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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철쭉군락 온산지천 그 '너른 산'에 안겨 한여름 신선놀음을 꿈꾸다(25) 진례면 비음산(飛音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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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2.08.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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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비음산 정상. 해발 510m. 진례면과 창원시 토월동의 경계이며 경남지역의 대표적인 철쭉 명산이다. 정상석은 진례 방향으로 서 있고 맞은 편에 정자가 서 있다. 사진/ 이원일 leewy201@korea.kr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온갖 풀벌레, 새소리가 정겹게 소란스러운 곳. 형형색색의 들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도란도란 계곡 물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는 곳. 그러면서도 호젓하고 여유롭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산을 타다보면 가끔씩 멋진 임도를 만날 때가 있다. 생림면 석룡산 임도가 그렇고, 대암산과 비음산 기슭의 임도도 그 중 하나다.

이번 산행은 임도와 능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비음산(飛音山) 산행이다. 진례면 평지마을 백숙촌을 들머리로 하여 임도, 남산재 방향 산길, 남산재, 청라봉, 비음산 정상, 진례산성 동문지, 임도, 평지백숙촌 방향
산길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 비음산 임도 삼거리의 이정표.
휴일이라 그런지 평지마을은 백숙을 먹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차를 하고 임도로 향한다. 산에 오르는 이가 드물어 임도에 들자마자 호젓하다. 뒷덜미로 땀이 촉촉히 배는데도, 구불구불 휘돌아드는 임도는 정겹고 상쾌하다.
 
길옆으로 오리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기도 하고, 오동나무 큰 이파리가 부채처럼 잠깐씩 펄럭이기도 한다. 그 밑으로 딸기덤불과 싸리꽃대가 빽빽하다. 임도 계곡을 왔다 갔다 하며 물소리도 듣고, 하늘의 구름 흐르는 것도 보며 가는 길이다.
 
한참을 가다보니 숲 속 중간쯤 녹색기둥 하나가 불쑥 솟아있다. 주체할 수 없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욕망의 기둥. 하나의 바벨탑 같은 거대한 기둥이다. 30여m는 족히 될 것 같은 미루나무에 칡덩굴이 감고 올라 푸른 탑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둥 끝으로 미루나무 이파리 몇 개 하늘을 향해 파르르 손바닥을 흔들어댄다.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불충스레 하늘에 대고 시위하는 모습인데도 당당하기만 하다.
 
푸른 기둥에서 시선을 거두고 길을 더 가자니, 이번에는 가로 3m, 세로 5m쯤 되는 반석돌이 길옆에 누워 있다. 어느 석공이 정밀하고 반듯하게 깎아놓은 것처럼 평평하고 매끄럽다. 하산 길에 만났으면 도끼자루 썩을 때까지 신선놀음이나 해볼 것을….
 
짙은 칡꽃 향기가 임도 따라 계속 따르고, 계곡과 접한 곳으로는 너덜이 산으로 오르고 있다. 돌 하나가 만어산 만어석 만큼이나 큼지막하다.
 
휘적휘적 걷다보니 임도 옆으로 산길이 나 있다. 남산재로 오르는 길과 평지백숙촌으로 내리는 길이다. 임도를 버리고 남산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운지버섯의 금빛 구름이 고사목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꼬불거리는 산길 따라 온갖 야생화들도 다투어 피어 있다. 모시풀, 범꼬리, 도둑놈의 갈고리…. 깨알만한 꽃들이 자잘하게 피어 여름의 절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남산재에 도착한다. 남산재는 진례 사람들이 창원으로 갈 때 즐겨 넘나들던 통행로였다. 그래서인지 창원에서 넘어온 등산객과 진례에서 넘어온 등산객들이 이곳 남산재에서 만나 잠시 쉬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품이 크고 넓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아래로 바람이 모여 시원하다.
 
다시 길을 오른다. 잠시 급경사를 오르자 헬기장이 보인다. 지천으로 개망초꽃, 달개비꽃이 흐드러졌다. 비음산 암릉지대가 시작되고 군데군데 전망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암산 능선이 굽이굽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지고, 황새봉의 기다란 능선도 보인다.
 
