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사주겠다고 아이 꾀어' '열쇠공 불러 문 따고 들어가' '길 가던 여성 흉기로' '알고 보니 이웃사촌' '여고생… 시골마을이 발칵'…. 신문기사의 중간제목들이다. 문을 열고 나서기가 무섭고, 해 떨어진 길을 혼자서 걷는다는 건 오싹하다.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조심해라." "밤엔 위험하니 일찍 들어와라." "과도한 호의는 경계해라."….
 
고작 할 수 있는 말들이란 게 이런 것들이다. 사실 이러한 당부는 무의미하다. 자율학습, 학원수업 등을 마치면 늦은 밤이고, 세상과 담 쌓듯 모든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날로 가팔라져만 가는 비명 같은 삶의 속도, 한 치의 여유도 없는 팍팍한 삶,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는 사회 등등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읽으며 오늘날의 사회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이 책에는 '느림'과 '여유'가 가져다주는 감성과 정신의 풍부함이 있다.
 
정민 선생님은 책머리에서 딸 벼리에게 "한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다 보면 한자 실력도 많이 늘어 날거야.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과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게다. 말을 조금만 하고도 웅변보다 더 큰 울림을 남길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거야. 나무에만 무늬가 있지 않고 우리들 마음속에도 무늬가 있단다. 시 속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이 녹아들어 있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 한다.
 
"우리가 지나간 옛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반짝이는 보석을 간직하기 위해서란다. 컴퓨터를 잘하고 게임을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속에 지혜의 샘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단다."
 
한시는 읽기도 이해하기도 참 어렵지만, 정민 선생님이 풀어 쓴 한시 이야기는 읽기도 이해하기도 쉽다. 정민 선생님의 친절한 해설과 독특한 상상력이 열아홉 단락의 이야기를 단숨에 읽게 만든다.
 
책은 시 속에 숨어있는 보물을 하나씩 찾아내 보여주고 있다. 빨리 보면 알 수 없는 것들과 느림과 여유를 가져야만 보이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열아홉 단락을 통해 43편의 한시를 소개하고 해설을 더했다. 천천히 한시들을 읽다보면, 새로운 어떤 것들을 계속해서 발견할 수 있음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우리의 생활이 날이 갈수록 자연의 소리와 멀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깊은 밤중에만 들려오는 우주가 돌아가는 소리, 내 마음에 새싹이 터 오는 소리, 낙엽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창을 깨끗이 닦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들과 해반천 둑을 천천히 걸어봐야겠다. 들꽃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코스모스 꽃잎이 몇 개인지도 세어 보면서, 느림과 여유로 충만한 풍성한 가을을 만들어가야겠다.


Who  >> 이선옥 씨는
1970년 부산 출신. 김해한옥체험관에서 체험문화행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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