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숭산 정상. 짙게 깔린 운무 때문에 사위를 가늠할 수 없지만 열대우림 같은 산행길의 정상에서 맛보는 운치는 맑은 날 산행의 묘미와는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사진/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장맛비가 기차 타고 여행 떠나듯 싱숭생숭, 오락가락 한다. 한 여름의 우중산행. 비록 몸은 힘이 들어도 산에서의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다. 푸른 알몸 흠뻑 젖어드는 빗속 산길은, 자연의 광대한 품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과 다름 아니다.
 
이번 산행은 빗길의 태숭산을 오른다. 진례면 외촌마을의 죽곡교 왼쪽 임도를 들머리로 하여, 부부 묘를 거쳐 된비알의 오르막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오른 뒤 하산하는 원점 회귀 코스이다.
 
300여 미터 정도의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그렇게 쉽게 길을 내어주는 산세는 아니다. 쉼 터 하나 제대로 없이 정상까지 계속 치고 오르는 된비알 산길인데다가, 원시림처럼 온갖 잡초와 가시덤불이 무성하고, 군데군데 넘어진 나무 등걸들이 곳곳에서 길을 막고 있기에 그렇다.
 
들머리 임도로 들어서자 시원한 바람, 참새의 재재거림, 금계국의 노오란 꽃물결이 기분 좋게 일렁인다. 산 중턱으로 한 무리 검은 구름들이 진영 쪽으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임도 옆으로는 신항만배후철도와 연결되는 경전선 신철로가 곧게 뻗어 제 길을 내고 있다.
 
▲ 태숭산 들머리 입구(아래 사진들 포함) 옆을 시원스레 내달리는 경전선 신철로.
철로와 들머리는 철망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길을 간다. 마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서툰 인연의 길이 계속 이어지는 형국이다. 철망을 사이에 둔 불편한 길, 그 불편함의 예감이 적중하듯, 철망에 걸려 죽어있는 새 한 마리 목격한다.
 
막는다는 것, 가로막는다는 것은, 건너야 하는 것, 넘어야 하는 것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막는 것이 있으므로 헤쳐가기 위한 열정의 풀무질을 배우는 법.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감은 제 목숨마저 버리며 철망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충분한 이유이다.
 
▲ 태숭산 입구의 임도. 녹음이 우거진 숲 속으로 향해 난 길은 이방인의 발길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자유의 지대한 갈망이 그렇게도 속절없는 것이었을까? 목적한 곳으로 가기 위한 자유의 나래짓이, 철망의 견고한 장벽 앞에 속절없이 스러져버리고 말았다. 꺾여버린 날개는 이미 말라서 철망을 부여잡고, 고개는 자유의 그 곳으로 내민 채 주검으로 남아있다. 새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진영역으로 가는 기차가 빠르게 지나친다.
 
잠깐 오르막에 서니 아래로 철길과 터널이 보인다. 금음산, 황새봉의 편안한 능선도 보이고, 황새봉 앞으로 봉긋 솟은 무릉산도 버티고 있다. 고모리 마을과 공단들도 조망 된다. 하늘에는 잠자리 떼가 무심하게 어지러이 맴을 돌고 있다.
 
임도로 계속 직진하면 광주 안씨 가족묘, 왼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도라지 밭이 조성된 풀길이다. 풀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길 왼쪽으로 좁은 산길이 나 있고, 그 길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본격적인 태숭산 산행길로 접어든다.
 
인적이 드문 산이라 그런지 초입부터 딸기 덤불, 아카시 나무, 칡덩굴 등이 길을 완고하게 막고 서있다. 자연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기에, 예고 없는 인간의 방문이 미덥지 않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라도 잠시 왔다가 다시 가버릴 대상에게 자리를 내어주겠는가?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계속해서 가시덤불이 얼굴로 달려든다. 게다가 습도도 높아 금세 온몸이 땀에 젖어 흥건하다. 장마 내도록 비에 젖었던 묵은 산길이 그예 발목까지 푹푹 빠져드는데, 오르막은 쉴 새 없이 이어져 끝이 없을 것 같다.
 
▲ 열대우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참나무 등걸. 쓰러진 나무등걸에 이끼가 덮여 원시림 같은 풍경이다.
길섶으로 도열한 관목 숲을 감싸고 있는 청미래 덩굴, 갖가지 덤불로 산은 열대우림 속의 원시림 같다. 큰 나무들을 치렁치렁 감고 있는 칡덩굴과 미국 자리공 큰 이파리가 얼굴을 칠 때마다 마치 밀림 숲을 헤쳐 나가는 기분이다.
 
길이 어두워지며 안개가 옅게 깔리자, 활엽수 이파리에 듣는 빗물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그래도 풀이파리들은 비에 젖어 얼굴이 풋풋하고 싱그러운데, 후드득 무릎을 적실 때마다 그 축축함 때문에 깜짝깜짝 놀랜다.
 
