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 한국1차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언덕을 오르다 왼편으로 길을 꺾으면, 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잔뜩 쌓여 있는 나무, 목재를 자르는 기계, 바닥의 톱밥…. 영락없는 목공장 모습이다.
입구의 간판이 아니었다면, 목공장이라고 해도 믿었겠다. 이곳이 '곡산서각공예연구실(외동 384의 4)'이다.

▲ 곡산서각공예연구실은 이동신과 제자들이 현재 작업중인 작품들로 가득하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곡산 이동신(74)은 경북 고령 출신이다. 지난 1978년에 김해로 옮겨 온 뒤 지금까지 김해 사람으로 살고 있다.
 
곡은 이종림에게 배운 서예 솜씨로
10여년 간 나무에 글자 새기다
환옹 김진희 만나 본격 서각의 길


이동신이 서각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히 간판 하나를 만들면서부터이다.
 
"옛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지. 나도 온갖 장사를 다 해봤으니까. 김해에 온 그해에 채소장사를 시작했어. 명색 가게라고 문을 열었으니 간판이 필요했지. 간판집에 물어보니 5만원이나 달라지 뭐야. 그래서 내가 간판을 직접 만들었어."
 
이동신은 지난 1974년부터 곡은 이종림에게서 서예를 배웠다. 서예 솜씨를 발휘해 나무판에 글자를 쓰고, 면도칼로 파서 간판을 만들었다. 조각칼같은 별도의 도구가 있는지를 몰랐고, 면도날로 파느라 손에 물집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만든 간판이 근사해 보였던지, 아는 사람이 간판 제작을 부탁해 와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재미를 느껴 통나무를 구하고, 좋은 글귀를 쓰고, 장사하는 틈틈이 글자를 팠다. '서각'이란 단어조차 몰랐지만, 그런 식으로 10여 년 동안 나무를 붙들고 있었다.
 
▲ 이동신의 서각작품.
"'가화만사성'같은 글귀을 새겨 넣은 소품을 리어카 한 대 분량 정도 만들었을 거야. 조각칼 같은 도구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도루코 면도날을 통째로 사다 놓고 썼어. 면도날은 약해 보이지만, 똑바로 세우면 잘 안 부러져."
 
그렇게 나무와 씨름하던 어느 날, 서각작품과 정식으로 대면했다. 부산에서 서당을 하던 조카를 방문했다가, 서당에 걸린 서각작품을 본 것이다. 이동신은 조카에게 "저 작품을 만든 분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환옹 김진희를 만났다. 이동신은 환옹에게서 서각을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나무의 결 보는 것부터가 기본"
직접 만들어 손때 묻은 서각도구들
수십 수백년 된 나무 재료들 만나
생명 다한 몸통이 새로운 생명으로


"비로소 서각을 배우기 시작한 거지. 처음으로 연장을 잡았어. 면도날로 작업을 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쉽더군. 도구는 그래서 중요한 거야. 조각칼은 작업 과정에 맞게 사용해야 하니까 종류가 많아. 날도 계속 갈아줘야 하고. 세월이 가면서 연장도 점점 발달했지. 요즘 것은 옛날보다 훨씬 작업하기 수월하게 만들어져 있어. 나는 내 손에 맞게 도구를 만들어 썼어. 자동차 판스프링으로 만든 도구도 있어. 작업할 작품이 큰 것일 때, 바닥을 떠내는 데 쓰려고. 바닥을 떠내는 작업은 어렵고 힘들어."
 
자동차 판스프링을 갈아서 만든 도구는 기자가 그냥 들고 있기에도 벅찰만큼 무거웠다.
 
이동신은 직접 제작한 나무망치도 하나 보여주었다. 머리 부분은 물푸레나무, 자루 부분은 벚나무로 된 커다란 망치였다.
 
"서각을 하려면 나무의 결을 보는 것부터 배워야 해. 결의 방향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창칼부터 잡고 기본을 익혀야 하지. 이 기초가 안되면 서각을 할 수 없어. 서각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기본기를 익히는 과정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아. 빨리 작품을 하나 만들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한달 쯤 하다 포기를 하고 가버리는 거야. 나무도 알고 도구도 알고, 그렇게 제대로 배워야 작품을 할 수 있는건데, 너무 성급한 거지."
 