   
▲ 청라봉 밑 암벽에 붙어 있는 부처손.
곧이어 큰 너럭바위에 서자 오랜만에 시야가 거칠 것 없이 탁 트인다. 눈앞으로 창원시가지가 활짝 펼쳐진다. 철의 벌판, 창원이 대암산과 비음산의 두 활개 속에 안겨 계획도시의 웅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곧 청라봉 암벽 밑에 선다. 소나무 한 그루 절벽 바로 앞에 위태롭게 서 있다. 절벽으로 부는 바람에 수십 개의 가지를 뻗어 올렸다. 한 마리 봉황이 나래를 편 모습이다. 그리하여 창원시 쪽으로 날개를 펴고 막 날아 오를 듯하다. 그곳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힌다. 등 뒤의 암벽에는 부처손이 바위에 붙어 경을 읊고 있다. 마치 부처의 손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졌는데, 척박한 바위에 가부좌 틀듯 앉아 있는 품이 영락없는 부처마음에 다름 아니다. 사람의 마음 길 따라 부처의 손 모양(手印)도 달라진다고 했던가? 아무리 봐도 저 부처손의 수인은, 중생의 미혹한 눈으로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잠시 빗물이 듣는다. 마른하늘에 이 무슨 조화 속이란 말인가? 수첩 위로 빗물이 떨어져 잉크가 번진다. 글자들이 지워진다. 남아야 할 글자들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진다. '함부로 붓을 놀리지 말라'는 게송을 내리는 것 같다.
 
   
▲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웅비하는 소나무.
계단을 올라 전망바위에 오른다. 바위 밑에서 치솟아 오른 비상 소나무가 절벽 앞에 버티고 섰다. 들머리의 평지저수지 푸른 물이 보이고, 대암산 능선의 대암산, 신정봉, 용지봉이 일렬로 낙남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가고 있다. 비가 제법 굵게 내리다 그친다.
 
청라봉에 서자 비음산 평탄한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큰 바위도 보이고, 멀리 정산의 정자도 보인다. 바위를 타고 잠시 길을 내린다. 진례산성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진례산성터의 위치가 창원시 토월동으로 되어 있다. 김해 진례면에는 진례산성이 없다는 말이다.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안내표지 아래로 무덤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다.
 
   
▲ 진례산성 터.
진례산성은 창원분지와 김해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가야시대때 축성한 석축식 산성이다. 능선을 두르고 골짜기를 안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성으로,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군사요새로 천혜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성의 둘레는 약 4㎞로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었으나, 동벽의 일부 구간은 높이 1~2m, 너비 1m 정도로 남아 있다. <여지집성(與地集成)>이란 문헌에 의하면, '수로왕 때 한 왕자를 진례산성의 왕으로 봉하고 성을 지키게 했는데, 그 때 천문을 관측하는 첨성대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금 내려가니 스러져 가는 진례산성 터가 보인다. 2m 정도 너비로 진례면을 향하여 뻗어있다. 산성 돌더미 옆으로는 졸참나무 군락이 한창 도토리를 맺고 있다. 그 앞으로 진례면 고모리와 황새봉 능선이 보인다.
 
오르내리는 길 양 옆으로 철쭉군락이 머리 높이 위로 훌쩍 자라고 있다. 5월이면 붉디붉은 철쭉꽃 터널을 이루겠다. 곧이어 비음산 정상과 진례산성 동문지 방향의 이정표가 나온다. 비음산 정상으로 방향을 잡는다.
 
잠시 걷자니 길섶으로 언뜻 더덕향이 알싸하게 끼친다. 더덕덩굴이 여기저기 싸리나무를 감고 있다. 여름 땡볕에 산더덕이 싱그럽게 잘도 크고 있는 모양이다. 곧이어 쉼터가 나오고 벤치 하나, 스러진 성 터 앞에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내내 이곳에 머물고 있다.
 
계속되는 완만한 능선을 기분 좋게 오르내린다. 자귀나무, 굴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철쭉나무들이 그 아래서 무리지어 도란거린다.
 
