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에 팽팽하게 매달린 비단의 아래 위로 수실을 꿴 바늘이 오갈 때마다 목단이 조금씩 피어났다.
고고한 학이, 연록색 풀잎이, 고운 무지개가 수놓인 붉은 비단, 화려하고도 아름다웠다.
자수장인 서도미(70). 그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장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 조선왕실대례복 문양에 수를 놓고 있는 서도미 장인.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구산동 김해건설공고 앞 횡단보도를 건너, 자그마한 식당 옆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가다 보면 대성동 90의 5에 '한국전통자수공예연구실'이 있다. 서도미의 작업공간이자 생활공간이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자수 작품들이 보였다. 골무, 댕기, 노리개, 화각함, 문갑…크고 작은 작품들이 집안 곳곳에 그득했다. 거실에는 한창 작업 중이었던 듯 커다란 수틀이 놓여 있었다. 갖가지 비단 수실이 보였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수틀에 팽팽하게 펼쳐진 비단
한 땀 한 땀 형형색색의 수실로
행운과 장수 수놓은 지 42년째

어머니에게서 익힌 바느질 솜씨
2010년엔 경남 최고 장인에 선정
"작품 만들 때마다 물건 주인에게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면서 만들죠"


서도미는 평생 전통공예자수를 해온 수자수기능사로, 2010년 경남 최고의 장인으로 선정됐다. 1941년 부산 출생이지만 김해로 온 지가 38년 째이고, 김해에서 자식들을 성가시켰으니 김해는 고향이나 다름없다.
 
"친정 어머님이 매우 부지런한 성품이었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 옆에 앉아 바느질을 배웠어요. 동생들은 힘들다며 달아나기 바빴는데, 왜 그랬는지 난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바느질을 했어요."
 
부산 동래여고를 나온 서도미는, 학창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바느질을 했다. 골무도 만들고, 버선도 기우면서 바느질의 기본을 익혔다. 자수장인 서도미의 시작은 어머니 곁에서 익힌 바느질에서부터였다.
 
"아예 처음부터 전통자수를 시작했어요. 둘째 아들을 낳고 난 후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해서 시작했는데, 올해로 42년째네요."
 
▲ 장수복록을 기원하는 십장생을 수놓은 문갑.
자수의 역사는 인류의 의복사와 맥을 같이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은 의복에 실과 바늘로 무늬를 장식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문양이 다채롭게 발달했다. 이 문양이 신분이나 계급의 상징이 됨에 따라 자수는 의복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또한 자수는 여성들이 미의식과 정서를 담아내는 마음의 그릇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전통자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어요. 전통자수가 놓인 한복이나 장신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죠. 제가 놓은 자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만들고, 또 만들고 하다보니 몇 십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어요."
 
1973년에는 고 육영수 여사가 '정수직업훈련원'을 설립하면서 여성의 직업 창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전통자수 계발을 위해 자수과를 개설했다. 이때 수자수와 기계자수의 직업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고, 전통자수가 유행했다. 1980년대에는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자수한복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 시기에 서도미의 손길은 무척 바빴다. 수 놓는 일을 밤이 이슥토록 멈출 수가 없었다. 밤늦게 불을 켜놓고 수를 놓는 어머니 덕분에, 자녀들도 덩달아 밤늦게까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했다. 수놓는 어머니와 함께 밤새워 공부를 했던 자식들은 어느새 결혼을 했고 다시 아이를 낳았다. 손주들은 가끔 이렇게 볼멘소리를 한다. "할머니는 아빠한테 공부하란 말 한 번도 안 했다는데, 엄마는 나만 보면 공부하라고 해요."
 
