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개국한 동상동 재래시장 내 '와글와글 라디오방송국'에서 하용한 창의문화만들기 사무국장(왼쪽 두번째)이 초대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동네 방송 좀 끌래?" 누구나 학창시절 혹은 회식자리에서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본 기억이 있을 테다. 그만큼 동네방송은 끼리끼리 잡담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방송에 활력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 지난 7일 개국한 김해시 동상동 재래시장 '와글와글 라디오 방송국'. 상인들과 고객들의 왁자지껄 이야기만을 담아내겠다는 이 '동네 방송'을 한 번 들어보자.

"DJ 하니오빠입니다. 와글와글 왁자지껄 시장을 꿈꾸며, 첫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첫방'을 맡은 하용한(38) 창의문화만들기 사무국장의 눈에는 긴장한 눈빛이 역력했다. 지난 11월부터 재래시장 상인들과 고객을 위한 '라디오 방송국'을 만들겠다며 쉼 없이 달려온 그였다. 부스 밖에는 라디오 방송 개국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개국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강춘한 시의원 외에 김국권 도의원, 이천기 도의원, 김철희 동상동시장 번영회장, 인제대 조현 교수 등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 이 날 라디오 '게스트'이기도 했다.
 
첫방이 한창인 스튜디오는 제법 그럴 듯 했다. 23㎡ 남짓한 라디오 부스 내에는 LP 턴테이블, CD 플레이어, 컴퓨터, 최신 음향장비들도 갖춰져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하니오빠'는 DJ로도 손색이 없었다. 밖에서 이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2부 DJ 이소영 통역봉사단 단장은 "상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고 떨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단장의 우려와 달리 상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박상철의 '무조건'을 따라 흥얼거리던 상인 이윤순(60.여) 씨는 "음악이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흥이 나고 기분도 좋다"고 웃어보였다. 벌써 30년째 이 곳에서 제수용품을 팔고 있는 이춘자(73·여)씨도 "이렇게 시끄러워야 '시장'이지. 시장은 조용하면 안되지"라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 씨는 "이참에 재래시장 소문이 좀 나서, 사람들도 좀 몰려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보탰다. 오후 2시가 넘었지만 이 씨는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다. 하지만 이씨는 흥겨운 음악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웃을 수 있었다.
 
시장을 찾은 손님도 흥겹긴 마찬가지다. 과일을 사러 왔다는 김미영(42·동상동)씨는 "시장에 노래가 나오니까 신기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요"라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칼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던 김호기(73·구산동) 할아버지도 "시끄러우니까 좀 사람 사는 곳 같다"고 말했다.
 
하 사무국장은 듣는 라디오를 넘어 상인들과 고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이끌어 낸다는 야심한 포부도 세웠다. 이미 게스트로 시장 내에서 직접 칼국숫집을 운영하는 'DJ 칼' 씨를 섭외했다. 또 시장 구석구석 상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골목통신원은 일명 '야쿠르트 이모'가 맡았다.
 
▲ 동상동 재래시장 번영회관 1층에 자리한 '와글와글 라디오방송국'(왼쪽)과 최신 음향시설이 갖춰진 23m²규모의 라디오 부스(오른쪽)

하 사무국장은 "아직은 시작 단계라 창의문화만들기 회원들이 주축이 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행기술들을 상인들에게 교육시켜 더 적극적으로 참여를 이끌어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 사무국장은 "매월 1차례 공개방송을 하고, 256개 점포주 등을 대상으로 시장 상인 개인기 열전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말이면 외국인들이 몰려드는 시장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매주 일요일 3시부터 4시까지는 오카다 미와(41) 씨가 다문화 이야기와 이주노동자의 애환과 웃음을 들려준다. 미와씨는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진행하는 사람도 즐겁고, 상인들은 물론 이 곳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즐겁게 방송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동상동> 진행을 맡은 이소영 통역봉사단 단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김해를 제 2의 고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상인들도 외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것"이라는 계획을 말했다. '창의문화만들기'가 주축이 돼 꾸려가는 이 방송은 매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진행된다. 라디오는 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다.
 
누군가 '잡담'이라 여기던 '동네방송'은 이제 상인들과 고객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