곧이어 비음산 정상에 도착한다. 비음산(飛音山·510m). 김해시 진례면과 창원시 토월동의 경계로 '너른 산'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봄이면 정상 부근에 방대한 철쭉꽃 군락으로 둘러싸이는 경남지역 대표적 철쭉 명산. 정상은 널찍한 광장을 형성하고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5월의 비음산철쭉제를 보기 위해 모여든다.
 
   
▲ 비음산 들머리 평지저수지와 평지마을.
정상석이 진례 방향으로 서 있고, 그 맞은편으로는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정자 쪽 전망대에서 보면, 창원 시가지가 호쾌하게 시야를 확보한다. 그 뒤로 장복산에서 웅산으로 넘어가는 능선이 어슴푸레 보인다. 전망대 오른쪽으로 전위봉, 날개봉, 수리봉의 암릉능선이 정병산으로 향하고 있고, 왼쪽으로는 길을 올랐던 청라봉, 남산재로 하여 대암산, 신정봉의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길게 이어진다.
 
햇볕이 여전히 뜨거운 한낮, 얼음생수로 목을 축인다. 얼굴과 목덜미로 차가운 바람 한 점 스치고 지나간다. 머리가 맑아온다. 중생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것이 득도고 깨달음이겠다. 한참을 수행하듯 비음산 꼭대기에서 앉아 있다 길을 나선다.
 
다시 왔던 곳으로 길을 내린다. 꽃 없는 꽃길을 걸으려니 온갖 나비가 따라 붙고, 나비길 따라 무심한 발걸음도 가볍게 팔랑거린다. 삼거리 이정표에서 왔던 길을 버리고 진례산성 동문지로 길을 내린다. 나무데크로 만든 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이 아주 깊다. 곧이어 전망대가 나오고 그 앞으로 벌거숭이 동산이 동그마니 자리 잡고 있다.
 
계속 길을 내리자, 길 따라 산성흔적이 계속 따르고, 곧이어 진례산성 동문지에 도착한다. 용추계곡과 정병산 갈림길이기도 한 동문지에서, 가야의 성문 흔적을 찾아본다. 수풀 사이를 헤집고 들어서니 큰 돌들이 양쪽으로 들어서 있고, 그 사이로 출입구가 확연하다. 가장 뚜렷하게 성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곳이 동문이다.
 
   
▲ 전망대에서 본 창원시가지. 진례의 풍경과는 달리 빼곡히 들어찬 아파트 숲이 대도시임을 방증한다.
동문 터를 넘어 산을 내린다. 서늘한 바람이 촉촉하다. 묵은 오솔길로 접어든다. 길이 좁고 쏟아질 듯하다. 마사와 자갈이 섞여 번번이 미끄러지는 길을 조심스레 내린다. 숲은 짙을대로 짙어 길이 어둑하다. 곧이어 큰 적송 한 그루, 잔디로 잘 조성된 유택 위에 자리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평지저수지의 물이 하늘을 담고 드푸르다. 참 한가롭고 적요한 시간이다.
 
조금 더 길을 내리니 임도. 다시 호젓한 임도가 시작된다. 평지마을 쪽으로 길을 잡는다. 친구 삼듯 까마귀 소리가 귀에 익을 즈음, 꿩 우는 소리와 매미소리, 계곡 물소리가 앞 다투어 노래를 부른다. 노랑나비, 하얀 나비, 푸른 부전나비, 호랑나비…. 온갖 나비까지 나풀거리니, 자연의 모든 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꽃을 피우고 노래를 하며 생명의 합창을 하는 것이다.
 
관음사의 강아지마저도 낮잠 수행을 하는 늦여름 오후. 대웅전 앞 봉숭아꽃이 붉다. 여름날 그 붉은 순정이 누구에게 향하는지 몰라도, 그 붉게 고운 입술이 환하다. 목탁소리만 귓가로 울리고, 나그네는 그 목탁소리 속으로 깊이깊이 걸어들어 가고 있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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