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대동령이었던 극작가 하벨은 <말에 관한 말>이란 연설에서 "몇 마디 말이 10개 사단병력보다 더 강력하다."라고 한 적이 있다.

탈무드에도 말에 관한 예화나 교훈이 많다. "비밀을 지켜라, 혀로 말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하라, 혀에는 뼈가 없다" "가장 좋은 것도 혀요 가장 나쁜 것도 혀다" 등이다. 스피노자는 "말은 행위의 거울"이라 했고 호라티우스는 "어떠한 충언을 하건 말은 길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말에 관한 예화나 격언을 찾는다면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신경의학계는 뇌 속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정설로 삼고 있다고 한다. 언어가 몸을 지배한다는 얘기다.

말실수로 곤욕을 치르는 여당대표도 있고 말실수로 탐나는 관직을 놓친 정치인도 있다. 매스컴의 보도는 억울하리만치 문제 부분만 따로 떼어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진의와 관계없이 상처를 입곤 한다. 사전에 준비하고 스스로 말조심 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건배사 시즌이다. 연말은 종무식, 송년회, 송별회 때문에 연초는 시무식, 환영회 때문이다.

인간사는 말로 시작하고 말로 끝난다는 사실을 체감할 시기이다. 이런 연회 의식에 언제부턴가 건배사 순서가 공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의식은 분위기에 따라 1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차 3차 심지어는 5차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어쩔 수 없이 건배 제의자가 되어 몇 마디 건배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당황스럽다. 들을 때는 편안했던 순서이다. 재치 있는 건배사에 따라 두 차례 세 차례 복창하며 즐겼던 순서가 말이다.

나는 지난해 9월 김달진 문학제 때 노 평론가 김윤식 교수와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도 참석한 시상식 잔치에서 지역문인 대표로 건배를 제의하며 "재미있고, 건강하고, 축복받는 삶을 살기 위해 제가 건배하면 '재건축'을 삼창 해주십시오" 라고 건배사를 제의한 적이 있다. 돌아와 곰곰 생각해 보니 점잖은 모임에 어울리지 않은 건배사라 너무 부끄러웠다.

건배사는 분위기에 맞고 유머러스하고 단체의 성격에 어울리는 메시지를 독창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건배제의 구호로 "지화자"를 제창한 적이 있다. 이런 경우 공·사석 다 두루 무난한 구호이다. 동창모임인가, 회사단합 대회인가, 남자 혹은 여자들만의 모임인가 아니면 혼성 모임인가, 연령대는 얼마쯤인가, 또 연초인가, 연말인가 잘 파악하고 멘트를 구상해야 한다. '당나귀' '변사또' '나가자' '사이다' '오징어' '우생순' '소녀시대' '아저씨' '오바마' '사우나' 등이 요즈음 인기 건배제의 구호라 한다. 노년층은에는 '구구팔팔 이삼사'나 '나이야 가라' 등이 애용되고 있지만 같은 구호도 외치는 방법에 따라 그 흥이 다르다. 분위기를 죽이지 않은 범위 안에서 자신의 바람을 전달할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이 황야에서도 진정 이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황진이를 제창구호로 하겠습니다."라든가 아량 있는 부자가 되자는 설명을 붙여 '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장소가 회사나 관청, 강당, 주점인가 또 나의 위치에 따라 의미 있는 짧은 멘트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어떤 말이든 그 사람의 인격을 담고 있다. 건배사의 경우 너무 흥겨운 분위기에 포인트를 맞추다 보면 성희롱에 해당되는 말을 하게 되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고 너무 메시지에만 의존해서 구성원의 빈축을 살 수 있고 길게 해서 초점을 잃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리의 언어, 희망의 언어, 흥겨운 언어, 정감의 언어가 건배사의 모습이어야 한다.

건배사를 해야 할 시기엔 스스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 가령 과 회식이나 부서 회식이 있는 날 자신에게 건배제의 기회가 온다면 어떤 언어로 구성원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스트레스를 날리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을까, 화합과 친화의 에너지로 충만해질 수 있을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언어생활이고 사회생활일 뿐 아니라 그것이 또 다른 나의 얼굴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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