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미술 작품을 보면 즐거워지십니까? 그림을 보면서 가끔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하시는지요? 아니면 미술관에 가면 왠지 못 올 데를 온 사람처럼 마음이 불편하고 작품 앞에 서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답답한 기분이 드시는지요?
 
사실 제게도 미술은 참으로 냉담하고 도도한 것이었습니다. 배경 지식 없이도 어느 정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음악이나 영화와는 달리, 미술은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기가 힘듭니다.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그리고 누군가가 그리울 때, 음악은 좋은 친구가 되지요. 이때, 제목이 무엇이고 작곡자가 누구인지, 어떤 배경에서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음악사에서 이 곡이 차지하는 위치가 무엇인지 몰라도, 그 음악은 나를 충분히 위로해 줍니다. 영화도 비슷하죠. 현실이 답답할 때, 내 삶의 고민에서 잠깐 도망치고 싶을 때 영화는 우리를 즐겁게 해줍니다. 배경 정보나 이론적 지식이 없더라도 말이죠.
 
음악이나 영화는 가슴만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미술은 상대적으로 머리로 즐겨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인데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근 미술 이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커지고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이론 강좌들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미술 이론 관련 서적 판매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분명 미술에서 이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이전 작품과 갖는 관계 속에서 위대해 집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작품이 위대해지는 것은 그 이전 작품이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혹은 이전 작품들이 하지 않던 방식으로 전통을 뒤엎으면서 나타났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위대한 작품은 그 작품이 놓인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맥락이란 바로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즉 이전 작품이나 고전들과의 관계를 말하지요. 추상미술의 포문을 열었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걸작이 된 것은 원근법에 근거한 리얼리즘 예술과 단절하고 이후 오게 될 추상의 경향을 예시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그림이 그 전에 나왔거나 이후에 나왔더라면 전혀 주목받을 수 없었겠죠. 이 작품의 위대함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적인 회화를 이해해야 하고 현대 추상회화를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놓여있는 미술사적인 맥락,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등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미술에서 이론이 중요시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대 미술의 개념적인 경향 때문입니다. 과거에 미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대상을 진짜처럼 그리는가?'와 같은 테크닉 혹은 기술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해도 미술가가 될 수 있지요. 독창적인 아이디어, 즉 개념만 있으면 미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술은 연습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과 독창적인 영감으로 구성되는 것이었는데, 현대 미술에서 작가들은 그 독창적인 영감을 이론으로부터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미술작품과의 만남에서 더 중요한 것은 머리로 즐기는 부분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미술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작품 보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우리의 감성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첫 만남은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먼저 가슴으로 만나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작품이 내게 건네는 말을 들을 수가 있으니까요. 미리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로 무장된 눈 앞에서 미술작품은 한갓 내 지식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작품과의 설레는 첫 만남을 가진 후에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여러 이론적인 지식들을 정리하십시오. 그것은 이후 다른 새로운 작품을 대면할 때에도 작품에 대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입니다. 이렇게 작품과 가슴으로 만나고 그 이후에 작품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정리하는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미술에 대한 안목은 점차 나선형으로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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