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열풍을 타고 책도 여러 권 출간되었다. <정에 취하고 맛에 반한 막걸리 기행(정은숙 지음)>, <막걸리 넌 누구냐(허시명 지음)>, <막걸리-환족이 빚은 신비스런 술방울(이소리 지음)>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막걸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 술인지 영양학적으로 말해주는 책부터 어느 곳에서 누가 만든 막걸리가 맛있는지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는 책까지 내용은 다양하기도 하다. 그런 책들을 읽다가 보면 은근히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한다.
 
화가 사석원 씨 역시 막걸리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 마시는 것을 즐기는데, '주모'의 손맛이 배인 소박한 안주와 한 잔 술로 고단한 일상의 시름을 씻는 서민과 낭만과 감상을 풀어내는 예술인들이 찾는 술집들을 찾아서 소개한 책이 <막걸리 연가>이다.
 
주모. 단순히 술을 파는 술어미라고 하기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음식마다 정을 듬뿍 담아줄 것 같은 이가 주모다. 주모가 앉아 있는 그 술집들을 사석원 화백은 대폿집이라고 부른다. 술집이야 천지사방에 널려 있고 오늘도 어느 곳에선가 새로운 술집이 개업을 하겠지만, 대폿집은 흔하지 않다. 오랜 단골이나 단골의 손에 이끌려 찾아든 신참손님 말고는 모르고 스쳐 지날 만큼 눈에 띄지 않는 집이라서 그렇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닫은 곳도 있으리라. 저자는 대폿집을 찾아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발품을 팔았고, 그것도 모자라 두만강 유역 도문유역지의 대폿집도 다녀왔다.
 
저자 주변에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지인도 많다. 각 지역의 대폿집을 찾아갈 때면 그 지역 예술인이 동행하거나, 저자의 막걸리 상사병에 전염되어버린 이가 처음부터 여행을 함께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찾아간 집은 수 십 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터줏대감이고, 주모는 주객들과 한 가족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일가붙이 같은 존재이다. 술집이 있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적 배경도 소개하고 술집과 주모의 역사 그리고 안주이야기까지 버무려 놓고 있다.
 
저자와 함께 주막 한 군데를 찾아가보자.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의 금천, 이 세 물줄기가 한곳에서 합쳐진다고 하여 이곳 이름이 '삼강리'이다. 그 이름을 딴 '삼강리 주막'에서 할머니가 전설같이 나온다." 낙동강의 마지막 나루터 주막, 아니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으로 알려진 삼강리 주막의 이야기이다. 전설같이 등장했던 할머니, 유옥연 주모할머니는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새로운 주모가 손님을 맞고 있다.
 
내친김에 안주도 하나 맛보자. 진주의 주점 '애나가'의 안주이다. "찜을 한 명태 위에 고춧가루, 땡초, 실파, 배, 당근, 양파 등으로 만든 양념을 얹고는 한쪽엔 삶은 콩나물을 풍성하게 얹었다. 참 맛있어 보인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한 점 떼어 먹어 보니 역시나 보통맛이 아니다. 특히 추어탕에 넣는 향신료의 일종인 방아가 미묘한 향을 내면서 은근히 매력적인 맛을 발산한다."
 
추억은 또 어떠한가. 저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아버진 막걸리 한 잔에 리본처럼 묶은 실파를 고추장에 찍어 안주로 드시고는 "너도 하나 먹어봐라." 하시며 안주를 건네주셨다. 예쁜 모양과는 달리 매운 것인지 내 입맛엔 맞질 않았던 기억, 그날따라 고단해 보여서 쓸쓸했던 아버지의 옆 얼굴이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아련하게 남아 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이 60년대풍의 대폿집에 앉아 있다. 그때 내 아버지처럼, 나도 이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서…."
 
막걸리 한 잔에 실어 보내는 삶,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 있을까. 대폿집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지만, 눈 크게 뜨고 찾아보면 시장 한 켠에, 도시의 골목 막다른 어느 곳에 아직은 그 명맥을 유지하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똑똑한 체들 말고 술들이나 마셔"라고 잘난 척 논쟁을 벌이는 손님들을 말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주모도 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흥겨운 술집에 푹 젖었다 일어서며 "사람 사는 곳이다"라고 중얼거리는 주객도 있다. 전국의 이름난 대폿집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다 읽고 보니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사석원 글·그림/조선Books/330p/13,800원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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