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불편해소사업비'는 시의원들의 '쌈짓돈'인가? 최근 김해시의회에 이 사업비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해시가 시의회 의원들에게 '소규모주민불편해소사업비' 명목으로 지급하는 포괄사업비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고 있다. 주민들의 민원사업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책정된 이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지 않아서다. 김해시에 따르면 김해서부경찰서는 지난달 28일 A 시의원의 김해 어린이집 개·보수와 관련한 포괄사업비 사용 내역을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일부에서 A 시의원이 시공업체와 짜고 공사비 일부를 돌려받았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또 다음 날인 29일에는 창원지검이 B 시의원에 대해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포괄사업비 집행내역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 목적 불분명한 '주민불편해소사업비', 제대로 된 감시장치도 없어
 
이번에 논란이 된 이 예산은 대다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행적으로 집행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자체마다 '주민숙원사업비', '의원재량사업비' '소규모주민불편해소사업비' 등 이름도 다양하다. 또 정식 예산 항목에 없는 예산으로 의원들이 해당 사업업체를 선정해 집행부에 통보하면 계약이 이뤄진다. 김해시의 경우 천만 원 이상 계약 체결 때 경쟁입찰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이런 예산은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집행돼 온 '주민숙원해결사업비'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업비의 목적이 불분명한 데 있다. 인제대학교 행정학과 오세희 교수는 "지자체마다 용도도 다르고, 금액도 다른 이 사업비는 단체장과 시의회 공생관계를 위한 제도로 볼 수 있다"며 "'소규모주민불편사업비'는 이름만 갖다 붙이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이라 한마디로 시의원들의 '쌈짓돈'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경남발전연구원 김진권 박사도 "복지사업이든 건설사업이든 뭐든지 묶어 '주민숙원해결사업비'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비를 어디에 쓸지 결정하는 의원들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다"며 "목적이 불투명하다 보면 과정도 투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김 박사는 "예를 들어 도로 포장 사업을 한다면 의원들이 지인에게 사업을 줘도 알 수 없다"며 "집행부가 집행하는 예산을 감시하는 역할을 의원들이 하는데, 자신들이 집행부에 얻어 쓴 돈을 감시할 리 없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중앙정부의 경우 지자체의 포괄사업비와 성격이 비슷한 '특별교부금'에 대해 NGO나 시민단체가 감시 활동을 벌이지만,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일이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대부분의 지자체는 공생관계로 유착이 심한데 이를 감시할 NGO나 시민단체가 없다"며 "예산 관련 전문가라 해봤자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전부인데 공무원은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예산 공개를 꺼려한다"고 말했다. 또 예산은 총액만 공개되기 때문에 세부사항을 알 수 없을뿐더러, 공개된다고 해도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는 게 오 교수의 설명이었다.
 
다른 지자체들도 '주민숙원사업비'로 책정된 예산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의령군의 경우 군의원 신분을 내세워 선정한 업체에 공사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공무원에 대한 표적감사를 실시하는 등 압력을 행사한 A의원에 대해 경찰이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해당 지역구 군의원이 의령읍 지역 포괄사업비 집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만큼, 전체 군의원이 올해 집행한 7억여 원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또 지난 연말에는 광주시가 포괄사업비 명목으로 5개 구의회 의장에게 2억 원씩 총 10억 원을 편성하려다 시의회에 제동이 걸려 논란이 됐었다. 당시 시의회 안팎에서는 이 일을 두고 "상임위를 원안 통과했던 사업비가 예결위에서 뒤늦게 삭감된 것은 제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시의원들의 불만 때문"이라며 "이제는 이런 선심성 교부금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 전문가들, "시민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인만큼 투명해야"
 
전문가들은 어떤 목적의 예산이든 투명하게 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행적으로 쉬쉬해온 포괄사업비를 지금이라도 정당한 절차를 걸쳐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예산 자체가 시민들 세금이고, 이걸로 '생색내기'를 해선 안된다"며 "포괄사업비로 집행한 사업내역은 시민에게 공개하는 등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좀 더 강경한 어조로 "목적도 불투명하고 어디 썼는지 감시도 안되는 사업비는 원칙적으로 없어지는 게 맞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해시청 기획예산과 관계자는 "예산에 모든 것을 반영할 수 없고 김해시의 경우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1년에 두 번밖에 없다"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예산을 편성해야 하기 때문에 ''소규모주민불편해소사업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규모주민불편해소사업비 집행 내역 공개와 관련해서는 "집행을 담당하는 부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일일히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며, 만약 공개요청을 한다면 절차적 문제가 있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공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어느 의원이 어떤 사업비를 요구했냐는 알 수 없으며, 이것은 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8년 포괄사업비 문제가 불거진 나주시의 경우 시민단체가 나서 시정 요구, 받아들인 바 있다. 당시 나주시는 사업명이 적시되지 않는 포괄사업비는 편성은 물론 아예 집행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주시는 지역의 민원처리를 위한 예산은 절차에 따라 미리 반영하고, 또 단체장에게 접수돼 처리했던 민원 등도 해당 실과소장을 거쳐 집행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포괄사업비로 집행한 사업 내역은 상.하반기 두차례 의회에 보고하는 등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김해시의회 초선 의원은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같은 사항을 지적했다며 "'주민불편해소사업비'이라고 하더라도 말썽이 될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절차가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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