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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林洞天, 무척산·낙동강 둘러싸여 숲 우거지고 하늘 뚫린 명당(45) 생림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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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2.08.21 16:18
  • 호수 87
  • 12면
  •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report@gimhaenews.co.kr)

   
▲ 생림대로를 따라 경전철기지와 삼계정수장을 지나 나밭고개를 넘으면 생림면이 시작된다. 나밭사거리 생림면 입구에 '생림동천'이라 새긴 표지석이 서있다.
'生林洞天'(생림동천). 생림면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의 마을 표지석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앞의 '생림'은 쉽게 읽히지만, 뒤의 '동천'을 제대로 읽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뜻 또한 얼른 새겨지지 않는다. 옛 삼랑진교에서 들어오는 북쪽의 표지석(1993.9.25)에는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생림'이란 설명문이 붙어 있다. 날 생(生), 수풀 림(林), 빌 또는 통할 동(洞), 하늘 천(天)이니, 직역하자면 '숲은 우거지고 하늘이 뚫렸다'는 뜻이다. 비슷한 형용은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지리산 자락 악양마을의 '악양동천'이나, 최치원이 화개의 가을을 노래했다는 '화개동천'이 있다. 지리산을 남쪽에 두고 섬진강을 북쪽에 두른 산남강북(山南江北)이라 땅은 양기가 모인 명당으로 꼽혔고, 솟구친 산은 푸른 가을 하늘을 열어 제친 것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침 생림의 땅 모양이 악양과 흡사하다. 북쪽에 낙동강을 두르고 남쪽에선 김해 제일의 무척산(702.5m)이 솟아올랐다. 가을단풍의 무척산에서 낙동강 쪽으로 펼쳐진 금빛 들판을 내려다 보면 '생림동천'이란 형용이 저절로 떠오른다. 새겨진 글씨는 무척산 모은암의 송원스님이 쓴 것이라 하니 그 작명의 내력 또한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원래 '동천'은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뜻하는 말로, 서울 인왕산의 백운동천, 강화 마니산의 함허동천, 강원 삼척의 두타동천, 충북 청풍의 도화동천, 경북 금오산의 금오동천, 합천 가야산의 홍류동천, 보길도 윤선도의 동천석실 등이 유명하다. 무척산 서쪽 자락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펼쳐진 생림도 이런 경승의 대열에 빠지지 않는데, 마을 이름 자체는 생철리와 봉림리가 합쳐져 생림이 되었다고도 한다.
 
삼계사거리에서 생림대로를 따라 경전철기지와 삼계정수장을 지나 나밭고개(羅田峴)를 넘으면 나밭사거리부터 생림면이다. 낙동강까지 4차선으로 시원스럽게 달리는 생림대로는 구간의 대부분이 생림면을 지나기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김해대로나 금관대로와 같이 김해를 관통하는 3대 '대로'에 걸맞은 이름이 붙여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밭고개는 나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지만 전(田)의 음이 아닌 '밭'의 훈으로 표기되었다. 노현(露峴)으로도 불렸다는데, 이슬 로(露)라면 '이슬고개' 같은 로맨틱한 이름이 되겠지만, 그런 어원은 없는 모양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처럼 김해도호부의 북쪽고개로서 '드러날' 노(露)의 훈이 '달'이나 '다라'와 같이 북쪽을 뜻하는 우리말과 통한단다. '북쪽고개' 또는 김해도호부에서 '나가는 고개' 등의 어원이 생각되는 모양이다.
 

   
▲ 조선시대 교리 양재팔을 기리는 화산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금색 글자 비석. 양재팔은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양정모의 증조부이다.
나밭사거리 왼쪽의 생림대로259번길로 들어선다. 제법 울창한 산길을 내려가면 몇몇 공장들 사이에 예전의 마을모습이 남아있는 상나전마을이다. 마을 주위에는 개간한 밭들이 적지 않게 널려 있어 나열할 나(羅)에 밭 전(田)에서 유래를 찾고 싶은 억측이 간절해진다. 마을회관 바로 아래엔 지금의 서기관 급인 교리(校理) 양재팔(梁在八)을 기리는 회산재(晦山齋)가 있었는데 지금은 금색 글자의 비석만 남아 있다. 김해부사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인으로 고종29년(1892) 별시에 급제했고, <김해지리지>는 정5품의 교리를 전하고 있으나, 비문에는 종5품의 현감과 찰방(역장)을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76년의 몬트리올올림픽에서 광복 후 첫 금메달리스트의 위업을 세웠던 부산 출신 양정모(레슬링) 선수의 증조부이기도 하다. 1953년에 세워진 비문은 52년간 교유했던 소눌 노상직 선생이 썼다.
 
