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방송 좀 끌래?" 누구나 학창시절 혹은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테다. 그만큼 동네방송은 끼리끼리 잡담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방송에 활력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 지난 7일 개국한 김해시 동상동 재래시장 '와글와글 라디오 방송국'. 상인들과 고객들의 왁자지껄 이야기만을 담아내겠다는 이 '동네 방송'을 한 번 들어보자.
"DJ 하니오빠입니다. 와글와글 왁자지껄 시장을 꿈꾸며, 첫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첫방이 한창인 스튜디오는 제법 그럴 듯 했다. 23㎡ 남짓한 라디오 부스 내에는 LP 턴테이블, CD 플레이어, 컴퓨터, 최신 음향장비들도 갖춰져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하니오빠'는 DJ로도 손색이 없었다. 밖에서 이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2부 DJ 이소영 통역봉사단 단장은 "상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단장의 우려와 달리 상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박상철의 '무조건'을 따라 흥얼거리던 상인 이윤순(60.여) 씨는 "음악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흥이 나고 기분도 좋다"고 웃어보였다. 벌써 30년째 이 곳에서 제수용품을 팔고 있는 이춘자(73·여)씨도 "이렇게 시끄러워야 '시장'이지. 시장은 조용하면 안되지"라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 씨는 "이참에 재래시장 소문이 좀 나서, 사람들도 좀 몰려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보탰다.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이 씨는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다. 하지만 이씨는 흥겨운 음악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웃을 수 있었다.
시장을 찾은 손님도 흥겹긴 마찬가지다. 과일을 사러 왔다는 김미영(42·동상동)씨는 "시장에 노래가 나오니까 신기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라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던 김호기(73·구산동) 할아버지도 "시끄러우니까 좀 사람 사는 곳 같다"고 말했다.
하 사무국장은 듣는 라디오를 넘어 상인들과 고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끌어 낸다는 야심한 포부도 세웠다. 이미 게스트로 시장 내에서 직접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DJ 칼' 씨를 섭외했다. 또 시장 구석구석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골목통신원은 일명 '야쿠르트 이모'가 맡았다.
하 사무국장은 "아직은 시작 단계라 창의문화만들기 회원들이 주축이 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행기술들을 상인들에게 교육시켜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이끌어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 사무국장은 "매월 1차례 공개방송을 하고, 256개 점포주 등을 대상으로 시장 상인 개인기 열전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말이면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시장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매주 일요일 3시부터 4시까지는 오카다 미와(41) 씨가 다문화 이야기와 이주노동자의 애환과 웃음을 들려준다. 미와씨는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진행하는 사람도 즐겁고, 상인들은 물론 이 곳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즐겁게 방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동상동> 진행을 맡은 이소영 통역봉사단 단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김해를 제 2의 고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상인들도 외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말했다. '창의문화만들기'가 주축이 돼 꾸려가는 이 방송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진행된다. 라디오는 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누군가 '잡담'이라 여기던 '동네방송'은 이제 상인들과 고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