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모습 간직한 집과 돌담길 고즈넉
56가구 100여명 이웃사촌 오순도순
마을 앞쪽으로 도로가 잘 닦여 있다. 공장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차량 통행량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즈넉하다. 생림면 생림리 하봉마을. 생림리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마을이다.
마을 초입에서 한림 방향으로 쭉 내려가다 보면 잘 정돈된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오른편으로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데,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과 돌담길이 정겹다. 마을 뒷산은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신비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하봉마을에는 현재 56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하봉이란 이름은 봉림에서 유래됐다. 봉림의 서편 아랫쪽에 위치해 있어서 하봉이라 했다. 1920년대까지는 면소재지였다. 하봉마을 천신봉(53) 이장은 "비만 오면 사촌천이 범람했는데, 그럴 때면 맞은편 산아래에 살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건너오기가 힘들어지자 아예 이주를 해왔고, 그렇게 해서 현재의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맞은편의 산을 마을 주민들은 '대뿌산' 또는 '대포산'이라 부른다. 한때는 광산이었다고 한다.
망자 화장 뒤 흰 종이에 싸서 땅에 묻고
지위고하 불문 자갈 터에 비석 세워
이 마을은 영양 천씨 집성촌으로, 독특한 장례문화를 엿볼 수 있다. 선조들의 묘나 납골당을 만들지 않고, 화장한 뒤 흰 종이에 싸서 바로 땅 속에 묻고 있다. 이는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망자가 나오면 자갈로 잘 다져놓은 터에 작은 비석을 세우는데, 비가 차지하는 공간은 3.3㎡가 채 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차등을 두지도 않는다. 사망 순서대로 같은 크기의 비를 세우고 있다.
여름의 끝자락, 마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재로를 따라 하봉들판이 온통 새파랗게 물결친다. 옛날에는 강이 흘렀던 곳으로 나룻배도 지나다녔다고 한다. 하봉들판의 비닐하우스에서는 딸기가 자라고 있다. 하봉마을은 입술딸기와 산딸기 등 딸기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곳곳에 축산 농가들도 자리하고 있다.
하봉마을에는 마을우물이 둘 있었다. 하나는 통샘, 하나는 들샘이었다. 통샘은 물이 통바가지로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들샘은 들 가운데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통샘의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법이 없었고, 들샘은 빨래터가 있던 곳으로 여인네들이 모여 수다를 떨던 곳이자, 여름밤 마을주민들이 목욕이나 등목을 하던 곳이었다. 마을의 우물들은 농지정리 과정에서 사라졌고, 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하봉마을의 끝 부분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산에서는 지금도 가락국~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들이 나오고 있다. 또 늙고 쇠약한 어르신들을 구덩이 속에 산 채로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 장사를 지냈다는 고려장 터가 남아 있고, 6·25 전쟁 때 보도연맹(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사상 단체)원들을 학살한 곳이 남아 있다.
분재 형태 300년 수령 소나무에 당산제
마을에는 300년 정도 된 소나무가 있다. 이 소나무는 당산나무이다. 당산제를 여기에서 지낸다. 마을 안쪽으로 진입한 뒤 골목골목을 한참 지나서야 만날 수 있는 이 소나무는 가지가 옆으로 뻗어있는 분재 형태이다. 천 이장은 "전국에서도 사례를 잘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소나무"라며 "보존 가치가 높은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당산제는 정월 대보름날 지낸다.
마을입구에는 낡은 마을회관이 있다. 새로 지을 예정이다. 마을회관에서 100m 정도 내려가면 마을 복지회관이 있다. 5~6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김해의 복지회관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황토방과 각종 운동기구들이 구비돼 있어 마을의 어르신들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