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정치 사상

공자가 활동한 춘추전국시대는 전쟁과 혼란의 시기였다. 주(周)나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곳곳에서 제후와 대부들이 들고 일어나 날마다 영토 쟁탈전을 벌이는 살육과 야만의 시대였다. 이 틈바구니에서 죽어나는 건 힘없는 백성들이었다. 백성들은 전쟁과 노역에 동원되고 가렴주구로 헐벗었다.
 
공자는 전쟁과 혼란에 맞서 평화와 질서의 재건을 외쳤다. 정치는 힘과 법이 아닌 인(仁)과 덕(德)으로 해야 하며, 정치는 위정자의 통치수단이 아닌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고 주창했다. 공자를 놓고 봉건군주제의 수호자니 기득권의 옹호자니 하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 당시 시대 상황과 공자의 정치사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공자야말로 뛰어난 실천적 개혁가요 사회운동가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정치사상은 한 마디로 덕치(德治)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들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 같다.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위정편.
 
치자(治者)가 덕으로 정치를 하면 굳이 어떤 강제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저절로 백성들이 교화돼 따르게 된다는 말이다. 덕으로 하는 정치는 조용하게 일을 처리하고 법령은 최소화해 백성을 편하게 한다. 백성을 위한다고 떠드는 정치는 백성을 이롭게 하는 일이 적고 업적을 과시하는 정치는 결과가 부실하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쭉 쓰러진다.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안연편. 노나라 실권자 계강자의 "무도(無道)한 자를 죽여서 도(道)가 있는 데로 나아가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공자는 "그대가 선해지면 백성들은 저절로 선해진다"며 이렇게 부연설명을 한 것이다.
 
공자가 덕치로 이루고자 한 정치의 궁극적 지향점은 무엇일까? 바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제자 자로(子路)가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를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하고, 나아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修己以安人 修己以安百姓"-헌문편.
 
공자는 군자(치자)가 우선 자신의 인격을 연마한 뒤라야 남과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상통한다.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오게 하는 것이다. 近者說 遠者來-자로편"라는 공자의 대답은 정치의 요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공자는 위정자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으로 신뢰를 들었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튼튼히 하며(足兵)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民信之)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부득이 셋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병(兵)을 버려라." 자공이 또 물었다. "나머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식(食)을 버려라." 나라를 다스리려면 군대와 음식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되므로 어떤 경우라도 지도자는 신뢰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충고이다. 신뢰가 군대나 음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공자의 말씀은 실로 놀랍지 않은가!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정치 이념을 퍼뜨리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존한 각국의 군주들이 공자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천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여전히 공자와 <논어>가 회자되는 건 정치가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는 슬픈 현실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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