▲ 오랜 세월 이동신의 손때가 묻은 서각 작업도구.
'곡산서각연구실'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서각을 배우려는 사람들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해의 예술인들과 후배들도 있고, 곡산의 작품이 좋아 좀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어하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는 간혹 '곡산선생님 작업실 번개' 소식이 전해진다고 한다. 좋은 술이 있어서, 비가 오니까, 바람이 불기 때문에 등 이유도 여러 가지이다. 얼마 전에는 이동신이 작업실 마당 한 쪽에 심어놓은 상추가 맛있게 자랐다는 이유로 삼겹살 파티가 벌어지기도 했다. 조만간 표고버섯이 익으면 또 한번 '번개'가 칠 예정이라고 한다.
 
지인을 따라서 술 마시러 왔다가 서각에 흠뻑 빠진 이들도 있다. 매일 술을 마시던 남편이 서각을 하느라 술을 끊은 걸 보고 신기해 하던 아내가 호기심에 작업실을 찾았다가 다시 빠져들어 결국 부부가 나란히 서각을 배운 사례도 있다.
 
이동신에게 서각을 배우는 제자 중에는 씨름선수 출신인 인제대 이만기 교수도 있다. 기자가 취재하러 간 날, 이 교수는 '천하장사'라는 서각작품을 만드는 중이었다.
 
▲ 이만기 교수도 이동신의 작업실을 찾아와 서각을 배우고 있다.
"서각은 글, 그림, 조각 등 다양한 작품 세계가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이예요. 게다가 나무라는 자연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먼저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 사람의 손길이 닿는 겁니다. 나무는 자라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많은 것을 주는데, 생명을 다한 뒤에도 사람의 손끝을 통해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죠. 서각은 나무와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작품입니다." 이 교수는 아직 초보자이지만 서각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그 마음을 토해낸 뒤 "선생님께서 하실 말씀을 제가 다 해버렸네요"라고 말했는데, 그는 강의시간에 늦겠다며 서둘러 작업실을 빠져나갔다. 이동신은 이 교수가 기본기를 잘 익혔고, 곧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문득, 이동신이 나무를 보여주겠다며 기자를 작업실 밖으로 이끌어냈다. 바깥의 작업장에는 나무가 잔뜩 쌓여 있었다. 말리는 중이었다. 최소한 5년 이상은 말려야 나무가 뒤틀리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도 변형이 없다고 한다.
 
"뿌리가 잘려진 상태라 해서, 이렇게 판자 형태로 잘라놓은 상태라 해서, 나무가 죽었다고 볼 수는 없어. 나무는 숨을 쉬거든. 제대로 마르지 않은 나무는 아무리 작품으로 잘 만들어도 뒤틀어지지."
 
이동신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나무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나무가 주목이야. 나무 겉모습만 봐도 안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 나무의 무늬가 아주 예뻐"라고 말하면서. 정말 그럴까? 사포작업으로 표면을 갈아내자, 나무는 거짓말처럼 감춰두었던 아름다운 결을 드러냈다. "물을 부으면 제 색이 나와." 이동신이 매끈해진 나무 표면에 물을 부었다. 나무는 원래의 자기 색인 붉은 빛을 보였다. 그냥 네모난 판자인 줄 알았는데, 나무 둥치에서 가지로 갈라져 자란 부분의 나이테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뭘 만들어도 근사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기 상처를 감싸안는 나무들이 있어. 상처를 안에서 잘 아물게 하면서 자란 나무를 켜면, 그 상처가 멋진 문양이 된 것을 볼 수 있어. 나무를 오래 보면, 겉만 봐도 그 안까지 보여."
 
▲ 이동신이 공예연구실 한 켠에 가득 쌓인 나무재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무의 안을 들여다 볼 줄 아는 경지에 이른 이동신은, 지난 4월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전시회 '나무의 숨결'을 열었다. 몇 년간 말린 나무가 여전히 숨을 쉰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동신의 마음이 만들어 낸 전시회였다. 이동신은 현재, 내년 3월에 김해문화의전당에서 열릴 초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때가 되면 이동신의 작업장에 쌓인 나무들, 길게는 수 백 년에서 짧게는 수 십 년 된 나무들이 새로운 숨결을 받아 되살아날 것이다. 

>> 곡산 이동신
이동신은 한국서각협회전, 서울미술관초대전, 경남원로작가전, 김해원로작가전 등 100여 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가했다. 지난 2009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통도사박물관, 한국예술문화원, 김해문화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서화예술 비엔날레 대회장 표창·2008 한국문학정신 선진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김해원로작가회 부회장·경남원로작가회 부회장·김해서각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 미술대전의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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