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는 연한 콩색, '농록'은 짙은 초록색, '군청'은 광택이 곱고 선명한 남색….
한국화를 그리는 채색 물감의 이름이다. 예스럽고 품격이 느껴진다.
문운식은 이런 물감들을 사용해 우리가 잃어버린 고향마을의 정경을 드러내고,  언젠가 마음을 빼앗겼던 깊은 산속의 풍경을 펼쳐보이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한국화 화가 문운식의 작업 공간은 외동 706의 3 밝은빌딩 4층에 있다.
'목정화실'. 목정화실에는 이 땅의 산과 강을 담은 그림 액자들이 가득하다.
이곳에서는 문득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정자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 "김해를 우리나라 한국화의 중심지로 만들고 싶습니다." 문운식 화백이 목정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punglyu@hanmail.net

문운식은 1958년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한동안 부산에서 살았는데, 조용히 그림에만 몰두하고 싶어 1990년에 김해로 왔다. 김해도서관 옆 한적한 곳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김해미술협회 사무국장도 맡아 활동했다. 갤러리도 열었다. 그런데 김해에 온 목적과 달리 일이 점점 더 많아져갔다. 그림만 그리고 싶었는데, 그래서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칠까 궁리를 하고 있던 중 어머니가 저세상으로 갔다.
 
"그제서야 어머니가 김해 김씨란 걸 알게 됐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죠. 새삼 김해에 대한 애정이 샘솟더라구요. 어머니가 나를 김해로 이끄셨구나, 운명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김해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종이 위에 번져가는 물감을 일러
저는 '화선지와 물감의 소통'이라 말하곤 하지요…
테크닉만으로는 한국화를 그릴 순 없다고 봐요…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해야 하지요…
사람이나 그림이나 개성과 색깔이 중요해요…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진짜 그림을 그려보세요


문운식은 부산공예학교(현 부산디자인고등학교)에서 조각을 배웠다. 사실은 그림그리기를 더 좋아했다. 그래서 고교 졸업 후 호남대 미대에 진학했다.
 
그가 한국화를 선택한 이유는, 화선지 위에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물감의 농담 때문이었다. 그는 이것을 '화선지와 물감의 소통'이라고 말한다. "화선지가 물감을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우리나라 미술계의 경우, 한국화 화가가 서양화 화가보다 숫적인 면에서 열세이고, 따라서 세가 약하다는 사실도 문운식을 한국화로 이끈 이유 중 하나다.
 
▲ 문운식의 작품 한 점
그렇게 한국화를 시작한 그는 '김해 한국화(문운식은 이렇게 지명을 앞에 붙여 이야기한다)'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995년 즈음이었다. 문운식은 동료 화가들과 함께 전남 진도에 그림을 그리러 갔다. 진도에는,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허유(1807∼1890)가 말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린 '운림산방'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전라도 출신의 예술인들이 참 많다는 사실에 대해 자괴감을 같은 것을 느꼈다. 기실 전라도 출신 화가들의 그림을 모두 내리면 서울 인사동의 화랑가가 문을 닫을 것이란 말도 있는 터다. 문운식은 진도 여행길에서 그런 사실을 절감했다. 그는 회상했다. "왠지 약도 좀 오르고, 기가 죽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한국화를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 김해를 한국화의 중심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기더군요."
 
한국화에 대한 인식이 미미하던 시절, 문운식이 개척해 온 것들은 '김해에서는 처음'인 일들이었다. 그는 김해 최초로 갤러리를 열었다. 수로왕릉 앞에 있던 '문 갤러리'가 그것이다. '김해한국화전', '김해미술대전', '김해선면협회전', '이웃돕기 경매전' 등이 문운식에 의해 빛을 봤다. 심지어 전시회 도록을 컬러로 인쇄한 이도 김해에서는 그가 처음이다. 그 외에도 더 있지만,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문운식의 활발한 활동은 김해에서 한국화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고, 그림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갔다.
 
"1993년에 갤러리를 오픈했는데, 갤러리란 게 낯설었던지 사람들이 쉽게 들어오질 않았어요. 젊은 사람들은 문 앞에 서서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곤 했지요."
 
▲ 그의 수많은 그림을 그려낸 붓과 물감.
그렇다면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정이 어떨까. "이젠 대한민국 어느 곳도 부럽지 않습니다. '김해 한국화'가 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김해만큼 한국화를 그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 없어요. 전시회도 자주 열리고, 김해문화의전당 아람배움터에서는 한국화 강좌를 열고 있기도 하지요. 전국 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회에서 입상한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문운식이 제자들에게 또한 자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으니, '다른 사람의 배경이 돼라'는 것이다. "나서지 말고 누군가의 배경이 되면, 다른 사람도 너의 배경이 되어줄 것이다.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는 동안 너의 본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고 늘 말합니다. 그림이 또한 그렇습니다. 배경이 있어야 주제가 살아나지요. 배경 없이 주제만 있다면 과연 주제가 잘 보일까요?"
 
그는 사람이나 그림이나 자기만의 개성 혹은 색깔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체본(보고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말함)을 덥석 집어주지 않는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무슨 그림을 그릴 건지 물어보는 게 먼저지요.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 보다, 본인이 그리고 싶은 것을 끄집어내어 스스로 그리는 것이, 진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니까요."
 
문은식은, 한국화는 테크닉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서두르면 한국화를 그릴 수 없어요. 기법을 익히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만, 무엇보다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생각의 깊이는 그림에 그대로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그는 관념적이 되기 십상이란 이유로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애쓴다. 그가 그림 도구를 들고 소재를 찾아 자주 가는 곳은 장유계곡과 은하사이다.
 
▲ 문운식이 동료화가이자 아내인 임미애와 한국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운식은 자연물 중에서 구름을 특히 좋아한다. "산과 들, 나무와 바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요. 정적이지요. 저는 어떤 움직임을 나타나기 위해 그 위에 구름과 비, 바람을 표현합니다."
 
미술평론가이며 철학박사인 최도송은 문운식의 그림을 이렇게 평가한다. "구름에 의해 천변만화의 유동적인 화면을 구상한다. 구름에 의해 사라지듯 나타나고 또는 구름 아래 짙은 산음(山陰:산의 그늘)의 표현은 기존의 한국화라는 장르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운식만의 특질적인 표현세계이다."
 
문득 생각하니, 한국화를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의 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문운식은 자신의 호 목정(木亭)을 이렇게 풀이한다. "부산의 한 서예인이 지어준 호입니다. 글자를 그대로 풀어보면 나무정자인데, 누구든 와서 편안하게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돼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주막이라고도 말합니다." 

>> 목정(木亭) 문운식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경남미술대전 연 2회 우수상. 부산미술대전 특선 및 각종 공모전 대상, 특선, 입선. 개인전 13회(김해, 마산, 창원, 거제, 서울, 부산) 등 전시회 다수. 현 한국미협 동양화분과 이사, 김해한국화가회 고문, 김해미술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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