뉘어져 있다. 바젤미술관 외에도 다수의 미술관이 있다. 그중 교외에 위치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Fondation Beyeler)은 파리의 퐁피두센터 설계에 참여했던 이탈리아의 천재적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건물에 세계적 화상 바이엘러의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바젤 관광청 http://www.basel.com/en/welcome.cfm







윤봉한_김해 윤봉한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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