▲ 각양각색 수실 위에 놓인 장인의 손전화. 재첩 노리개와 꼬맹이 버선고리가 달려있다.
서도미의 손전화 고리에는 재첩 껍질을 속재료로 해서 만든 앙증맞은 노리개와 꼬맹이 버선이 달려있는데, 손전화 폴더에는 이색적이게도 공룡 스티커가 붙어있다. 손주가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할머니 손전화에 꼭꼭 붙여놓은 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서도미는 "모두가 다 소중한데, 어떻게 하나만을 꼽을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작은 소품 하나를 만들더라도 정성을 다해 수를 놓아요. 내가 만든 이 물건이 누구 손에 갈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건강했으면, 행복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만든답니다."
 
서도미의 거실에서는 문갑과 화각함들이 보이는데, 사랑의 언약을 아로새긴 한 쌍의 원앙, 장수복록을 기원하는 십장생 등이 수놓인 비단이 장식돼 있다. 저런 문갑을 보유한 집이라면, 사소한 말다툼조차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야말로 온 집안이 화기애애하지 않을까.
 
"주변에서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그렇게 기원을 하면 저의 기운이 소진되겠다며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걸 어떡해요. 매번, 마음 속으로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지요."
 
이런 서도미의 마음은, 식구들의 밥을 짓고 의복을 챙기는 어머니의 마음에 다름 아니다.
 
수를 놓는 일은 마음이 들뜨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비단 위에 차근차근 문양을 만드는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 수를 놓는 틈틈이 만든 골무들.
"전통자수는 정말 힘들어요. 가만히 앉아 수를 놓는다고 만만하게 볼 일이 결코 아니랍니다. 그동안 전통자수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사람은 수 백 명이 넘어요. 제가 출연한 방송을 보고 작품이 너무 예쁘다며 찾아오지만, 얼마 못가 두 손 들죠. 금방 될 것 같아, 작품 하나 정도는 만들어낼 것 같아 시작한 사람들은 많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네요."
 
서도미는 현재 조선 왕실의 대례복 자수 문양을 재현하고 있다. 앞판, 등판, 소매, 덧댄 소매 등 대례복 전체가 수로 장식된다. 수를 다 놓는 데만 일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등판을 두 달 째 수놓고 있는데, 앞으로도 한 달은 더 해야 한다. 수자수는 이렇게 사람의 손길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정성과 시간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놓는 수자수는 명암, 질감, 원근감 등 문양의 표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세밀한 부분까지도 묘사할 수 있다. 꼰사(꼬아서 만든 실)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가 견고하고, 실의 굵기를 조절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가격이 비싸지만, 일 년 내내 매달리는 정성을 어찌 돈으로만 환산할 수 있을까.
 
"왕실에서 사용한 문양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완성시키는 일은 더 힘들어요. 하지만 완성된 왕실 대례복을 상상하면 설레고 행복해요.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할지…." 수를 놓는 장인의 눈이 빛났다.
 
▲ 작업실. 눈길 닿는 곳마다 장인의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다.
42년 동안 수를 놓아온 장인의 손을 만져보았다. 믿기 힘들만큼 부드러웠고, 매끈했다. "얼굴보다 손에 더 신경을 씁니다. 손이 마른다 싶으면 수시로 씻고 핸드크림을 바릅니다. 수를 놓으려면 손가락 끝까지 부드러워야 해요. 비단을 만져야 하니까요."
 
연구실에서 전통자수를 배우고 있는 최혜자(47·김해공예협회 회원) 씨는 "선생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 곳에 있는 시간이 제일 행복해요. 힘들지만 수를 놓고 있는 동안은 아름답고 화려한 색감에 푹 빠져 저도 모르게 집중이 돼요. 선생님께 배울 게 많으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아 왕실 대례복에 수를 놓기 시작했다. 옛날 구중궁궐의 수방 풍경이 이러했을까. 톡, 톡, 수실이 비단천을 들락거리는 소리만 남은 공간. 목단이 꽃잎 한 장을 천천히 열고 있었다.  

>> 서도미는
대한민국공예예술대전 등 공예품 경진대회 18회 수상, 기능경기대회 금상, 개인 작품전 3회, 작품전시 20여 회. 지난 2010년 경남 최고 장인 선정. 적십자 봉사활동 등 봉사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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