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유 용두산 정상에서 바라본 장유 시가지 전경. 최산·여행전문가 tourstylist@paran.com

불볕더위가 기승이다. 하루 내내 도가니 속처럼 절절 끓어대는 통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김해벌 모두를 활활 불질러버릴 듯이 맹렬한 기세다.
 
이번 산행은 장유면의 중심부, 장유신도시를 끼고 있는 용두산(龍頭山)을 오른다. 용두산은 조만강과 대청천이 만나는 합수지점에 위치하여, 물에서 막 승천하는 용을 닮은 지세로, 높지는 않지만 탄탄하고 활달함을 갖춘 산이다.
 
올해들어 가장 덥다는 찜통더위 속이라, 동네 뒷산 산보하듯 느릿느릿~ 장유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걷는 산행이다. 내덕리 외덕마을을 들머리로 하여 3·1독립운동기념탑, 용두산 정상, 대숲터널을 지나 용두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용두산' 얘기를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부산의 '용두산공원'을 떠올린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다는 얘기겠다. 그러나 김해에도 용두산이 있다고 말하면 적이 놀란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눈치다.
 
용두산은 전국적으로 해발 1백m급 이상이 열대여섯 곳 정도 된다. 부산 용두산과 인천 용두산, 그리고 창원, 밀양, 안동, 영덕, 장흥의 용두산, 9백~1천여m의 아주 거방진 높이의 제천과 단양의 용두산 등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용이 노니는 형국 지세
용의 고장으로 불린 장유
그 중심부에 탄탄하게 자리한 산

다른 지역의 용두산보다 김해의 용두산이, 산의 지명도로 보나 높이로 보나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용두산이 소재해 있는 김해시 장유면이, '용의 고장'이라는 것을 알면, 또 그곳 중심부에 용두산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장유는 예로부터 용이 노니는 곳, 용을 품고 있는 형국의 지세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장유의 지명 곳곳에는 용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 이름들이 금방이라도 승천할 태세로 꿈틀대는 것만 같다.
 

▲ 용두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 바위에 있는 사다리.
산의 지명으로는, 용이 도사리고 있는 형상의 반룡산(盤龍山), 정상에 용이 목욕하는 연못이 있었다는 용지봉(龍池峰), 그리고 용이 승천하는 지세의 용두산 등이 있으며, 마을지명으로는 신문리의 용산마을, 내덕리의 용두마을, 내덕리의 옛 이름인 용덕리 등이, 부귀와 풍요를 상징하는 용(龍)자 지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장유의 용두산이 가지는 산의 의미는 작지가 않다는 것이다.
 
작지만 큰 산, 용두산으로 들어선다. 외덕마을 표지석이 보이고, 그 앞으로 용두산 들머리 임도가 보인다. 들머리에 들자마자, 임도의 경사가 보통 치받는 게 아니다. 매미소리도 일시에 쨍하니 들려온다. 산은 한창 한여름의 기운에 드푸르다. '울울창창(鬱鬱蒼蒼)'이라고 했던가? 모든 생물들이 싱그럽고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매미, 쓰르라미가 진종일 울어대고, 풀내음 가득한 산 초입 전체가 온통 진초록 투성이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뱀이 많아 뱀골이라 했다는데, 어디에서 '쉭'하고 뱀이 나올 것도 같다. 계곡 쪽으로는 칡덩굴이 모든 나무들을 뒤덮고 있고, 적당히 오르면서부터는 대나무 군락이 시작된다. 길옆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장유를 지키듯 굽어보며 홀로 청청하다. 소나무 뒤로 용지봉 산자락이 서서히 열리며, 산그리메가 그윽이 다가온다.
 
▲ 정상에서 바라본 대청천과 조만강 합수지점. 그 양쪽으로 펼쳐진 장유벌이 짙은 녹색으로 싱그럽다.
그나마 임도가 잘 닦여져 걷기에는 쾌적하다. 동네 산이라 곳곳의 벤치도 앙증맞게 잘 만들어 놓았다. 짙은 풀냄새가 싱그럽다 못해 아릿하다. 고개 모롱이 크게 돌아가는 곳, 두 번째 벤치에 잠시 앉는다.
 
장유벌이 넓게 펼쳐지고, 그 사이로 장유의 대청천과 조만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 보인다. 그들이 만나 다정하게 한 길을 내고 있다. 장유벌 뒤로는 가락국 왕의 태를 묻었다고 전해지는 태정산이 보이고, 이웃하여 굴암산이 긴 능선을 잇고 있다. 그 너머로는 남해 바다가 8월 폭염에 들끓고 있을 터이다.
 
고개를 꺾어들자 바로 축대로 만든 구조물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니, 한쪽에는 체육운동시설이, 다른 한쪽에는 3·1독립운동기념탑이 서 있다. 이 기념탑은 1919년 4월 12일 무계리 시장에서 3천여 명의 민중들이, 대한독립을 외치며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기념하여 세운 탑이다.
 
12계단을 올라 기념탑 앞에 선다. 대리석으로 마감한 탑신에다, 상부에는 횃불 조형물을 세웠다. 꺼지지 않는 민족혼을 상징화한 것 같다. 전면에는 의거 당시 민중들의 만세운동을 부조로 생생하게 그려놓고 있다. 탑의 양쪽으로는 돌향로를 배치해 놓았는데, 그 중후한 세월의 더께가 돌이끼로 쌓여 마음 한 곳을 울린다.
 
▲ 용두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 바위에 있는 사다리.
탑 뒤로 난 길 따라 길을 낸다. 대나무 숲과 마삭덩굴 군락이 길섶으로 한창 시푸르다. 그 위로 나비 몇 마리 나풀대고, 조만강에서 날아온 풀잠자리 떼가 정신없이 날아다닌다.
 
