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탄 수시디 씨는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작은 창 너머로 바다와 육지가 보였고, 번성한 도시의 모습이 펼쳐졌다.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인도네시와는 사뭇 달랐다. 숲도 달랐고 도시의 모습도 달랐고, 살아가는 풍경도 낯설었다. '아, 내가 다른 나라에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국의 낯선 풍경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슨 일이든 감내할 수 있다는 용기가 있었고, 낯선 땅에 대한 불안감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학창시절, 수시디 씨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자상하게 아이들을 대하고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가까운 곳에서 돕고 싶었다.
 
하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쌀농사를 지으며, 농장일을 겸했지만 가족들이 살기에는 넉넉치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5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뒷바라지를 하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대학 진학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수시디 씨는 그 때 깨달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슬픔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를 스무살에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슬픔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 했다. 가장 급한 것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사실 대학에 가지 못한 것도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이 아니었나! 수시디 씨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는 현재 비닐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일이 힘들긴 하지만 나름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150만 원의 월급을 받는데, 인도네시아 화폐로 환산하면 7배 가량돼 비교적 많은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수시디 씨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자신처럼 형편이 어려워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든든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것이 그의 소원이다. "인도네시아에 미래를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길 바라고 있을 거예요. 조금 더 고생하다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면 결혼을 할 겁니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이 저처럼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 거예요. 그게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이유입니다." 가장 힘든 것은 뭐라 해도 그리움이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수시디 씨의 마음을 태울 듯 간절하게 다가온다. "가족 생각은 누구나 마찬가지 일 거예요. 건강한 지, 큰 일은 없는지 늘 궁금하고 걱정됩니다. 내가 고생하는 만큼 다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한국에 머무는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여행이다. "김해나 부산은 이곳저곳 많이 가봤어요. 아름다운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앞으로도 생긴다면 서울 구경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 중 진영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수시디 씨는 더 늦으면 안될 것 같다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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