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어느 여름, 소도시의 한 서점에서 <전봉건 시전집>을 발견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책을 뽑아들면서 흥분을 했던 적은 무척 드물다. 도대체 누가 <전봉건 시전집>을 엮어낼 생각을 했을까? 엮은이의 이름을 보니 남진우 시인이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언젠가는 꼭 나왔어야 할 책이었는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오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김수영과 김춘수를 거론한다. 드물게 김종삼을 꼽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 무렵에 활동했던 시인 가운데 전봉건이 가장 뛰어난 시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시전집에 수록된 시들은 거의 다 읽은 것들이고, 그 중엔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은 것도 있지만 사지 않을 수 없었다. 1950년대에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시인에 대한 관심은 도를 넘기 시작했다. 그가 남긴 시집과 시선집을 구하기 시작했고, 구할 수 없는 시집은 도서관에서 빌려 복사를 했다. 해묵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대학도서관을 전전했다. 시론과 수필도 읽었고 그에 관한 학위논문도 읽었다. 묵은 먼지를 털며 오래된 잡지에 실린 대담이나 기사까지, 찾을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전봉건은 1928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1946년 여름 가족들과 함께 월남했다. 월남 후 서울근교에서 소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950년 서정주, 김영랑의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하지만 한 달 후 전쟁이 일어나 그해 12월에 의무병 주특기를 받고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총격전을 벌인 적은 없었지만,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보다 부상자와 전사자들을 더 많이 보았다. 그는 전장이 못 견디게 피곤한 곳이었고, 허기진 곳이었고, 무서운 곳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중공군의 총공격 때 오른손에 총알을 맞는 부상을 입고 제대한 후에는, 가족을 찾아 대구로 내려와 한동안 피난민 수용소에서 지냈다. 전봉건은 1953년 대구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가 출판계에서 일했다. 1969년에 <현대시학>을 창간하고 시창작과 잡지 만드는 일, 그리고 수석에 골몰했다. 직접 모은 돌과 부인이 소장한 그림을 팔아서 어렵게 <현대시학>을 운영해 나간 것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다.
 
전봉건 시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는 전쟁이다. 전쟁 체험은 그의 내면에 무척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쟁이라는 절망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상황을 다양하게 그려내지만, 시종일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전쟁은 그의 작품에서 단순한 소재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의 내면에서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는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고 할 수 있는 1960~70년대를 거쳐 1980년대까지, 전쟁을 주제화하는 시를 선보였다. 그가 들려주는 전쟁 이야기는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아름답기도 하다. 그의 시에는 전쟁이 가져온 비극과 상처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하려는 꿈이 나타난다.
 
그의 시 가운데 상당수는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도 앗아간 전쟁의 비극적인 풍경을 그려낸다. 하지만 그는 인간과 세계,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통해 전쟁이 남긴 상처를 극복해 나간다. 마지막 숨을 내쉬던 1988년까지 전봉건은 시 쓰기에 전념했다. 그의 삶을 생각하며 시를 읽다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많다.




>>김참 시인은
1973년 경남 삼천포 출신. 시인. 현재 인제대학교 외래교수. 1995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미로여행> <그림자들> 외, 저서 <현대시와 이상향>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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