부부 묘에 도착해서야 겨우 큰 한 숨을 돌린다. 그리고 비로소 산의 시야가 트인다. 잠시 물을 마시며 조망을 한다. 멀리 화포천과 진례 톨게이트가 짙은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진례 벌판과 공장들도 올망졸망 모여 앉았다. 그 사이로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와 기차의 기적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한다. 온산이 비 듣는 소리로 소란스럽다. 계속되는 오르막은 끝이 없다. 가시덤불, 그리고 또 가시덤불, 비에 젖어 미끄러운 된비알의 능선, 웃자라 오른 풀숲으로 잠깐씩 끊어지는 산길. 가끔씩 길을 막고 널브러진 죽은 참나무 등걸들… 그래도 가야할 길은 계속 나그네를 부르고, 그 길 끝에는 정상이 있을 터이다.
 
갑자기 안개가 길섶으로 짙게 깔린다. 그 안개 길 사이로 잠깐씩 밝은 빛이 보이는 걸 보니 정상이 가까운 모양이다. 정상초입. 풀이파리들이 웃자라 이미 정상의 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스틱으로 풀숲을 헤치며 눈가늠으로 길을 내며 오른다. 온몸은 빗물에 젖어 생쥐 꼴이다. 악전고투가 따로 없다.
 
▲ 태숭산 정상의 넓은 풀밭과 외로이 산을 지키고 선 정상목. 나무가지에 정상팻말이 걸려 있다.
잠시 뒤, 시야가 확보되며 넓은 풀밭이 펼쳐진다. 태숭산(312.6m) 정상이다. 정상은 오로지 어깨까지 치솟아 오른 잡초들 세상이다. 정상목 한 그루 홀로이 서있고, 먼저 올라온 안개가 태숭산의 모든 풍경을 숨겨놓았다. 산 아래 전망은 어디가 어디인지 요령부득이다. 호랑나비 한 마리만 풀 잎 위에 앉아, 잠깐 제 날개를 접고 쉬고 있을 뿐이다.
 
정상목 앞에 선다. 홀로 독야청청 하듯 그 푸른 잎이 한창 싱그럽다. 밑가지에는 산악회 리본들이 줄줄이 걸려있고, 윗가지에는 정상팻말이 걸려있다. '김해 태숭산 312.6m'라고 새겨져 있다. 마치 정상목의 문패처럼 가지 끝에 매달려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다.
 
태숭산(太崇山)은 한때 태종산(太宗山), 태동산(泰洞山)으로 불렸다. 또 대종산(大鍾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어느 이름으로 불려도 그 의미는 넓고도 크다. 산이 크진 않아도 그만큼 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적잖이 큰 의미로 자리하고 있는 산인 것이다.
 
인제대학교 이영식 교수에 의하면 '이 산에는 마을 원님에게 수청 들기를 거절하고 목을 매었던 처녀의 혼을 기리는 제사가 매년 칠월 칠석 날에 지내졌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산 아래의 동민들이 모여서 칠석놀이를 하고 태숭산을 향해 복을 빌었다고도 전해진다.
 
한 여인의 슬픔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가? 부슬부슬 계속해서 비는 내리고, 산 정상은 짙은 안개에 쌓여 모든 길들이 사라진다. 모든 것들이 사라진 곳에는 적막만이 남는다. 그 먹먹한 적막 속에 망연자실 서서, 길손마저 적막의 풍경이 된다.
 
눈을 감는다. 그러자 마음 속 눈이 밝게 깨어난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한다. 창원 쪽으로 낙남정맥의 산들이 다가온다. 그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용지봉'을 호명하면 용지봉이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대암산'을 부르면 대암산이 그 옆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용지봉, 대암산, 비음산, 용추고개, 내정병산, 정병산…들이 지리산 방향으로 길을 열고 달려가는 것이다. 그 산들의 마루금이 곱씹어 볼수록 진중하면서도 선연하다.
 
하산을 서두른다. 비는 소나기로 내리고, 길가로 군부대 참호 두어 개 비를 맞고 있다. 그 옆으로 큰 키의 미국자리공이 참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올랐던 길이 급한 경사였기에, 내리는 길 또한 쏟아질 듯하다. 비에 젖은 하산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몇 번을 미끄러질 뻔 하며 조심스레 길을 내린다. 스틱에 몸을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내리는데, 문득 내 몸 지탱해주는 스틱이 너무 고마워진다. 그래, 세상사 자기를 맡기는 지팡이 하나쯤 갖는 일이, 그 얼마나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일인가?
 
한때 다리가 불편하여 지팡이에 몸을 실은 적이 있었다. 수술 후 제 기능을 되찾았지만, 그 시기 동안 많은 고통 속에서도 다리가 되어준 지팡이에게, 무한한 감사와 신뢰를 보냈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대상에게 자신의 몸을 의지하며 기대어 산다. 해서 서로는 서로에게 몸을 맡겨두는 지팡이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소나기 오는 날, 그 지팡이와 함께 험한 고개와 거친 물길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다.
 
급하게 올랐다가 쏟아질 듯 내려오는 산세가 소나기와 비슷해서일까? 소나기를 맞고 올랐던 태숭산은 소나기와 같은 산이다. 비록 힘들고 불편한 산길일지라도, 그 뒤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하산길이 있기에 개운한 산행이다.
 
태숭산을 내리며 맞은 소나기로 온몸이 젖는다. 온몸이 젖어 이제 마음마저 젖는다. 그래도 지팡이와 함께 하는 하산으로, 몸은 더욱 따뜻하다. 악전고투 속 맛보는 영혼의 자유로움…
 
그래, 자연에게 한 수 배우고 내리는 산행인 것이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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