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할머니댁에 갈 때마다 하늘에 수없이 뿌려진 별을 보고 놀란다. 그 별들이 어디 시골 할머니댁에만 떠 있는 것이겠냐만은, 평상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내가 있는 곳만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멀리서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부엌에서는 밥이 알맞게 익어가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 속에 누워 별을 본다. 오리온자리니 큰곰자리니 하는 이름은 몰라도 마냥 좋다.
 
반면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가 힘들다. 인공적인 빛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빛이,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구봉초등학교 교사 이정호(42·삼계동) 씨는 '별난 사람' 혹은 '별 볼일 있는 사람'이다.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별을 필사적으로 쫓아다닌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서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별을 찍으러 갈 정도다. 닉네임도 이에 걸맞게 '어린왕자'이다. 처음부터 별을 좋아해서 그리 지은 것은 아니고, 그저 순수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대학시절 붙인 별명이란다. 그런데 정말로 별과 가까이 지내게 됐으니 운명이라 해야 할까.
 
14년 전 교내 천문대 담당하면서 입문, 책 모으고 관측지 찾아다녀 지식 쌓아
반 학생들과도 1년에 한두번 함께 관측, 지역색 배경 촬영 … 준전문가 내공
블로그(blog.daum.net/lee5135) 별사진 가득

▲ 지난 1일 새벽 3시 김해 임호산 흥부암에 올라 새해 해맞이 대신 별 맞이와 달 맞이로 올 한해를 시작한 이정호 교사의 별 일주사진 작품.
이 씨가 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당시 몸 담고 있던 어방초등학교에서 개교 1주년 기념사업으로 교내에 천문대를 만들었고, 젊은 남교사인데다 미혼이라는 이유로 그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별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아마추어 전문가들을 불러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저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게 전부였죠."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를 맡게 됐을 때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대충 흉내만 내다가 빨리 포기하는 사람, 두 번째는 관심을 갖고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 그는 후자였다. 별에 대한 책을 사 모으고 별 관측 하는 곳을 꾸준히 쫓아다녔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그는 별에 있어서 '준전문가'가 됐다.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별을 관측하러 가기도 한다. "우리반 아이들과는 1년에 한두번은 꼭 관측한다"는 그 나름의 원칙도 있다. 지난 2001년, 유성우가 쏟아지던 그날도 아이들과 분성산에 올랐다. 풀밭에 드러누워 별을 2천 개까지 셌다. 어른이나 아이나 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당시 함께 별을 봤던 아이들이 요즘도 그 이야기를 꺼낸단다.
 
"그날 유성우가 진짜 많이 떨어졌어요. 너무 많아서 세다가 지칠 정도였으니까…. 저는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아이들도 그런가봐요. 다만 지금 아쉬움이 남는 건, 그때는 사진을 찍을 줄 몰랐기 때문에 맨눈으로만 봐야했다는 것이죠. 사진으로 남겨놨으면 좋았을텐데…."
 
▲ 김해시민의종을 배경으로 찍은 별 일주사진. 위는 이정호 교사가 별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
현재 그의 블로그에는 별사진이 가득하다. 2004년부터 카메라를 구입해 별을 찍었고, 지난해 초부터는 '일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주사진이란 별의 움직임(일주운동)을 찍는 것. 그래서 일주사진을 보면, 별이 꼬리를 끌며 긴 선을 긋고 있는 것 같다.
 
이 씨는 날씨만 좋으면 일주사진 찍을 생각부터 한다. 새벽녘에 문득 잠이 깨도 망원렌즈와 카메라를 챙겨 옥상으로 올라간다. 오죽 별을 쫓아 다녔으면 딸이 '비가 내려서 아빠가 별을 찍으러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다. 지난 1일 새벽 3시에도 혼자 임호산 흥부암에 올랐다. 남들 다 하는 해맞이 대신 '별맞이·달맞이'를 하러 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웃기더라고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바뀔 때도 지구는 계속 자전하고, 별은 계속 떠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생전 처음 별맞이를 하러 갔죠. 옆에서 해맞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했어요. 그날 금성이랑 달이 크게 떠서 더 좋았죠. 아마 내년부터는 별맞이가 유행할 것 같은데. 하하."
 
보통 사람들은 '그럴싸한' 배경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별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에게 맞는 곳이나 가까이 있는 곳보다, 사진이 잘 나온다고 유명한 곳에서 찍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씨는 자신이 평소 생활하는 공간에서 별을 찍는다. 주로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옥상, 학교 운동장 등이다. 또한 봉황대, 김해시민의종, 화포습지 등 김해의 지역색이 드러나는 곳에서도 자주 찍는다.
 
"유명한 곳에서 찍으면 사진은 잘 나오겠지만, 그게 내 자신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저는 김해 곳곳에서 일주사진을 찍어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인문환경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싶은 거죠. 시간은 2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사유의 폭을 넓혀주고, 그 순간만큼은 자잘한 문제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별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마흔 둘. 아무리 별을 좋아한다 해도 아이들은 '선생님이 무슨 어린왕자냐'며 '늙은 왕자'라고 놀려댄다. 그러나 뭐 어떤가. 우주의 나이는 140억 살이라지 않나. 그러니 얘들아,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선생님과 너희들은 '동갑'이나 마찬가지란다!


이정호 교사의 '교실 이야기'

▲ 지난해 이정호 교사가 쓴 학급 일기를 묶은 '교실이야기'.
"아이들과 함께 한 시시콜콜 교실 얘기들 하루도 빠트리지 않아"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일뿐인데 뭘 보여드려야 할지 몰라서…. 이거라도 가져와 봤습니다."
 
이정호 교사가 인터뷰 도중 내민 것은 두툼하게 제본된 책 2권이었다. '교실이야기'라는 글자가 표지에 쓰여 있었다. 아이들이 쓴 글을 모은 것인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가 작년 한해 동안 쓴 일기입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급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이죠."
 
펼쳐봤더니 재미있는 교실이야기가 가득하다. 교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생하게, 시시콜콜 다 담아놨다. 특히 이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3학년 2반에서 가장 장난꾸러기인 '정훈이' 이야기가 빠진 날이 드물다.
하루는 이 교사가 아이들에게 방학계획표를 짜게 하며 '책 읽기'를 2시간 넣으면 사탕을 2개 주겠다고 했단다. 그랬더니 정훈이가 책 읽기를 4시간으로 그려와서 사탕을 4개 달라고 했다. 사탕 때문에 티격태격했을 이 교사와 정훈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나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분명히 좋지 않은 일도 있었을텐데, 어째서 좋은 이야기만 담은 것인지 궁금했다. "하룻동안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항상 같이 일어나잖아요. 기왕 쓸 거 좋은 일만 쓰면 되지 굳이 나쁜 일을 쓸 필요는 없죠."
 
앞으로 이 교사는 매년 교실이야기를 써 나갈 계획이다. 완전경쟁과 시장자유주의 등에 던져져 뒤틀린 교육현장을 정통적인 방법으로 돌파해 보려는 그 나름의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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