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발견전'에 전시된 주정이 목판화가의 작품들.

지난 6일, 목판화가 주정이 선생이 참여한 '부산의 발견전'을 보기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에 들렀다. 도시철도 시립미술관역에 내리니, 벽에 붙어 있는 전시 안내가 눈길을 끈다. 오고가는 이들이 자연스레 전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부산의 발견전'은 미술관 3층에서 열리고 있었다. 주정이 선생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공간. 가장 먼저 '산수유'가 눈에 띈다. 문학에서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용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미술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선생의 작품을 보면 인간과 자연을 보듬는 그의 성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의 작품들은 깊이가 있다. 색의 농담(濃淡), 양각과 음각,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 그야말로 '왜 목판화여야만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무 속의 산'이라는 작품은 바탕을 아예 나무결과 같은 무늬로 파냈다. 다른 판화가들의 작품과 비교해 보면,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가까이 가 닿고자 얼마나 치열하게 작업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선생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앵글(angle)'과 '거리감'에 더 주목해 보았다. 사진작가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인지, 그는 앵글과 거리를 자유자재로 조절해 작품에 입체감을 더한다. 얼핏 비슷한 느낌의 '벗을 청하다'와 '망중한'을 비교해 보자. '벗을 청하다'에서는 집 안에 사람이 앉아 있고, 하늘에 구름이 떠다니는 풍경을 원경으로 그려낸다. 반면 '망중한'에서는 산과 나무가 있는 풍경 아래 사람이 들어 앉은 모습을 보다 근경으로 보여준다.
 
'마을'이라는 작품은 어떤가. 가운데 있는 한 집을 동그렇게 둘러싸고 여러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선생은 이를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새의 눈으로 본 각도)'와 '아이 레벨 뷰(eye level view·눈높이에서 본 각도)'로 표현했다. 그래서 가운데 있는 집은 그대로, 나머지 집들은 모두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작품 한 작품 마음을 다해 보고 나오는 길, 문득 '김해에는 왜 이런 전시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해에는 순수예술이 발 붙일 자리가 거의 없다. 문화의전당 내에 윤슬미술관이 있긴 하지만 순수미술관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건축도자전문미술관인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도 지역 순수예술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곳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순수예술에 대한 인식'이다. 일전에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가 "하드웨어는 우리가 다 만들어놨지 않느냐.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은 예술인들 스스로 채워야지, 왜 맨날 우리보고 지원을 해달라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부 이해는 간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간도 부족할 뿐더러, '예술은 어떤 지원도 없이 홀로 배고프게 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잘못됐다. 지역예술인들이 한 명씩 더해져 여럿이 되면 '김해예술'이라는 큰 틀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관련분야 전문인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탓에 이런 인식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부산의 발견전' 팸플릿에 적힌 설명을 옮긴다. 무엇이 타지역과 김해의 이런 차이를 낳은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 하여 마음이 무겁다.
 
"…본 기획의 타이틀은 '부산의 발견'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산이라는 지정학적 장소가 여기에 연고를 둔 작가들 혹은 이 지역 미술을 재평가함으로써 '부산이 지역 작가를 발견해 낸다'는 것이거나, 역으로 이 전시가 참여 작가들로 하여금 부산 미술의 정체성 혹은 부산미술의 개성을 발견하게 하는 장으로써 '부산을 재발견한다'라는 이중적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가 부산의 중진작가들을 재평가하고, 그 결과로 부산의 미술이 재발견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