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시 동상동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스리랑카 출신 미란타씨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미란타(38)씨는 행복에 젖어 있었다. 고향인 스리랑카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설렜다. 빠진 물건은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러나 비행기에 채 몸을 싣기도 전 그 꿈은 산산조각났다. 지난 11월 27일 김해공항에서의 일이었다.

"아 이 xx야. 따라와." 출국 심사를 하던 심사관이 갑자기 욕설을 했다. 여권이 이상하다는 이유였다. 미란타씨는 황당했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얻은 'F-2-1비자'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알고 보니 출국 심사관이 '배우자 비자'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다.

"아니, 심사관의 실수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출국심사관이이라고 외국인들에게 막말하고 욕하면 되나요. 적어도 '예의'는 갖춰야 할 것 아닙니까."

한국에 온 지 벌써 15년 째, 힘든 일도 많았다. 무시당하고 이유 없이 욕먹는 일은 다반사였다. 10년 가까이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2년 전 김해에 정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경찰'이 그를 괴롭혔다. "너 마약한다며.", "너 애들이랑 싸우고 다니지." 어디서 들은 얘긴지 시도 때도 없이 경찰은 미란타씨가 운영하는 가게에 들이닥쳤다. 그럴 때마다 미란타씨는 영장을 보여 달라고 했다. "외국 사람한테 무슨 영장이 필요해!" 돌아오는 대답도 같았다.

주변에서 그의 친구들이 말했다. "미란타, 네가 경찰에 협조 안 해서 그래. 네가 불법체류자 신고하는 데 동참하면 덜 괴롭힐 거야." 하지만 미란타씨는 차마 제 손으로 친구들을 신고할 수 없었다. '돈' 때문에 불법이란 딱지를 붙일 수밖에 없는 사정을 미란타씨도 잘 알았다. 그래서 불법이란 딱지 때문에 친구들을 막 대하는 경찰이 미웠다.

그러나 미란타씨는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도 가지고 있다. 그 뒤에는 아내 '경림(29)'씨의 힘이 컸다. 벌써 결혼 8년째에 접어든 미란타는 아내를 만난 건 '행운'이라고 했다. 방 한 칸에 넉넉하지 않은 신혼살림이었지만 아내는 투정 부리지 않았다.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주변의 시선이 느껴질 법한데 경림씨는 오히려 미란타씨를 격려했다.

미란타씨는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한국인과 결혼해 체류기간 2년이 넘으면 국적취득을 신청할 수 있지만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국적 취득을 하려면 기본 재산이 3천만 원 이상에 집도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가게를 하기 때문에 버는 수입이 일정치 않아 어렵다"는 것이 미란타씨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미란타씨의 새해소망은 '국적취득'도 '돈벌이'도 아니었다. 미란타씨는 단지 모두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 사람들 도와주면서, 그 사람들 모두 사람답게 대우 받게 해주고 싶어요.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말고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미란타씨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한 가지 소원이 더 있어요. 올해엔 꼭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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