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어느날, 저는 모교인 인제대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 건물 외벽에 인제대 교수평의회에서 쓴 대자보가 붙어 있었습니다. 졸업최소이수학점 감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교의 일이기도 해서, 상황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역 언론사들 중 처음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 공론화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다시 인제대학교를 찾았던 지난 14일, 단식 이틀째에 접어든 교수평의회 의장 고영남(법학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아직은 괜찮다며 슬쩍 웃어 보이던 고 교수님은 결국 3일 뒤, 덥수룩한 수염에 홀쭉해진 모습을 한 채 학생들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꼭 지켜내고 싶었는데…." 학과 제자들도 그런 교수님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저는 대학시절 내내 교수님들이 시위를 하고, 단식을 하고, 머리를 깎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상황이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졸업최소이수학점 감축안이 추진된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이 사안은 어느 누구의 독단적인 생각만으로 진행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최소이수학점을 축소하는 일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당장 이번 학기부터 학생들의 성적표가 바뀌고, 수업이 줄어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구성원들 간의 치열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 누구의 일도 아닌, 바로 나의 일인데도.
 
이번 사태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나서지 않으면 이 사태는 끝나지 않는다." 대학의 핵심적인 존재는 교수도 대학 측도 아닌 바로 학생들이라는 얘깁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며칠을 굶은 교수님, '나는 머리를 깎은 채 수업에 들어가겠다'는 교수님,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다는 교수님…. 이 분들이 보여준 단호함의 출발점은 바로 학생들, 제자들이었습니다.
 
▲ 인제대 교수들이 학교 측이 추진하는 졸업최소이수학점 감축안에 반대해 삭발하고 있다.

저는 인제대 학생들이 온몸을 던지는 투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권리를 조목조목 따져 물을 수 있는 용기, 이건 아니다 싶은 일에 대해서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부당한 현실과는 타협을 하지 않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교무회의에서 감축안이 통과된 직후, 본관 1층 로비에서 고영남 교수님은 주위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학은 스쳐지나가는 학원이 아니다. 여러분들의 꿈과 추억이 있는 곳,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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