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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어"⑥ 부산육상경기연맹 부회장 홍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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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1.01.18 16:32
  • 호수 8
  • 17면
  • 윤현주 편집국장(hohoy@gimhaenews.co.kr)

   
 
기자가 홍상표(67) 부산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을 처음 만난 것이 1991년의 일이니, 벌써 만 20년이 됐다. 당시만 해도 건장하던 '체육인' 홍상표의 얼굴에도 주름이 많이 져 세월의 흐름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늘 책을 들고 산다는 것이다. 지난주 인터뷰를 하기 위해 <김해뉴스> 사무실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올 때도 예의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 속에 무슨 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꺼낸 책은 지그 지글란의 <자기를 움직이는 힘>이었다. 놀랍게도 일본어 원서였다.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시절, 홍 부회장은 각종 체육행사 때마다 맛깔스런 인사말을 하기로 유명했다. 적재적소의 문장이나 경구를 꺼집어 내 좌중을 휘어잡는 언어구사 능력이 탁월했다. 그 힘은 책에서 나온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역사이다. 전국체육대회에서 13년 연속 우승, 한국신기록 17회 경신, 아시안게임 2회 연속 동메달, 서울 국제육상경기대회 우승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체육행정가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38세에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 자리에 오른 후 13년 동안이나 중임했다.

홍 부회장은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물을 때가 많습니다." 왜 행복하느냐 물었더니 "이 나이에 아내의 시장 바구니가 큼직막해서(아침상이 푸짐하다는 뜻) 그렇고, 아이들 잘 자라줘서 그렇고, 어린 선수들 지도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큰 아들은 정신과 전문의이고, 작은 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전투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으니, 아들 자랑할 만도 하겠다 싶었다.
 

- 요즘 근황은 어떻습니까.
 
▶ 아직도 청춘입니다. 월~토요일까지 매일 구덕운동장으로 달려갑니다. 중·고등학교 장대높이뛰기 선수 7명을 지도하고 있어요. 부산은 장대높이뛰기의 본고장 아닙니까. 아직도 지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고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지금껏 사회로부터 과분하게 받은 혜택들을 되돌려주는 셈입니다. 보수요? 당연히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받는 것만 월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내가 좋은 일 하면 대신 후손들이 복을 받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일요일엔 집에서 책을 보거나 등산을 하며 건강을 챙깁니다. 요샌 성경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 김해에 대한 추억을 말씀해주시죠.
 
▶ 예, 김해는 영원한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 내가 태어난 곳이 '강창(江倉)'(현 서부동)이라는 곳입니다. 글자 그대로 물이 넘치는 지역입니다. 여름 밤에 홍수가 지면 동네에서 징을 치면서 대피하라고 야단이었죠. 홍수가 나고 나면 전답이 온통 뻘밭으로 변합니다. 그곳에서 대나무 장대를 잡고 개울을 건너 뛰어 다닌 게 장대높이뛰기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해중학교 때부터 장대를 잡았는데, 김해농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가난해 운동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장대만 열심히 넘으면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 운동하면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 두 번의 역경이 있었습니다. 1965년 광주 전국체전을 앞두고 빚을 내서 8만원 짜리의 섬유 재질 장대를 어렵게 구입했습니다. 당시 제 직장(부산위생)의 월급이 4천원이었으니까, 얼마나 비싼 건지 짐작이 될 겁니다. 그런데 연습 도중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몸무게에 비해 너무 약한 것을 구입한 겁니다. 눈앞이 캄캄했어요. 할 수 없이 대나무 장대를 구해 출전했는데, 놀랍게도 한국신기록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이를 지켜본 당시 민관식 대한체육회장님께서 섬유 장대 20개나 사주셨습니다. 이것으로 평생 사용했지요.
 
또 하나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앞두고 부상한 일입니다. 한국신기록만 내면 본선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연습 도중 부상하는 바람에 무산됐습니다. 대신 여고에 교생실습을 나가 배필을 만난 겁니다. 당시 2학년이던 아내를 눈여겨 본 뒤 나중에 프로포즈 했습니다 (웃음).
 
이처럼 역경은 순경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역경의 크기만큼 순경을 숨겨놓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역경을 겪으면서, 어떤 일을 만나도 크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 배짱을 가지게 됐습니다.
 
-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 평범하지만 가화만사성을 푯대로 삼고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젊어서 제가 부족했던 점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지금 과분하게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가정 덕분입니다.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남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 <김해뉴스>에 한 말씀 부탁합니다.
 
▶ <김해뉴스> 창간호부터 줄곧 집에서 구독하고 있습니다. 고향 소식이라 기다려집니다.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로 웅비하고 있는 김해이지만 지금까지 신문다운 신문이 없었습니다. <김해뉴스>는 수준 높은 교양지로서 자리매김하길 바랍니다. 김해가 국제·문화도시로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김해뉴스>가 선봉장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홍상표 부회장은 ─────
한국 장대높이뛰기의 전설적인 존재이다. 1944년 김해읍 강동에서 태어나 김해 동광초등학교, 김해중학교, 김해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위생(주)에 입사했다. 이후 경희대 체육학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에 유학했다. 1963년부터 전국체전 13년 연속 제패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1965년 전국체전서 3m86을 넘어 처음으로 한국신기록을 깬 후 1971년 4m72를 기록할 때까지 17차례나 한국기록을 수립했다. 1966년과 1970년 제 5, 6회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연속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홍 부회장은 현역 은퇴 후인 1983년부터 1996년까지 부산시체육회 사무처장을 13년간 역임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경기본부장과 육상경기 운영본부장을 맡아 대회를 무난히 치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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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秋實 2013-08-14 08:39:02

    본인은 강원관찰사공 김해문중(우헌공) 종손계 淵자 항렬이니, 행렬로 치면 선배이시고 항렬로 치면 방계 6대조가 됩니다 그려. 의표는 용기만 부리다가 먼저 가니 안타까웠습니다. 님이라도 있어 洪姓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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