길을 가다 만난 큰 바위, 그 바위를 넘어가라고 사다리 하나를 놓아두었다. 누구의 마음씀인지 절로 미소가 흐른다. 오르면 오를 수록 장유의 시가지가 환하게 열리고, 장유를 호위하는 산들의 마루금은 더욱 깊어진다.
 
곧이어 정상입구에 바위절벽이 하나 버티고 선다. 봉화산의 부엉이 바위 정도는 될 성싶다.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이곳에서 패러글라이딩 동호회들이 자주 활공을 한단다. 용머리 부근에서 승천하듯 창공을 차고 오른다는 얘기다. 날아오르는 자들에게는 꽤 의미있는 활공이 될 것 같다.
 
절벽 아래로는 공터가 남아있는데, 아마도 용두산체육공원 조성부지인 것 같다. 한때 김해시는 용두산을 깎아 시민체육공원을 조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용두산이 돌산이라 사업성이 없어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게 용두산은 사라질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눈앞으로 장유신도시의 아파트 빌딩이 성채처럼 다가온다. 그 뒤로 용지봉의 웅장한 능선이 병풍 두르듯 서 있다. 왼편 장유벌은 푸른 벼들이 알곡을 알알이 키워내고 있고, 불모산은 주위 여느 산들의 마루금을 거느리며 넉넉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앞으로 팔판산, 굴암산 등이 장유면을 호위하고 있다.
 
다시 몇 걸음 더 오르자 용두산 정상(114m). 먼저 산불초소가 산객을 맞이한다. 사방을 둘러보니 모든 방향으로 전망이 탁 트인다. 정상에 700m에 달하는 산성이 있었을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였던 용두산이다. 그 말대로 정상에서 김해평야와 김해시가지, 장유면과 낙남정맥의 선명한 마루금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김해시가지 쪽을 조망하니 멀리 구산동 아파트단지가 보이고, 임호산~함박산 능선 뒤에 분성산, 그 뒤에 돛대산~신어산 능선이 첩첩이 줄을 섰는데, 모두가 제 능선 다 드러내고 누운 품이 고만고만하게 닮은 형제들 같다.
 
주촌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주주봉과 소황새봉의 쌍봉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옆으로 양동산성과 매봉산, 그리고 황새봉 능선이 뒤를 받치고 있다. 시계(視界)가 좋아 모든 산들이 선명하게 제 몸들을 부끄럼 없이 다 드러내는데, 오랜만에 산의 싱그러운 속살을 본 나그네는, 불타는 폭염 속에도 그저 미소만 돈다. 나그네의 그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공에는 황조롱이 한 마리 낮게 날며 시끄럽게 '빽빽'댄다.
 
초입부터 터널 같은 대나무 군락
울울창창 진초록 녹음 펼쳐지고
정상에 버티고 선 바위절벽에 서면 짙푸른 평야와 낙남정맥 마루금
김해시가지와 장유 신도시 장쾌

정상에서부터 용두마을로 내리는 길 내내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산 아래 마을을 대골이라 한 이유를 알듯하다. 지난 겨울, 이곳 용두산 정상에서 대나무 꽃 군락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원래 대나무는 60년에서 120년 만에 한 번 꽃을 피우고 홀연히 죽어버리는 신비한 일생을 가졌기에, 평생을 살면서 대나무 꽃 한 번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대나무 꽃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희귀하여 길상의 징조로 여겨졌다.
 
근래에는 지난 2007년 경북 칠곡에서 솜대, 2008년 경남 거제 칠전도에서 맹종죽, 올해 남해고속도로변의 왕대에서 대꽃이 각각 관찰된 정도이다. 호사가들은 최근 장유가 분동할 정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과 용두산에 대나무 꽃이 핀 일을 관련지어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예로부터 용두산은 일명 죽산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대나무가 무성했던 곳이다. 이 대나무로 화살대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정도이니 대나무 꽃이 피고 질만도 하다. 그러나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벼이삭처럼 피었다'는 대나무 꽃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
 
▲ 대나무군락지임을 방증하듯 터널을 이루고 있다.
산을 내릴 수록 빽빽한 대나무 숲만 더욱 짙어질 뿐이다. 급기야 하늘을 가린 대나무 숲은 사람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어두운 터널을 만들어 놓았다. 그 터널을 빠져나가면서 촬영을 하는데, 자동플래시가 터질 정도로 깜깜하다.
 
잠시 대나무 터널을 지나고 오솔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창녕조씨 묘에 이르러 시야가 트인다. 묘 앞으로 배롱나무 붉은 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바로 발밑으로 조만강이 흐르고, 그 뒤로 칠산 능선 전체가 편안한 품을 나그네에게 내어준다.
 
터덜터덜 길을 내린다. 편안한 오솔길이 계속되더니, 이내 민가가 하나 보인다. 민가의 강아지들이 콩콩 짖는다. 조금 더 내려오니 용두마을이 나오고, 마을초입으로 어슬렁거리며 걷는다. 올들어 가장 덥다는 날의 한낮, 벼논 사이로 난 마을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동네 당산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섰는데, 그 크기가 20m는 족히 넘겠다. 동네 어른들께 여쭤보니 포구나무란다. 팽나무의 경상도식 이름. 당산나무가 편안하게 잘 자라면 마을이 평화롭다고 했던가? 벼논에 팬 이삭도 튼실하고 수로의 물은 논으로 콸콸콸 잘도 흘러간다. 그렇게 알곡들도 알알이 익어가고, 산을 내린 나그네의 마음마저 괜히 넉넉해진다.

 

 

최원준 시인/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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