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이라면 이 말을 한번쯤 써 보았을 것이다. '쫌!' 상대방이 하는 짓을 멈추라고 말하다가 마지막으로 내뱉는 경고의 의미일 때도 있고, 대화 끝에 제발 부탁을 들어달라는 애원의 의미일 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단 한 음절로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어 발음할 때 쓰는 말이다. 아이들이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장면이 성가실 때 "얘들아 조용히 좀 하렴"이라고 타이를 마음의 여유조차 없을 때 "쫌!"이라고 강하게 발음하며 쳐다보기만 해도 아마 아이들은 순간 조용해질지도 모른다. 다른 지방 사람들이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쫌'의 경우는 우스개 소리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 중에 단 한 번의 발음으로 가장 중요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들은 생각보다 많다. 아니, 어쩌면 우리말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한 글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 오동환 씨의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이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어쩐지 좀 현학적이고 거창해서 사전이라도 찾아봐야 뜻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전문용어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우선 우리 자신의 모습과 일상을 돌아보자. 인간의 겉모습인 육체를 우리는 '몸'이라 부르며, 몸에 깃든 정신을 '넋'이라고 한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코'로 숨쉬며 '입'으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집'에서 '잠'자고 '꿈'꾸며 '땀'흘려 '일'해서 '돈'을 번다. 자연은 또 어떤가. 산, 강, 흙, 숲, 풀, 꽃, 길, 땅, 물, 불이 있다. 멀리 우주를 보면 해, 달, 별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언론인이며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우리말 산책>을 비롯해 <우리말 죽이기 우리말 살리기> <한국인은 한국말을 못한다> 등 우리말에 대한 책을 여러 권 펴낸바 있다.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깊은 저자는 <우리 삶에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다>에서 우리말 단음절 어휘의 미학을 말하고 있다.

미학이라니까 어려운 책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 거론하고 있는 단어들은 일상이 바쁘고 세상이 복잡해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쳐갔던 말들로, 독자들에게 이런 것이 있다며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잠깐 잊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을 읽다가 지인들과 함께 우리 삶에서 소중한, 한 글자로 된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해보았다. 누군가 '돈'이라고 외치자 바로 웃음이 터졌다. 정말 중요하긴 하지만 그 말부터 튀어나온 게 조금 민망했던 그는 곧 이어 '꿈'이라고 말했다. 이번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쏟아지는 한 글자의 말들, 그 말을 들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주고 받으며 단 한 글자이지만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그 '말'들이 고마웠다. "정말 중요한 건 단 한번의 발음으로도 전달되어야 한다는 거 아닐까?" 책을 돌려보던 우리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혼자 남았을 때 '책'에 관한 부분을 펼쳐 보았다. "어떤 책은 음미하고 어떤 책은 마셔버려라. 씹고 소화시켜야 할 책은 다만 몇 권의 책뿐이다." 좋은 책은 정성들여 읽어야 한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로 시작되는 글은 '책'에 관한 인류의 역사와 문화, 동서양의 인식, 관련 상식들이 줄줄이 이어져 나온다. 우리의 삶을 향해 던진 낚시에 '책'이라는 단어가 걸리고, 그 뒤로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이 뒤따라 걸려 올라오는 거다.

다른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은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야 할 부담 같은 건 없다. 저자가 선정한 40개의 단음절 단어를 목차에서 확인하고 관심 가는 말부터 펼쳐 읽어도 된다. 우리 일상과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의 의미를 알고 싶을 때 펼쳐보면 좋을 사전 같은 책이다. 비록 설명하고 있는 어휘가 40개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약'이 되고 '힘'이 되어줄 것이다.

오동환 지음/세시/437p/15,000원




박현주 객원기자
북칼럼니스트, 동의대 문헌정보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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