비탈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경남애니메이션고등학교가 있다. 옛 나전초등학교(1963.3~1999.3) 자리에 2001년 3월에 개교한 '애니고'는 애니메이션를 비롯한 영상산업의 인재를 기르는 디자인전문고등학교다. 김재호 교장 이하 28명의 교직원의 지도로 334명의 학생들이 전문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다. 흰색 바탕 학교 건물에 알록달록하게 만화풍으로 그린 것이 특별하기는 하지만, 맨 땅 운동장과 잘 조화되는 느낌은 없다. 일본 토쿄의 타마예술대학, 교토조형예술대학 등과의 결연을 통해 교류와 진학을 모색하고 있는데, 전국의 실기대회와 공모전에 다수 입상하여 전국기능경기대회의 디자인부분에서는 10년 연속 경남의 대표선수를 배출하고 있다. 학교 아랫쪽엔 1939년 창건의 기봉산 약수암(藥水菴, 주지 의정)이 있다. <김해지리지>에 따르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라 새긴 염불암(念佛岩), 학사대(學士臺) 각석의 넙적바위가 있는 불선곡(佛仙谷), 백사(白寺) 절터가 있는 백절골(白寺谷)처럼 불교 관련 지명이 적지 않다. 관세음보살의 생명수가 약수로 솟구친 모양이다.
 
생림대로 밑을 통해 나전농공단지로 들어선다. 1995년 6월에 입주를 시작한 금속·전기·자동차부품의 20여 업체가 폭염에도 씩씩하게 돌아간다. 맞은편의 안산(252m) 자락에는 송정마을이 있다. 길가의 마을회관 뒤로 예전 모습의 40여 가구가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소나무(松) 정자(亭)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나전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나전교(1988.12)가 있는 나전삼거리다. 길 왼쪽에는 나전교회(1975.5. 담임목사 임동훈)와 김해참숫가마찜질방이 있고, 옛 나전교 건너 산속에는 김해예비군훈련장이 있다. 여기부터 길은 상동로로 바뀌는데 언덕이 시작되는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마당같이 넓은 마당재를 넘으면 상동면이 되고, 남쪽의 인제로를 따라 내려가면 안금마을이 된다. 편안할 안(安), 거문고 금(琴)의 거문고 같은 편안한 동네라는데 나전일반산단 조성으로 산 전체가 허물어져 내리고 있다. 어방동으로 넘어가는 '영운고개'까지 생림정신요양원(1985.12, 원장 김을태), 김해미협 회장을 지낸 김영성 작가의 상동요, 롯데야구단훈련장이 있고, 위쪽의 윗안금마을에는 유치원을 개조한 실버캐슬요양병원(원장 김대진), 첨성대찜질방, 자동차극장, 음식점과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동쪽으로 상동면 묵방리로 넘어가는 '도적고개'가 있다.
 
발길을 되돌려 나전농공단지 북쪽 끝에 있는 하(下)나전마을로 간다. 마을회관 지붕 위로 보이는 작은 봉우리 하나가 시뻘겋게 깨져 나가고 있다. 2009년 1~3월에 발굴되었던 나전리유적이다. 산 정상부에 원형의 토축을 돌려 옴폭 패인 접시 같은 공간에서 그을려져 폐기된 가야토기와 철마(鐵馬)처럼 제사행위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소형 산성인 보루(堡壘)나 하늘에 기원하던 제사장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가야왕궁에서 낙동강 방면으로 왕래하는 길목을 통제하고 통신도 유지하던 최초 발견의 유일한 관방유적이 될 수도 있었고, 가락국의 중요 제사유적이 될 수도 있었던 곳이었는데도 원래 계획대로 토취장 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양이다. "아차!"하는 사이에 모두 깎아 치우고 말았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중요한 유적이 될 수도 있었는데, 이런 파괴를 허용하면서도 등재추진단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 토취장 허가과정에서 시의회의장의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정작 유적은 보존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부끄럽고 처참한 마음 그대로 사촌천을 건너 사촌리로 간다. 사기점(沙器店)이 있어 사기마을의 사촌(沙村)이 되었는지, 개천에 모래가 많아 모래마을의 사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어산 영운고개에서 발원해 마을을 지나는 내가 사촌천이다. 사촌천 동쪽의 시루봉(233m) 자락에는 상사촌과 하사촌이 있다. 지대가 높은 나전 쪽이 상사촌이고, 낮은 봉림 쪽이 하사촌이다. 상사촌 위쪽으로는 상동면 여차리로 넘어가는 여차로의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하사촌에 있다는 노씨열녀비는 찾지 못하였다. 하사촌삼거리 앞에 펼쳐진 세정들(洗井坪)을 지나 봉림리로 간다. 여기서 사촌천은 서쪽으로 거의 90도를 꺾어 생림리를 거쳐 한림면으로 흘러나가는데, 사촌천이 싸고 도는 동네가 봉림리 남단의 학산마을이다. 뒷산이 학처럼 생겼거나 학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란다. 학산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 '생림동천'의 표지석에서 사촌천을 건너면 학산마을이다. 공장에 포위된 아담한 30여 가구의 전원마을과 생림선교성당이 있다. 110여 년 전부터 미사를 시작한 봉림성당이 1980년 초축을 거쳐 2004년 9월에 지금의 성당을 세우면서 생림성당으로 개칭했다. 개축이 한창인 학산교(1999.1) 앞에서 제방길을 따라 가다 학산2교(2010.10)를 건너 장재로에 나선다.
 
   
▲ 한성부 판윤을 지낸 구천 윤종을 기리는 구천재.
경동천과 나란히 가는 장재로를 따라 한림면과 경계인 생림리 분절마을까지 갔다가 발길을 되돌린다. 경동마을과 하봉마을을 지나는데 '하봉들'이 마을 앞에 드넓게 펼쳐져 있다. 조선 선조때 한성부 판윤을 지낸 구천(龜川) 윤종(尹鍾)이 합천에서 이주해 와 스스로 경작했다 하여 스스로 자(自), 논밭 갈 경(耕), 동네 동(洞)의 '자경동'이라 했다. '자'가 탈락한 경동마을에는 윤종을 기리는 구천재가 있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 대안학교 신영중고등학교(이사장 박인근 장로, 교장 김태중 목사)가 있다. 일반학교에서 적응이 어려웠던 학생들이 함께 기숙하며 수업 외에도 미용, 자동차정비, 제빵 등의 기술습득에 열중하고 전교생이 함께 하는 태권도를 통해 체력단련과 공동체의 적응력을 키워가고 있다. 학생들이 만드는 빵은 일반 고객들에게도 인기가 좋은 편이란다.
 
봉림리의 아랫쪽이라 하봉림이 되었고, 하봉림은 다시 하봉이 되었다. 하봉들을 가로질러 하봉교(1998.5)를 건너면 생림리고분으로 불리는 1기의 고총고분이 있다. 지름 10m, 높이 2.5m의 대형 봉토분으로 조사된 적은 없지만 입지와 봉분의 규모가 구산동고분군이나 장유의 전 유하리왕릉과 닮아있다. 늦은 시기의 가야고분이나 신라지방관의 횡혈식 석실분 같은 느낌이다. 사슴 키우는 녹용건강원 안에 있는 비등록문화재다. 누군가의 정성스런 벌초가 고맙지만, 바로 앞에선 2013년 완공 예정의 한림~생림간 도로개설공사가 한창이라 시급한 문화재지정과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다시 장재로에서 '돌담밖모롱(퉁)이'를 지나 봉림로21번길로 봉림마을에 들어선다. 1928년에 생림리에 있던 면사무소가 이전해 온 뒤 생림면의 중심마을이 되어 본봉림으로도 불리며, 조선후기에 금곡역이 옮겨왔기 때문에 역촌(驛村)으로도 불렸다. 마을회관에서 생림파출소 앞 봉림로에 나서기까지 낡은 집과 상가들이 뒤섞인 좁은 길 양쪽에 170여 가구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마침 삼일운동 때 세워진 전통의 생림성결교회(1919.3. 담임목사 이병기)에서 주일 예배가 시작될 모양이다.
 
   
▲ 생림 메인스트리트와 냇돌 벽으로 된 옛 농협창고. 없애기보다는 예술갤러리로 활용하는 건 어떨까.
2010년 2월에 승격 개소한 생림파출소는 과거의 지서에서 치안센터(2003.7)를 거쳐 인력과 건물을 확충했다. 조유복 소장 이하 8명의 경찰관이 상주하며 면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보통 시내에서 오다 보면 봉림로와 장재로가 만나는 봉림삼거리에서 비로소 생림이라 느끼는 법이다. 파출소와 농협, '생림'을 붙인 상가들과 면사무소로 이어지는 생림의 '메인스트리트(주 도로)'라 그렇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냇돌(바닷가, 강, 하천 등에 있는 매끈한 돌)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창고 같은 옛 농협건물에서 생림면을 인지한다. 삼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라 그런지, 타지 사람의 터무니없는 인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근대문화유산 같은 느낌이 있다. 부디 없애지 말고 생림을 소개하는 관광안내소나 쉼터, 또는 생림 유일의 예술갤러리로 다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인스트리트' 끝 부분에 있는 면사무소에선 조준현 면장 이하 14명의 직원들이 2천226세대, 4천615명(남 2천391명)의 주민을 돌보고 있다. 생림대로의 개통으로 지역경제 발전의 기대도 크지만 인구감소의 추세는 여전하다. 무척산 중심의 '생철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이 마을별로 추진되고, 2008년 6월부터 면민과 함께 하는 '숨은 명소 찾기 운동'은 '무척산 연리지 부부소나무, 무척산 흔들바위, 작약산 풍혈'의 발견으로 뉴스도 타고 새로운 관광자원도 확보하게 되었다. 첫머리에선 '생림동천'이라 침을 튀겨 놓고, 막상 그럴듯한 풍광은 소개하지 못하였다. 다음번엔 무척산과 '도빙기들', 그리고 낙동강에 걸쳐진 다리들과 강변풍경이 아름다운 생림을 즐겨보리라 다짐한다.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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